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필화 이화여대 여성학과 명예교수

이은정 베를린자유대 한국학연구소장

통일은 꿈처럼 이뤄지는 것이 아닌

일상의 큰 변화를 만드는 현실

성급하게 통일을 말하기 보다

긴장완화에 대한 의미부여와

평화 정착 방안부터 차근차근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장필화 이화여대 여성학과 명예교수(왼쪽)와 명예교수와 이은정 베를린자유대학의 한국학연구소 소장은 대화를 나누며 환하게 웃고 있다. 
두 사람은 “통일을 이야기하기 전에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는 과정이 필요하다”며 차이를 존중하는 연습이 평화로 가는 길이라는 점에 공감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장필화 이화여대 여성학과 명예교수(왼쪽)와 명예교수와 이은정 베를린자유대학의 한국학연구소 소장은 대화를 나누며 환하게 웃고 있다. 두 사람은 “통일을 이야기하기 전에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는 과정이 필요하다”며 차이를 존중하는 연습이 평화로 가는 길이라는 점에 공감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아시아에서 처음 생긴 여성학과 첫 전임교수인 장필화 이화여대 여성학과 명예교수와 2008년부터 독일 베를린자유대학의 한국학연구소를 이끌고 있는 이은정 소장이 9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여성신문에서 대담을 나눴다.

한국 여성학의 태동과 발전을 이끈 장 교수는 정년퇴임을 하며 앞으로 “평화의 여성학”을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 교수는 독일 분단 시절인 지난 1984년부터 독일에서 생활하며 한국정치와 한반도 통일을 연구해온 통일 전문가다. 두 사람은 평화와 통일이라는 주제를 젠더 관점에서 바라보고 독일 통일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과 한반도 평화 정착과 통일을 위한 방안에 관해 폭넓게 의견을 주고받았다. 김효선 여성신문 발행인이 사회자로 대담을 진행했다.

이날 대담에서 두 사람은 “통일은 꿈처럼 이뤄지는 것이 아닌 일상의 큰 변화를 만드는 현실”이라며 “성급하게 통일을 이야기하기 보단 긴장완화에 대한 의미부여와 평화 정착 방안부터 차근차근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통일 준비는 한국 사회 개혁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며 “우리부터 개인이 타인과의 차이를 인정하고 동등한 인격체로서 존중할 수 있어야 조금 더 다른 타인(북한 주민)과의 공존을 이야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효선 여성신문사 발행인(이하 김) “최근 남북 관계에 해빙 무드가 조성되면서 통일이 금방이라도 이뤄질 것처럼 말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이은정 베를린자유대학의 한국학연구소 소장(이하 이) “남북 간 긴장상태가 계속됐기 때문에 긴장이 완화되는 것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가 크다. 한국학연구소도 이런 분위기가 반갑다. 지난해 12월까지만 해도 하루가 멀다하고 ‘전쟁이 나는 것 아니냐’는 언론사들의 연락이 연구소에 쏟아졌다. 북한이 미사일 테스트를 하는 날에는 하루종일 전화가 불이 났을 정도다. 하지만 평창 동계올림픽을 기점으로 평화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전쟁 위협에 대한 질문들도 사라졌다. 하지만 벌써부터 통일에 대해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성급하다고 본다. 물론 독일의 통일 경험에 비춰보면, 갑자기 변화가 올 수도 있다. 실제로 독일은 1961년 베를린장벽이 세워지고, 1962년 쿠바 미사일 봉쇄가 이어지면서 전쟁 위기가 고조됐는데, 이렇게는 더 이상 안된다는 요구가 커지며 긴장완화로 이어졌다. 동독 안에서 개혁 열기가 높아지면서 독일 통일도 한순간에 이뤄졌다. 우리도 그렇게 될 수도 있다. 지금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 남북한 문제는 꿈이 아닌 현실과 맞닿는 문제다. 지금은 작은 걸음을 건너뛰려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인 작은 걸음을 조금씩 이어가다보면 큰 걸음으로 나아갈 수 있다.”

장필화 이화여대 여성학과 명예교수(이하 장) “시대가 엄혹해서 지난 가을과 겨울, 전쟁 위기에 가슴 졸이다가 갑자기 1월 1일부터 빠른 속도로 일어나는 변화가 감지됐다. 지난해 북한과 미국이 막상막하로 험하게 전쟁을 위협하는 상황에서 마음이 차갑게 식었었다. 엊그제 방북 예술단 공연을 보면서 마음이 풀리면서 또다시 왜 애당초 분단이 일어났는지를 생각하며 새롭게 질문을 던지게 된다.”

