직장 내 성폭력, 반드시 2차 피해 낳는 이유
직장 내 성폭력, 반드시 2차 피해 낳는 이유
  • 이세아 기자
  • 승인 2018.04.18 19:17
  • 수정 2018-04-23 08: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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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MeToo·나도 말한다)’ 운동 두 달, 여성신문은 5일부터 매주 목요일 3연속 미투 운동 관련 토론회를 여는 국가인권위원회와 함께 미투 운동의 의미를 짚어보고 미래를 위한 노력을 제언합니다. 우리의 일상에 만연한 성차별과 성폭력 문제를 고민하고 변화를 제안하는 장이 되길 바랍니다. 의견은 saltnpepa@womennews.co.kr로 부탁드립니다.

 

여성신문-국가인권위원회 공동기획

#WeToo - 미투 너머를 논하다

직장 내 성폭력 피해자 대다수는

조직 내 지지기반 약한 20대 여성

꽃뱀론·피해자 침묵, 가해자 옹호 분위기 낳고

“피해자 원하는 대로 조처” 사건 처리도 문제

“직장 내 성폭력 사건이 일어나면 2차 피해는 반드시 발생한다.” 공공기관 등 현장에서 직장 내 성폭력 사례를 상담·조사·분석해온 전문가들은 말한다. 현행법에 따라 직장 내 신고상담센터, 피해자 회복 지원 체계 등을 필수적으로 갖춰야 하는 2018년에도 피해자들은 내부의 도움을 얻지 못하고 직장을 떠나간다. 

왜 구제 시스템은 왜 작동하지 않을까? 여성학자 권수현 박사는 12일 국가인권위원회가 연 두 번째 ‘미투운동 연속 토론회’에서 직장 내 성폭력 피해자가 경험하는 2차 피해 양상과 발생 구조를 분석했다. 

지난 3년간 직장에서 성희롱·성폭력을 겪은 피해자 중 절대다수가 20대 여성이다. 가해자는 대개 40대 이상 남성으로, 피해자보다 상급자인 경우가 많았다(여성가족부 ‘2015 성희롱 실태조사’). 여성이며, 어리고, 숙련되지 못한 노동자이며, 노동조합이 갖춰지지 않았으며 야근이 빈번한 노동 환경일수록 성희롱 경험 비율이 높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한국노동연구원 ‘2014 근로환경조사’).

20대 여성 피해자들의 특징은 “높은 교육 수준과 시대적 변화 등으로 가장 젠더 감수성이 높고 성희롱·성폭력에도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조직 내 지지 기반이 가장 부족해 고립되기 쉽다”는 점이다. “피해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조직에 피해 사실이 알려지는 것”이라고 권 박사는 설명했다. “신원 노출에 대한 두려움, 피해를 입증 못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상사인 가해자가 징계를 받는 데 대한 부담” 등이 피해자의 입을 막는다. 

그래서 이들은 성희롱·성폭력 피해 이후 대부분 “참거나, 피하거나, 그만두는 것”을 선택한다. 여가부가 이달 발표한 ‘공공부문 성희롱·성폭력 특별점검’ 사전 온라인 조사 결과에서도 나타난 현상이다. 공공부문 종사자 중 피해자의 약 70%가 “성희롱·성폭력을 겪었지만 그냥 참았다”고 답했다.

조직 내 소극적 사건처리, 2차 피해 키워

“피해자 주장·요구에만 의존해 문제 해결?

조직의 책임 피해자에 떠넘기는 것”

조직 내 사건 처리 담당자들의 잘못된 대응도 2차 피해를 키운다. 특히 “피해자가 원하는 대로 조처하겠다며 피해자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사건 처리 방식이 문제”라고 했다. “피해자는 대부분 어린 사회 초년생이라서, 자신이 어떤 해결책을 원하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조직이 피해자의 주장과 요구사항만을 참조해 사건을 해결하려는 것은 조직의 책임을 피해자에게 떠넘기는 방식이다. 사내 문화를 점검해 유사한 문제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책을 마련해야 하는데, 여러 조직을 살펴보니 비밀스럽게 사건을 처리하고, 형식적인 징계를 내리면 할 일을 다 한 것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권 박사의 설명이다. 담당자가 여러 업무를 병행하느라 전문성이 낮고, 영향력과 예산이 적어서 사건을 제대로 처리할 역량이 부족한 경우도 많다.

