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은 노래가, 영화가 됐다.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시작한 싸움이자, 살아남은 이들의 슬픔을 달래는 일이었다. 세월호 참사 4주기를 맞아 각자의 방식으로 참사를 추모해온 여성 문화예술인 4인을 만났다.

세월호 참사 기억·추모하는 여성 문화예술인 4인

 

세월호 4주기를 맞아 지난 1년간 세월호 참사를 추모해온 여성 문화예술인 4명을 만났다. (왼쪽부터) 옴니버스 다큐 영화 ‘공동의 기억:트라우마’를 만든 오지수 감독과 주현숙 감독, 세월호 추모곡을 발표한 싱어송라이터 시와, 조동희 씨. ⓒ여성신문
세월호 4주기를 맞아 지난 1년간 세월호 참사를 추모해온 여성 문화예술인 4명을 만났다. (왼쪽부터) 옴니버스 다큐 영화 ‘공동의 기억:트라우마’를 만든 오지수 감독과 주현숙 감독, 세월호 추모곡을 발표한 싱어송라이터 시와, 조동희 씨. ⓒ여성신문

다큐 영화 ‘공동의 기억:트라우마’

함께 만든 오지수·주현숙 감독

“세월호, 개인 문제 아닌 사회적 참사…

일상 속 시스템과 권력 감시하자”

세월호 문제를 다룬 영화는 여럿이나, ‘세월호 세대’의 눈으로 본 이야기는 드물다. 오지수 감독은 2014년 4월 참사 당시 고등학생이었다. 2016년부터 추모·연대 활동을 영상으로 기록하면서 동갑내기 생존 학생들과 친해졌고, 그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오 감독의 첫 다큐멘터리 영화 ‘어른이 되어’는 탄식이나 분노보다 함께 웃고 밥 먹고 대화하는 일상을 비춘다. 살아남아 20대를 맞은 여성들은 조심스럽게, 하지만 분명한 어조로 “사람이 먼저인 세상” “친구들에게 떳떳한 사람”을 만들겠노라고 말한다.

 

오지수 감독의 ‘어른이 되어’ 중 ⓒ시네마달
오지수 감독의 ‘어른이 되어’ 중 ⓒ시네마달

 

주현숙 감독의 ‘이름에게’ 중 ⓒ시네마달
주현숙 감독의 ‘이름에게’ 중 ⓒ시네마달

주현숙 감독의 다큐 영화 ‘이름에게’는 세월호 참사 이후를 살아가는 평범한 시민들에 주목한다. 서촌 커피공방 사장, 사고 수습을 도우려 목포 바다에 나갔던 어민, 고등학교 교사, 변호사… 안타까움과 비통함을 넘어 ‘지금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자’고 말한다. “직접적인 피해자가 아닌 이들도 답답함과 슬픔을 토로하고 변화를 위해 고민한다. 세월호 참사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참사라는 증거”라고 주 감독은 말했다.

두 감독은 세월호를 추모하는 미디어 활동가들의 연대체 ‘4.16연대 미디어위원회’에서 활동해왔다. 올해 참사 4주기를 맞아 문성준·엄희찬 감독과 함께 ‘기억과 트라우마’라는 주제로 각각 단편 다큐 영화를 만들었고, ‘공동의 기억:트라우마’라는 옴니버스 다큐 영화 형태로 지난달 ‘2018 인디다큐페스티발’에서 첫선을 보였다. 현재 전국 ‘찾아가는 극장’ 공동체 상영을 통해 관객들과 만나는 중이다.

 

(왼쪽부터) 오지수 감독과 주현숙 감독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왼쪽부터) 오지수 감독과 주현숙 감독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주 감독은 “지난 3년간은 세월호를 추모하는 일조차 억압받아야 했다. 세월호는 아픈 사람들만 아프고, 생각하는 사람만 생각하는 문제였다”라고 말했다. 그는 ‘83인의 인질’(2002)부터 ‘빨간 벽돌’(2017)까지 이주노동자, 결혼이주여성과 여성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의 이야기를 꾸준히 다뤄왔다. “이번에는 세월호 문제를 분명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작품, 더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자” 했다.

오 감독은 이번 작품을 통해 ‘피해자 프레임’을 깨고자 했다. “생존자들은 삭제나 단절이 불가능한 비극을 겪은 이들이지만, 동시에 힘차게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이다. 내가 만난 생존자들은 쾌활하고 긍정적이며, 자신의 자리에서 무언가를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이들은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과 문제 해결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제대로 해결되는지 감시하자”고 입을 모았다. “내 맡은 바를 다하면서, 원칙대로 되지 않는 일들이 주변에서 일어나는지 감시하자. 세월호뿐 아니라 GMO 방사능 문제, 미세먼지 등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생기는 문제에 관심을 갖자.”(주 감독) “일상 속 우리를 불편케 하는 권력들을 인식하고 감시하자.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줄 알았던 저도 카메라를 들면서 무언가를 바꾸려 하고 있다.”(오 감독)