“독일이 통일되자 독일은 갑자기 다가온 통일에 대해 현실적인 문제로 접근했다. 반면 한국의 반응은 뜨거웠다. 독일처럼 남북한이 금방이라도 통일이라도 될 듯 했지만 곧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었다. 이후 30년 동안 평화 분위기가 조성될 때마다 한국은 동일한 패턴으로 통일에 대한 기대와 실망을 반복했는데, 이번에도 그 패턴이 반복된다는 느낌이 든다.”

 

장필화 이화여대 여성학과 명예교수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장필화 이화여대 여성학과 명예교수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긴장완화에 대한 의미부여부터

“동일하지만 동일하진 않기도 하다. 객관적인 조건을 놓고 보면, 북한은 핵무기 완성 단계에서 오는 자신감을 보이는 반면, 다른 한편 유엔(UN)의 경제적 제재 속에서 버텨내기 힘든 극단적 상황에 놓여 있다. 물론 이전보다 미디어가 통일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내는 느낌도 있다. 긴 역사 속에서 반복되는 패턴에 대해서도 인식해야 하지만, 이번 사안의 독특한 점이 무엇인지도 분석이 필요할 것 같다.”

“남북한 관계의 변화는 시작됐고, 이제 긴장완화로 가고 있다. 긴장완화에 대해 의미부여하는 것은 생략하고 ‘우물가에서 숭늉 찾기’ 식으로 성급해선 안 된다는 이야기다. 통일은 앞으로의 장기 프로젝트 중에 하나가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다. 이 긴장완화가 평화 정착으로 갈 수 있을지, 그로 인해 북한 사회가 변화할 지는 아직 모른다.”

“남북 정상회담을 이끌어낸 문재인 대통령은 어떻게 평가하나.”

“문 대통령은 지난해 7월 독일 방문에서 ‘신 베를린 구상’을 발표하면서 북한에 계속 제스처를 보여줬다. 지난 1월 북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신년사는 갑자기 툭 튀어나온 것이 아니라, 문 대통령의 신 베를린 구상에 대한 응답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 1월 신년사와 북중 정상회담등으로 일부에선 한반도 운전석을 김 위원장이 가져갔다고 말하는데, 지난해 7월에 문 대통령이 발표한 신 베를린 구상이 남북 정상회담의 시동을 걸었다고 할 수 있다.”

 

이은정 베를린자유대 한국학연구소장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이은정 베를린자유대 한국학연구소장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접근을 통한 변화’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

“가장 현실적인 것이 ‘접근을 통한 변화’라고 본다. 빌리 브란트 전 독일 총리가 주도한 신동방정책이 그것이다. 동독이라는 실체를 인정하고 교류를 시작하는 것에서 출발했다. 독일은 통일 이후 동독 공산당인 사회주의통합당 당원이라고 해서 처벌한 것이 아니고, 구체적으로 인권침해를 한 것이 법적으로 증명된 경우에만 처벌했다. 사회주의통합당의 후신인 민주사회당을 의회주의 체제의 정상적인 정당으로 받아들이면서 공산당 엘리트 또한 체제 내로 흡수했다는 점은 독일통일 과정에서 신의 한 수라고 불린다. 만약 이들을 체제 안으로 끌어들지 않았다면, 체제 바깥에서 저항운동을 벌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접근을 통한 변화’는 동·서독 분단 시절 긴장완화 정책인 이른바 신동방정책을 펼친 빌리 브란트 전 독일 총리가 전략가 에곤 바와 함께 가장 강조한 정책의 목표를 일컫는다.

“매우 중요한 포인트다. 그리고 어떤 자세로 접근하느냐가 또한 아주 중요하다고 본다. 남북이 직접 교류하기 힘들었던 시기, 제3국에서 북한 여성들을 만난 경험이 있다. 그 만남에서 교류에 있어서 존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점을 절실히 느꼈다. 가진 것이 많다는 것이 우월한 게 아니다. 다른 배경에서 살고 있는 상대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것과 연결해 한국 내부에서부터 이런 부분을 개선해나가야 한다. 예를 들어, 현재 한국에 나와있는 북한 출신 사람들을 대하는 한국 사람들의 자세도 바뀌어야 접근을 통한 변화가 제대로 실현될 수 있다.”