 

‘르노삼성 성희롱 사건’은 직장 내 성희롱 사건 이후 조직 내에서 발생하는 2차 피해의 복잡한 양상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이다. ⓒ여성신문
‘르노삼성 성희롱 사건’은 직장 내 성희롱 사건 이후 조직 내에서 발생하는 2차 피해의 복잡한 양상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이다. ⓒ여성신문

그렇게 피해자가 침묵하고 사건이 은폐되면 조직 내에서는 전형적인 2차 가해가 시작된다. “가해자가 먼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며 ‘시나리오’를 퍼뜨린다. 피해자를 ’꽃뱀’으로 몰아가는 분위기가 급격히 형성된다. 가해자에게 귀 기울이고 도와주려는 이들이 똘똘 뭉친다. 피해자가 신고했건, 합의를 시도했건, 아무것도 안 했건, 뭘 해도 비난을 가한다. 피해자는 화나서 발톱을 세울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다. 피해자에 대한 비방과 루머가 퍼진다. 피해자의 조직 내 평판은 바닥으로 떨어진다. 피해자는 물론 피해자를 지지하는 동료들도 ‘꽃뱀 패거리’ ‘골칫거리’로 몰린다. 피해자에게 업무를 제안하거나 좋은 기회를 제공하려는 이들이 확연히 줄어든다. 이런 분위기를 비판하고 나섰다가는 ‘○○ 앞에서는 무서워서 아무 말도 못 하겠네’ 라고 조롱 당하기 십상이다. 지켜보는 사람들은 ‘앞으로 비슷한 일이 일어나도 이 조직 안에서는 결코 시정 요구를 할 수 없겠구나’ 하고 체념하게 된다.” 

‘르노삼성 성희롱 사건’은 이처럼 직장 내 성폭력 사건 후 조직 내 2차 피해 양상을 잘 보여준다. 피해자 A씨는 2013년 성희롱 피해 사실을 회사에 알렸다. 이후 인사팀 직원의 주도로 A씨에 대한 악의적인 소문이 사내에 퍼졌다. 사측은 가해자가 아닌 A씨에게 대기발령 등 수차례 징계를 내렸다. 한 임원은 퇴사를 종용했다. A씨를 도운 동료까지 근태 문제를 핑계로 징계를 받았다. A씨는 약 5년간 싸운 끝에야 대법원에서 승소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12일 연 두 번째 ‘성폭력과 성차별의 근본원인 진단과 정책대안 마련을 위한 미투운동 연속 토론회’ 현장. (왼쪽부터) 박선영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김엘림 한국방송통신대 법학과 교수, 김정한경 이화여대 부총학생회장, 이미정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좌장인 조영선 인권위 사무총장, 이선경 변호사, 이수연 인권위 여성인권팀장, 최미진 여성노동법률지원센터 대표, 여성학자 권수현 박사, 차혜령 변호사가 청중의 질문을 받고 있다. ⓒ이세아 기자
국가인권위원회가 12일 연 두 번째 ‘성폭력과 성차별의 근본원인 진단과 정책대안 마련을 위한 미투운동 연속 토론회’ 현장. (왼쪽부터) 박선영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김엘림 한국방송통신대 법학과 교수, 김정한경 이화여대 부총학생회장, 이미정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좌장인 조영선 인권위 사무총장, 이선경 변호사, 이수연 인권위 여성인권팀장, 최미진 여성노동법률지원센터 대표, 여성학자 권수현 박사, 차혜령 변호사가 청중의 질문을 받고 있다. ⓒ이세아 기자

심지어 남성 관리자들이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피해자에게 ‘보호자’나 ‘지지자’를 자청하며 2차 성폭력을 시도하는 경우도 있다. 권 박사는 “한샘에서 벌어진 직장 내 성폭력 사건이 좋은 예”라며 “직장 내 성폭력 피해자들을 마치 모든 사람이 건드려도 되는 ‘공공재’처럼 여기는 분위기가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들은 몸과 마음의 상처를 입는다. 송민수 한국노동연구원 전문위원은 연구원의 2014년 조사 결과를 토대로 “성희롱 피해 노동자는 다른 노동자보다 두통, 복통, 전신 피로, 수면장애 등을 더 많이 경험하며, 일상적인 불쾌함을 느끼며 노동환경 만족도도 낮고, 결근일수도 높다”고 설명했다. 

 

▶ ‘남녀 동등대우’ 회사가 직장 내 성폭력 더 잘 대처 (www.womennews.co.kr/news/14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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