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저항 안했나’ 캐묻는 한국 성폭력 규정, 피해자 두 번 죽인다
‘왜 저항 안했나’ 캐묻는 한국 성폭력 규정, 피해자 두 번 죽인다
  • 이세아 기자
  • 승인 2018.04.18 18:44
  • 수정 2018-04-20 20: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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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MeToo·나도 말한다)’ 운동 두 달, 여성신문은 5일부터 매주 목요일 3연속 미투 운동 관련 토론회를 여는 국가인권위원회와 함께 미투 운동의 의미를 짚어보고 미래를 위한 노력을 제언합니다. 우리의 일상에 만연한 성차별과 성폭력 문제를 고민하고 변화를 제안하는 장이 되길 바랍니다. 의견은 saltnpepa@womennews.co.kr로 부탁드립니다.

 

여성신문-국가인권위원회 공동기획

#WeToo - 미투 너머를 논하다

폭행·협박 증명해야 성폭행 인정하는 한국법

피해 사례 10건 중 1건만 인정돼

2차 피해 심각…실질적 처벌도 어려워

“성폭행, ‘적극적 동의’ 여부에 따라 판단해야”

독일·아이슬란드 등 선진국은 이미 법개정 추세

가해자가 피해자의 ‘동의 없이’ 성적 행위나 발언을 했다. 지난 세 달간 ‘미투(#MeToo·나도 말한다)’ 운동으로 드러난 사건들의 공통점이다.

그러나 한국에선 성관계를 강요한 가해자 모두가 강간죄로 처벌받지 않는다. 강간죄의 성립 요건을 매우 좁게 해석하는 ‘최협의(最狹義)설’ 때문이다. 형법 제297조, 제298조에 따라 강간죄와 유사강간죄로 인정받으려면 ‘피해자의 반항이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할 정도에 이르는’ 폭행 또는 협박이 존재해야만 한다.

이를 충족하는 성폭행 피해 사례는 전체 10건 중 1건에 불과하다. 한국성폭력상담소가 최근 발표한 ‘2017 상담 통계 및 상담 동향 분석’에 따르면 성폭력상담소가 접수한 성인 성폭행 피해자(124건) 중 현행 강간죄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경우는 12.2%(15건) 뿐이었다. 피해자가 거부 의사를 밝혔으나 강간죄로 처벌하지 못한 사례가 절반가량인 43.5%(54)에 달했다.

여성계는 ‘강간죄 최협의설’이 2차 피해를 유발한다며 반대해왔다. 피해자들은 수사·재판 과정에서 폭력 피해를 인정받으려면 저항했다는 증거를 보이라는 압박, ‘왜 저항하지 않았냐, 너도 좋았던 것 아니냐’는 의심에 시달리기 일쑤다.

‘강간죄 최협의설’을 따르면 가해자 처벌도 어려워진다. 권력형 성폭력의 경우, ‘피해자의 반항이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할 정도에 이르는’ 폭행 또는 협박이 있었느냐 여부에만 주목해서는 피해 사실을 입증하기 어렵다. 실제로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성폭행을 저질렀다고 폭로한 김지은 전 수행비서 측 법률대리인은 안 전 지사를 ‘업무상 위계 또는 위력에 의한 간음·추행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법률상 강간죄 성립이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국가인권위원회가 12일 연 두 번째 ‘성폭력과 성차별의 근본원인 진단과 정책대안 마련을 위한 미투운동 연속 토론회’ 현장. (왼쪽부터) 박선영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김엘림 한국방송통신대 법학과 교수, 김정한경 이화여대 부총학생회장, 이미정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좌장인 조영선 인권위 사무총장, 이선경 변호사, 이수연 인권위 여성인권팀장, 최미진 여성노동법률지원센터 대표, 여성학자 권수현 박사, 차혜령 변호사가 청중의 질문을 받고 있다. ⓒ이세아 기자
국가인권위원회가 12일 연 두 번째 ‘성폭력과 성차별의 근본원인 진단과 정책대안 마련을 위한 미투운동 연속 토론회’ 현장. (왼쪽부터) 박선영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김엘림 한국방송통신대 법학과 교수, 김정한경 이화여대 부총학생회장, 이미정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좌장인 조영선 인권위 사무총장, 이선경 변호사, 이수연 인권위 여성인권팀장, 최미진 여성노동법률지원센터 대표, 여성학자 권수현 박사, 차혜령 변호사가 청중의 질문을 받고 있다. ⓒ이세아 기자

박선영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난 12일 오후 국가인권위원회 주최로 서울 중구 저동 인권위에서 열린 두 번째 ‘미투운동 연속 토론회’에서 이러한 현실을 지적했다. 박 연구위원은 “명백한 폭행이나 혐의가 있었다는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피해자의 경우, 자신이 입은 피해를 수사기관에 신고했다는 이유만으로 고소의 동기를 의심받고 무고죄로 고소당할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법의 허점을 메울 대안으로 주목받는 게 ‘비동의 간음죄’다. ‘가해자가 피해자의 적극적인 동의를 얻었는지’를 성폭행의 기준으로 삼자는 얘기다. 비동의 간음죄는 현행법의 허점을 드러내고, 그간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한 성폭력 피해 여성들의 경험을 새롭게 법에 담아내려는 시도라고 여성계는 강조해왔다. 박 연구위원은 “성적 자기결정권을 ‘상호동의와 이해에 기초한 민주적 토대’ 위에 구축하기 위한 패러다임의 변화”라고 평가했다. 최근 유엔여성차별철폐위원회도 한국 정부에 “형법상 성폭행을 폭행, 협박이 있는 경우로만 한정하지 말고 피해자의 동의 여부를 중점에 두도록 시정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다만 ‘피해자의 의사’라는 모호한 개념을 범죄 구성 요건으로 삼는 것, 국가의 형벌권을 동원해 여성의 성적자기결정권을 보호하는 것은 여성을 과잉보호해 결국 여성을 폄하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는 반론도 있다. “따라서 법으로 이를 정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다각적 검토와 공론화가 필요하다”고 박 연구위원은 덧붙였다.

▶ ‘동의했냐’ 묻는 선진국,  ‘저항했냐’ 묻는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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