“한국에서는 남북한이 한민족이라고 배우면서도, 실제로는 북한 주민, 탈북자들을 타자로 취급한다는 점이 굉장히 의아하다. 독일의 경우 분단 시기에 동독에서 서독으로 이주한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조사를 하려 했지만, 찾기가 아주 어려웠다. 분단 시기에 실제로는 이주한 사람이 많았지만, 동독 출신이라는 점을 알기 힘들만큼 동서독이 자연스럽게 섞여 살았기 때문이다. 동독의 경우, 동독 내에서 개혁이 시작됐을 때 서독을 변혁을 위한 모델, 즉 대안으로 삼았다. 동독이 서독의 체제를 선택한 것이다. 탈북자들의 경우도 이들이 남한의 체제를 선택한 것인데, 자신의 선택이 옳았고, 이곳에서 사는 것이 좋다고 생각할 만큼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최근 미투(#Metoo)가 확산되고 있는데 그 관점에서 북한에서는 언제, 어떻게 그런 움직임이 있을지가 궁금해진다. 미투가 북한과는 상관 없는 이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남북한 교류에 있어 여성과 남성의 관계의 차이 혹은 공통점이 중요 이슈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에 와서 미투와 관련해 계속 부딪치게 된다. 한국에서 만난 남자 교수들이 나와 악수를 하지 못한다고 하더라. 미투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나와 악수를 하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성희롱인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악수를 못한다는 것은 날 성적 대상으로만 본다는 것 아닌가. 북한도 마찬가지다. 북한에 갔을 때 북한 남성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에서 성적인 농담을 많이 하는 것을 봤다. 북한에서도 미투가 나올 순 있다고 본다.”

북한에서 미투는?

“탈북여성들이 한국 여성들에게 부러워하는 것 중 하나가 남성들에게 말대꾸를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미투도 일종의 큰 말대꾸 아닌가. 우리는 동아시아에서도 미투 확산이 빠른 편이다.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언제쯤 적극적인 미투 운동이 일어날 지 지켜보고 있다. 법제도 뿐만 아니라 인식의 체계와 사회활동 등 여러 조건이 성숙한 사회에서 미투가 나타날 수 있다. 그런 차원에서 북한의 미투를 상상해볼 수 있다.”

“평양에서 열린 국제심포지엄에 참가했는데, 그때 만난 북한 여성들은 자신감이 넘쳤고, 자신의 주장을 펼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 같은 느낌이었다. 물론 그곳은 평양이었고, 엘리트여서 다를 수 있다. 북한 사회가 어떻게 변혁할 지 아직은 전혀 모르는 것이니까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으론 한국 사회에서도 미투를 특정인을 해코지 하기 위한 도구로 이용한다는 말까지 나온다고 들었다. 변혁으로 가는 잡음이라고 볼 순 있지만 우려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여성학과 페미니즘에 대한 반격 중 하나가 그것이 사소한 문제라고 취급하는 것이다. 여자와 남자의 관계는 사소하고 사적인 일인데, 지금과 같이 중요한 정세 변화가 일어나는 시기에 그런 사소한 문제를 갖고 중요 아젠다를 가리느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제 생각은 기본적으로 가장 작은 단위에서부터 변화가 와야 하는 것이라고 본다. 인권의 가장 기본은 남자와 여자가 어떤 관계를 맺고 존중하면서 살아가는 데 있고 그것이 한국사회의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페미니즘 이슈는 항상 뒷전으로 밀려왔다. 이제는 같이 가야 한다. 한반도 변화가 중요한 만큼 이제 한국 사회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좋은 관계를 맺고 공존하는 사회라는 것을 우리 스스로에게, 북한 파트너들에게, 전 세계에 보여줘야 한다.”

“굉장히 중요한 말씀이다. 두 개의 사회가 하나가 되는 통일의 과정에서 우리가 이 사회에서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느냐는 또 다른 사회를 만들 때 관계의 기본이 된다. 남녀 관계가 아니라 인간 관계여야 한다. 미투는 ‘나도 사람이다’라는 목소리이지만, 여자가 피해를 입고 남자에게 복수한다는 식의 남녀 대결 구조로 끌고 가는 모습이 보인다. 미투를 가십으로 몰고 가는 것도 우려되는 지점이다. 이 문제는 우리 사회가 모든 타인들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걱정하게 된다. 우리 사회는 타자를 어떻게 포용할 수 있을까도 생각해봐야 한다. 통일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부터 개혁해야 한다. 통일은 꿈처럼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변화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갑자기 새로운 세상이 올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통일은 서로 다른 두 체제의 사람들이 같이 사는 것이다. 일상이 달라지지 않으면 통일이 돼서도 더 큰 문제가 발생한다.”

장필화 “통일을 말하기 전에

평화를 먼저 이야기하자.

전쟁이 없는 상태를 넘어

관계에서의 평화, 타자화하지

않는 것도 평화라면 이런 노력

결여된 통일은 또 하나의 억압,

갈등 만들어낼 수 있어”

이은정 “통일의 과정에서

우리가 이 사회에서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느냐는

또 다른 사회를 만들 때

관계의 기본이 된다.

