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TV드라마 ‘X-파일’은 2002년 시즌 9로 끝나고 특집극으로 2016년 시즌 10, 2018년에 시즌 11이 방송됐다. 여기 나오는 의사 출신의 FBI 요원 데이나 스컬리(질리언 앤더슨 분)는 드라마에서 전문직 여성의 입지를 완전히 바꾼 혁명적인 캐릭터다. 그 이전에는 전문직 여성 캐릭터라고 해도 병원에서 연애하는 대상, 법정에서 연애하는 대상, 경찰서에서 연애하는 대상 말고는 남자의 보조수단에 불과했다. 스컬리 역 후보 배우 중에 육감적인 몸매로 당시를 풍미했던 파멜라 앤더슨(외모 차이도 물론이지만 성씨가 같기에 더 오래 회자되었다)이 있었다는 사실은 그 시대를 적확히 보여준다. 

이 드라마가 오랜 인기를 끈 요인은 주인공 스컬리의 과학지식이 장식이나 양념이 아니라는 데 있다. 스컬리의 지식은 파트너인 멀더가 사고 친 것을 얼렁뚱땅 수습하는 플롯상 도구가 아니었고, 멀더의 의견이 정말로 엇나갈 수 있는 위험천만한 것임을 환기하는 균형추였다. 스컬리는 멀더의 말에 무조건 반대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 검증이 된다면 아무리 해괴망측하고 인사고과에 해가 되는 일이어도 멀더를 지지하는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멀더와 스컬리의 ‘툭탁툭탁’은 궁극적으로 남자가 옳다는 편견을 강화하는 치명적 약점에도 불구하고 스컬리를 남자도 틀릴 수 있음을 현명하게 지적하는 이성의 화신으로 만들었다. 아직도 여성 인물의 전문성이란 극중 역할이 없는 장식이거나, 유능함은 독한 여성의 수식어다. 1990년대 TV에 등장한 스컬리는 그런 편견을 여전히 부수는 선두주자이다. 그 이후에 등장한 적어도 미국 드라마의 여성 인물들은 설정상 전문직이면 정말로 전문성을 극 전개에 쓰게 됐고, 안 그러면 작가가 게으른 것이었다. 

스컬리는 드라마 세계만이 아니라 현실 세계의 여성과학 발전 역시 인도했다. 2018년 미국에서 ‘X-파일’ 시즌 11이 방송될 무렵 이런 기사가 났다.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쪽에 일하는 여성 상당수가 스컬리의 영향을 받아 입문했고, 이를 ‘스컬리 효과(Scully Effect)’라고 부른다는 것이었다. 지나 데이비스의 젠더 연구소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이공계 전공자의 반수 이상이 스컬리의 영향을 받아 해당 전공을 선택했다.

스컬리와 ‘X-파일’이 그렇게 수많은 여성에게 빛을 비춘 것과 달리, 정작 드라마 제작자인 크리스 카터가 스컬리 효과라는 말을 2013년에 처음 들었다는 사실은 앞으로 나아갈 길이 멀다는 것도 보여준다. 사람의 머릿수가 늘은 만큼, 이제 중요한 것은 그 자리에 맞는 대접을 받으며 온전히 뿌리를 내리는 것이다. 스컬리라는 캐릭터가 이룬 어마어마한 가치에 비해 앤더슨이 걸맞은 대접을 쉽사리 받지 못한 것은 시사적이다. 앤더슨은 무명 시절에 ‘X-파일’을 시작했기에 동료 배우 데이비드 듀코브니보다 한참 낮은 출연료를 받고 같은 분량의 일을 해야 했다. 그런데 제작사인 폭스사는 2016년 시즌10 당시에도 앤더슨에게 또다시 듀코브니보다 낮은 출연료를 제시했고, 앤더슨은 이에 항의해서 동일임금을 얻어냈다. 스컬리가 이공계 지원 여성에게 힘을 준 것처럼, 앤더슨은 일터의 여성들에게 용기를 주고 있다. 스컬리 효과는 드라마를 더 재미있게 보기 위한 자극제가 아니라 삶의 극복을 보여주는 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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