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고 겪던 모녀, 사망 두 달 만에 발견

4년 전 ‘송파 세모녀 사건’ 이후로도

가난한 한부모 비극 막지 못한 이유는

“저소득층 복지 사각지대 여전

한부모들 요구·현실 반영해야”

 

정부가 그간 ‘세모녀법’(복지3법)을 제·개정하는 등 복지 사각지대를 줄이려 노력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 나왔다. ⓒBigstock
정부가 그간 ‘세모녀법’(복지3법)을 제·개정하는 등 복지 사각지대를 줄이려 노력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 나왔다. ⓒBigstock

생활고에 시달리던 한부모 가족이 충북 증평군에서 숨진 지 두 달 만에 발견됐다. 남편이 죽은 후 빚과 육아를 떠안은 엄마는 “혼자 살기 너무 힘들어 딸과 함께 간다”는 유서를 남겼다. 가족이 생활고로 목숨을 끊은 ‘송파 세모녀 사건’ 후 불과 4년 만의 일이다. 정부가 그간 ‘세모녀법’(복지3법)을 제·개정하는 등 복지 사각지대를 줄이려 노력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부모·여성단체들은 “증평 모녀의 사망은 개인 문제가 아닌 부실한 복지 시스템의 문제”라며 한부모 지원 정책과 관련 법제도의 개선을 촉구했다. 

지난 6일 증평군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3살배기 딸과 함께 숨진 채 발견된 40대 여성에겐 1억5000만원가량의 빚이 있었다. 남편이 사업에 실패하고 지난해 9월 사망한 후 홀로 빚과 육아를 떠안았다. 그에겐 특별한 직업이 없었다. 차 두 대를 팔아 빚을 갚으려 했지만 판매 차량이 압류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 사기 혐의로 고소당하기도 했다. 공과금, 월세, 관리비 등을 4개월가량 체납했지만 아파트 관리비로 분류돼 지자체에서 알아채지 못했다고 한다. 

관리사무소의 신고로 출동한 소방당국이 모녀의 시신을 발견한 것은 이들이 숨진 지 두 달이 지난 후였다. 시신 상태, 아파트 수도 사용량이 지난해 12월부터 0으로 표시된 점 등을 고려해 나온 추정이다. 평소 가족이나 이웃과 왕래가 없어 아무도 이들의 쓸쓸한 죽음을 알아차리지 못했다고 한다. 아이에게는 삶을 선택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경찰은 숨진 여성이 남편과 사별한 후 신변을 비관했거나 평소 심각한 우울증을 앓았을 가능성에 초점을 두고 수사 중이다.

“공무원 찾아올 때까지 기다리기보다

찾아가는 복지 서비스로 전환해

가난·상실감 겪는 초기 한부모 적극 살펴야”

 

증평 모녀의 비극은 ‘복지 사각지대’가 낳은 비극이다. 갑자기 남편과 수입을 잃고 빚더미에 오른 여성에겐 아무런 안전망이 없었다. 소득이 없었지만 정부의 복지 수급대상에 포함되지 못했다. 거주지인 임대아파트의 보증금 1억2900만원이 재산으로 간주됐기 때문이다.

모녀가 지자체나 다른 관련 기관에 도움을 요청한 기록은 없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해야만 했을까. 한부모 단체들은 “한부모가 직접 담당자를 찾아가 설득해야만 지원 받을 수 있는 ‘신청주의’ 복지 행정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특히 이혼이나 사별로 갑자기 한부모가 돼 가난과 상실감의 이중고를 겪는 이들에겐 “적어도 초기 1년간 복지담당자의 적극적인 개입과 관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전영순 한국한부모연합 대표는 “한부모가 되는 순간부터가 굉장한 위기다. 지자체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개입해 이들의 고충을 살펴야 한다”고 했다. 송다영 인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한부모의 개념을 더 넓게 정의해야 한다. 이혼이나 사별 후 절대적 빈곤에 빠진 한부모만 보호하는 현 복지체계로는 사각지대를 없애기 힘들다. 남편이 있어도 육아를 홀로 맡은 실질적 한부모, 중산층과 극빈층의 중간에 아슬아슬하게 놓인 사람들은 보살피질 못한다. 이런 이들이 빈곤에 떨어지지 않게 막을 사전 예방 체계가 없다. 한부모가 된 후부터 이들의 생활이 안정될 때까지 국가가 다리를 놓아줘야 한다”고 했다. 