세월호 미수습자 추모 음반 ‘집에 가자’

참여한 싱어송라이터 시와

“미수습자들 돌아오길…

남 헐뜯기 전에 나를 돌아보는 사회로”

 

싱어송라이터 시와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싱어송라이터 시와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엄마가 왔으니 집에 가자/엄마 손 꼭 잡고 집에 가자/얼마나 추웠니 그곳에서…” 아직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을 부르는 노랫소리가 덤덤하다. 그래서 더 간절하고 애틋하다. 세월호 미수습자 추모곡 ‘집에 가자’는 싱어송라이터 시와, 김목인, 황푸하가 지난해 4월 발표한 프로젝트 앨범 ‘집에 가자’ 수록곡이다. 안산 단원고 2학년 조은화·허다윤양 등 당시 미수습자 9명을 기억하기 위한 노래다. 2017년 1월 말 팽목항에서 은화, 다운 어머니를 만나고 돌아온 황푸하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2018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포크-노래 부문 후보에 올랐다.

“지난해 목포에서 미수습자 가족들을 만났는데 한 어머니가 저를 꽉 안아주셨다. 오히려 그 분께 제가 큰 위안을 받았다. 부족하지만 이 노래를 통해 미수습자들의 이야기가 더 널리 알려지길, 사람들이 바다에서 돌아올 수 있길 바랐다.” 노래 발표 이후 지금까지 4명의 유해가 발견돼 가족들 곁으로 돌아왔다. “잘 됐다고, 노래에 힘이 있는지도 모르겠다며 박수쳤었죠.”

 

싱어송라이터 시와, 김목인, 황푸하가 세월호 참사 희생자 중 미수습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지난해 4월 발표한 프로젝트 앨범 ‘집에 가자’
싱어송라이터 시와, 김목인, 황푸하가 세월호 참사 희생자 중 미수습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지난해 4월 발표한 프로젝트 앨범 ‘집에 가자’

하지만 미수습자 5명은 아직도 돌아오지 못했다. 세월호가 인양됐고, 2기 특별조사위원회가 출범했지만 참사의 원인은 아직 분명히 밝혀지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와 갈등을 빚은 유가족들을 조롱하고 적대시하는 ‘혐오’ 현상도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시와는 “모두가 성장과 발전에만 목매어 사느라 늘 불안과 압박에 시달리고 있진 않나 돌아봤으면 좋겠다. 내 상식이 틀릴 수도 있다는 걸 늘 염두에 두고, 누군가를 비난하기에 앞서 나부터 돌아보는 사회로 나아가길 바란다”고 했다.

세월호 추모곡 ‘바다로 가는 기차’ 낸

싱어송라이터 조동희

“세월호는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

고통 앞에선 중립 없다는 말 되새길 때”

 

싱어송라이터 조동희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싱어송라이터 조동희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잊지 말아줘요 그 봄의 나를...” 싱어송라이터 조동희는 2015 ‘작은 리본’ 2016 ‘너의 가방’에 이어 올해도 세월호 추모곡을 발표했다. ‘바다로 가는 기차’는 세상을 떠난 지인의 유언에서 착안한 노래다. “어느덧 네 번째 봄. 기억할 것들, 보내야 할 것들에 대해 조금씩 무뎌져 가는 때에 읽어보자. 떠나는 사람이 남겨진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 세월호 헌정 영화 ‘눈꺼풀’과 협업한 뮤직비디오도 공개했다.

 

12일 공개된 조동희의 신곡 ‘바다로 가는 기차’ ⓒMnet
12일 공개된 조동희의 신곡 ‘바다로 가는 기차’ ⓒMnet

“세월호는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였다. 너무나 이상한 세상이라고 생각했다. 힘들고 두려울 때가 많았지만 얘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박근혜 정권이 세월호 시국선언에 참여한 문화예술인 대부분을 검열·지원 배제한 일이 최근 드러났다. 조동희도 지난 정권 하에서 세월호 추모곡을 발표했다는 등 이유로 압박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2015년, 그의 세월호 추모곡 ‘작은 리본’ 뮤직비디오는 채널 ‘엠넷’으로부터 ‘심의 보류’돼 방송과 음원 사이트에서 차단됐다. 노란 리본, 팽목항 풍경 등을 담았다는 게 이유였다. 오빠 고 조동진과 조동익이 독재 정권 시절 문화예술 작품 검열을 당하는 것을 봤기에 더 치를 떨었다. “처음 세월호 추모곡을 냈을 때 주변 관계자들이 ‘일 다 끊기니 그만하라’며 말렸다. 하지만 이건 정말 아니다 싶었다. 뼛속 깊이 반골 기질이 있어서 그랬나. 그래서 전하고픈 메시지를 계속 노래로 만들기로 했다.”

그는 세월호 참사는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 기회”라고 말했다. “사회적 약자에 공감하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내가 받을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 고통을 외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4년 한국에 왔을 때 ‘세월호 유족의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 없다’고 말했다. 우리에겐 그런 자세가 필요하지 않나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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