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0 장애인의날 기획

#1 “나, 드디어 버스 탈 수 있게 됐어. 사실 지금까지 시외로 나갈 수 있는 버스 중 단 한 대도 장애인이 탈 수 있는 버스가 없다는 게 더 놀랍다. 장애인의 이동권은 왜 이렇게 차별받고 있을까? 이것도 장애인들이 몸을 묶고 시위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결과였잖아. 너는 이런 시위 안 해도 버스 탈 수 있었지? 그런데 왜 나는 이렇게 싸워야만 권리를 얻을 수 있는 걸까?”

‘굴러라구르님’이라는 이름으로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는 지체장애인 김지우(18)양은 지난 2월 14일 ‘휠체어 장애인과 고속버스’라는 제목의 영상을 올렸다. 그의 지적대로 휠체어를 탄 장애인은 아직도 대중교통을 자유로이 이용할 수 없다. 2005년 만들어진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은 모든 교통수단을 “차별 없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하여 이동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도록 하고 있지만 현실은 다르다. 시외버스나 고속버스 중엔 아직 저상버스가 없다.

#2 8년 전 사고로 다리를 다친 뒤로 거동이 불편해 전동휠체어를 사용하는 김인희(32·가명) 씨는 바리스타를 꿈꾼다. 틈틈이 입소문 난 카페들과 커피 관련 매장을 찾아 구경도 하고 커피 맛도 보려 노력한다. 그러나 휠체어를 탄 채로는 입장조차 없는 곳이 많아서 아쉬울 뿐이다.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조차도 휠체어 탄 고객을 배려해 진입로 등을 설계한 곳은 드물다. 드물게 문턱이 없고 엘리베이터를 갖춘 카페도 접근로가 비좁아 이용하기 불편하다.”

‘오이도역 추락참사’ 후 17년

장애인 이동권 개선 이어져

시내 저상버스 도입에 올해부턴

고속·시외버스 휠체어 탑승시설 설치 의무화

‘장애인 이동권’이 우리 사회의 주요 과제로 떠오른 것은 2001년이다. 그해 1월 22일, 서울 지하철 4호선 오이도역에서 70대 장애인 부부가 탄 장애인용 수직형 리프트가 추락했다. 아내 박소엽 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사망했다. 분노한 장애인들이 연대해 목소리를 높였고, 지하철 선로를 가로막거나 몸에 쇠사슬을 묶고 도로를 점거하는 등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장애인들의 절박한 연대 행동은 법제도의 변화로 이어졌다. 2003년 국립국어원은 ‘이동권’을 표준국어대사전에 ‘신어’로 수록했다. 2005년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이 만들어졌다. 시내 저상버스(계단이 없고 바닥이 낮으며 경사로가 설치돼 휠체어를 타고도 쉽게 타고 내릴 수 있는 버스) 도입, 지하철 엘리베이터 설치, 시각장애인용 음성유도기 설치, 보행환경 개선 등 여러 조처가 이뤄졌다.

지난 1월엔 고속버스, 시외버스 등 장거리 노선버스에 휠체어 탑승 시설 설치를 의무화하는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토교통부와 기획재정부는 휠체어 사용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을 위해 고속버스와 시외버스에 휠체어 승강설비 설치 등 필요한 대책을 마련하라는 인권위 권고를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이르면 내년부터 휠체어를 탄 장애인도 장거리 버스를 탈 수 있을 전망이다. 그러나 업계는 “과도한 비용이 든다”며 수용하지 않겠다고 밝혀 갈등이 예상된다.

장애인 공중이용시설 접근권도 늘려야

공중이용시설 10곳 중 8곳

출입구에 턱이나 계단 설치...장애인 출입 불편

장애인들, 최근 기업·정부에 접근권 보장 소송 제기

장애인의 공중이용시설 접근권 확대도 오랜 과제다. 1997년 제정된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장애인등편의법)과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따라, 시설주와 국가는 휠체어 이용 장애인 등이 공중이용시설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현실은 다르다. 건물 턱과 계단 때문에 장애인은 시설 입장조차 어려운 경우가 많다. 휠체어로 이동하기 어려운 내부 구조, 좌석 배치도 문제로 지적됐다. 인권위 조사 결과, 음식점, 편의점, 약국 등 공중이용시설 중 주된 출입구에 2cm 이상의 턱 또는 계단이 있어 장애인이 쉽게 출입하기 어려운 시설이 전체의 83.3%나 된다. 경사로가 없는 시설이 67%였고, 경사로를 설치했더라도 법적 기준을 충족한 경우는 39.4%뿐이었다(2016년 인권위 ‘인권상황실태조사’).

장추련 등은 지난 11일 커피 전문점 투썸플레이스 등 일부 기업과 정부에 차별 구제청구 소송과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고 △통행 가능한 접근로 △턱 없는 출입구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 설치 △가맹점에 점포환경 개선 요구와 비용 일부 부담 등을 요구했다.

인권위도 내년부터 신축·증축·개축되는 50제곱미터(약 15평) 이상 공중이용시설 출입구에 높이차이 제거 등을 의무화하고, 편의시설 설치가 곤란할 경우에도 대안을 강구하도록 보건복지부장관에게 관련 법 개정을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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