 

한부모 단체들은 재산과 외양만으로 타인의 어려움을 판단하거나, 부정수급 여부부터 확인하려는 사회 풍토에 ‘경고’를 보냈다. 최형숙 변화된미래를만드는미혼모협회인트리 대표는 “한부모가 담당 공무원을 찾아가 모든 상황을 털어놓고 ‘불쌍하다’고 인정받아야만 수급을 받는 현실이다. 저는 한부모들에게 주민센터 갈 때 ‘민낯에 허름한 옷 입고 머리 풀어헤치고 가야 지원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깔끔한 차림으로 갔다가 담당자에게 ‘멀쩡하시잖아요’라는 말을 들은 분도 있다. 그게 한국 문화다. 일반인들도 한부모의 거주지, 옷차림만 보고 ‘살만해 보이는데 왜 지원이 필요하냐’고 묻는다”고 지적했다.

관련 예산·인력 확충, 담당자 역량 강화도 시급하다. 한부모가족지원센터는 서울과 경남 2곳뿐이다. 여성가족부를 비롯해 각 시·도·군에 위치한 한국건강가족진흥원이 한부모가족상담소를 운영하나 실효성은 낮다는 지적이 나왔다. 전 대표는 “현장에선 예산 등 이유로 담당자가 계속 바뀌면서 한부모의 심리 상태조차 잘 이해 못 하는 공무원이 많다. 인력을 늘리는 한편 이들이 꼭 한부모 이해 교육부터 받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법정 한부모소득기준 현실화하고

‘월 13만원’ 양육수당도 올려야”

애초에 정부 지원 규모도, 선정 기준도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이 있다. 만일 숨진 여성이 한부모로 인정됐다고 해도 받을 수 있는 지원은 아이 양육수당 월 13만원이 전부다.

올해 최저시급 7530원 기준으로 월 40시간 일하면 약 157만원을 번다. 그런데 법적으로 한부모로 인정받으려면 2인가구 기준 월 가구소득이 약 148만원(중위소득 52%) 이하여야 한다. 한부모들은 “우리가 최저임금도 못 받고 일해야만 나라에서 도와주겠다는 거냐”며 법정 한부모소득기준을 높여달라며 청와대 국민청원에 나섰다.

정부는 이런 요구를 제도에 반영해 나가고 있다. 여가부는 올 1월 한부모가족증명서 발급대상 소득기준을 높여서 ‘중위소득 60% 이하’ 한부모도 대학특례입학·임대주택 우선순위 등 비현금성 지원을 받을 수 있게 했다. 전 대표는 “한부모 양육수당 월 13만원도 더 현실적인 수준으로 올려야 할 것”이라고 했다. 

결국 한부모 지원 정책과 관련 법제도의 전면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국한부모연합,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한국미혼모가족협회, 인트리 등 한부모 지원단체·여성단체들은 10일 성명서를 내고 ▲복지담당자가 초기 한부모를 지속적으로 관리 ▲민간단체 운영 한부모 서포터즈 활성화로 한부모 생애주기별 다양한 상담 지원 ▲한부모들이 다양한 생활 지원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는 통합적 전달체계 구축 ▲법정 한부모 소득기준 확대 ▲한부모 부양의무제 기준 폐지 등을 요구했다. 

이들은 “빚에 시달리면서도, 살고 있는 집의 보증금이 지원대상 기준을 넘어선다고 해서, 이 가족이 직접 찾아가 도움을 청하지 않았다고 해서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니며, 사별의 아픔에 경제적 어려움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리다 어린 자식과 함께 죽음에 이른 것은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최 대표는 “어렵다고 꿈도 못 꾸나. 겉모습만 보고 판단 말고, ‘피해자’의 이미지를 강요하지 말고, 다양한 한부모를 격려하고 지지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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