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10월 미국 시애틀에서 개최되었던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가 회원국간의 이견

과 전세계 시민·사회 단체들의 거센 반발로 무산되었다. 그리고 지금 카타르 도하에서 제4

차 각료회의가 진행되고 있다. 강행한다는 것이 더욱 정확한 표현이려나?

각료회의 시작 전부터 선진국들은 자신의 입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제3세계 국가를 협박하고

종용해왔고 카타르라는 야당조차 없는 나라에서 심지어 배타고 바다까지 나가 회의를 개최

하고 있다.

WTO가 표방하는 무역자유화는 초국적 기업에게 무한한 ‘자유’를 주고 전세계 민중 특

히 제3세계 민중에게 독약이라는 점은 더 이상 논란의 여지가 없다. 특히 이번 4차 각료회

의에서는 지적재산권, 서비스, 투자, 정부조달 등 제3세계 국가들이 반대해온 새로운 의제들

이 협상에 포함되었는데 이는 그 누구보다 여성에게 치명적이다.

우선 WTO 지적재산권(TRIPs)협정으로 여성 환자 중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에이즈 등

‘빈곤의 질병’ 치료가 초국적 기업 이윤에 희생될 뿐 아니라 수백년 간 이어져온 여성 농

민의 전통 지식이 기업의 ‘지적 재산’이 되어 버려 여성 농민들은 생존수단을 잃고 있다.

서비스협정(GATS)은 교육, 보건, 에너지 등 사회 기본 서비스를 시장에 종속시키고 외국

자본에 개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한국에서는 공공영역이 상당 부분 축소된 상태인데

그나마 남아 있는 공공 서비스도 시장논리에 종속되고 불안정해져 양육과 보살핌 등 가부장

제가 여성에게 부여한 ‘전통적 노동’의 부담이 증대될 것이다.

게다가 초국적 자본의 ‘자유로운’ 투자활동에 ‘방해’가 된다고 간주되는 모든 국내법은

철폐 대상이 된다.

실제로 미국 연방정부는 주요 정부조달 계약 총 가치의 5%를 여성 소유의 소기업에 할당하

도록 하고 있다. 남아공에서도 정부조달에서의 여성 할당제가 시도되고 있다. 그런데 WTO

투자 및 정부조달 개방화 관련 규범에 의하면, 여성을 보호하려는 최소한의 장치가 무역자

유화를 가로막는 부당한 ‘규제’가 될 수 있다. 이를 이유로 초국적 기업은 국가를 고소해

규제 철폐는 물론 배상금까지 얻어낼 수 있는 상황이 되어 버린다.

여성환경개발기구(WEDO) 등 몇몇 국제 여성 단체들은 WTO의 주된 행위자 중 절대 다수

가 남성임을 지적하면서 WTO의 의사결정에 여성들이 참여함으로써 남성편향적 세계화에

제동을 걸자고 제안한다. 이는 국제 무역 관련 의사결정 과정에 개입하는 것이 원천봉쇄 되

어 온 여성들에게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그러나 WTO의 존재 기반 자체가 초국적 자본의 이윤 증대이고 현재 WTO가 파행으로 치

닫고 있는 점을 봤을 때, 의사결정 과정 참여 내지는 WTO ‘내부 개혁’이 과연 세계화의

흐름을 막아낼 수 있을지는 심히 의심스럽다. 여성, 특히 제3세계 여성은 WTO에 대한 거

부를 분명히 하면서 오히려 여성에게 이로운 새로운 무역체제를 수립하는 방향으로 나아가

야 한다.

시애틀 각료회의를 반대하는 데에도 이번 도하 각료회의를 반대하는 전세계적 시위에서도

‘그녀들’은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이제 여성들이 보다 큰 목소리를 내야 한다. 단순히

‘민중 일반’에 이로운 대안을 내놔야 한다는 선언을 넘어 세계 빈곤층의 70%를 차지하는

‘여성’에게 이로운 것은 무엇인지를 고민하면서, 대안 형성에 있어 적극적인 주체로 나서

야 할 때가 되었다.

국제연대 정책정보센터(PICIS)/세계화반대 여성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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