타자를 어떻게 포용할 수

있을지 생각해봐야 한다”

“통일을 이야기하기 전에 평화를 먼저 이야기하자. 어떤 이유에서든 전쟁은 막아야한다. 그런 점에서 군비경쟁을 억제하는 것과 동시에 어린이들에게 장난감 총을 생각없이 사주는 일도 새롭게 성찰해야 한다. 모두 평화를 전쟁이 없는 상태라고 하기 보다는 관계에서의 평화를 비롯해 무력이나 재력을 갖고 압박하는 상태가 아닌 것, 타자화하지 않는 것을 평화라고 생각해보자. 이런 변화를 위한 노력이 결여된 통일은 또 하나의 억압과 갈등을 만들어내는 길이 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통일했지만 4년 만에 남북 갈등이 불거지면서 20년 넘게 내전을 겪고 있는 예멘과 같은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우리 사회가 포용성, 인간존중, 평화에 대한 개념을 키워야 한다.”

장 “남북한의 차이는 클 수 밖에 없다. 차이는 불편함으로 다가올 수 있지만, 공존하기 위해서는 차이를 존중해야 한다. 차이가 어떤 것인지 배우는 과정이 필요하다. 우리는 경쟁 체제 속에서 물질적인 수준에 대한 목표와 향유에 젖어 있고,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자신의 척도로 본다. 이런 구조 속에서 사는 우리가 어떻게 북한 주민들을 존중하면서 공존할 수 있을지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왼쪽부터) 이은정 베를린자유대 한국학연구소장과 장필화 이화여대 여성학과 명예교수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왼쪽부터) 이은정 베를린자유대 한국학연구소장과 장필화 이화여대 여성학과 명예교수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차이 존중 연습이 평화

“다르다는 것이 틀린 것은 아니지 않나. 차이를 얼마만큼 포용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독일이 내적 통합이 어려웠다고 말한다. 동독 사람들이 살아온 경험과 그들의 역사를 서독 주민들이 부정한다는 것 때문에 내적 통합이 어려웠다고 말한다. 동독 최고인민회의는 1989년부터 11개월 동안 650여개의 법안을 통과 시켰는데, 이 법안들은 서독 체제로 변화하기 위한 것들이었다. 동독이 서독 체제를 수용했다는 말이 맞지만, 동독 주민들은 자신들의 역사와 삶의 방식을 인정해달라고 요구했다. 이들의 요구가 사회에 받아들여지는데 진통을 겪어야 했다.”

“이러한 사례들이 좀 더 많이 자세히 알려지고 나눠지면 평화 정착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독일 통일 경험에 비춰 한국에 해주고 싶은 말을 해달라고 요구를 많이 받는다. 저는 한국사회가 어떻게 변화해야 할지 부터 고민하라고 말한다. 하나의 공동체를 만드는 과정이 통일을 준비하는 과정이다. 타자를 받아들이는 연습을 시작해야, 조금 더 다른 사람을 받아들 수 있는 준비도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또 하나는 지방분권의 중요성이다. 지방분권이 정착한 독일은 통일 후 동독이라는 하나의 정체성이 아닌 5개의 신연방 주로서 정부 별 각자의 정체성을 갖기 시작했다. 그것이 정책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갈등이 일어도 동독과 서독 간 대립 국면이 아니라 각 주정부 간 협력과 갈등의 양상을 띠게 만들었고, 그로 인해 민주주의 경쟁이 이뤄졌고 결국 체제가 빠르게 안정적으로 정착될 수 있었다는 것이 지난 25년 간의 연구 결과다. 한반도 통일 과정에서도 지방분권의 안정적인 발전이 이뤄진다면 북한 지역내에서 민주주의가 정착되는데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독일이나 일본의 경우, 분권주의 역사가 있지만, 한국은 600년 이상 중앙집권제로 운영된 국가다. 중앙은 언론이나 시민사회의 개입으로 어느 정도 개입하고 감시할 수 있지만, 지방자치단체에선 토호, 토착세력에 대한 감시와 견제가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 때문에 수도권 지방의회에선 여성 후보 비율이 그나마 조금씩 증가하지만, 지방에선 당선 비율이 현저히 낮아 지방분권이 되면 여성 정치 대표성이 후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지방분권의 또 다른 장점이 정치 엘리트 훈련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독일의 경험을 다시 들자면 통일 이후 동독지역에서 근무하는 공무원들의 구조를 분석해 본 결과, 고급 공무원은 서독 출신이 절대다수였지만, 지방의회 의원들은 대부분 지역 출신이었다. 그런 구조적 요건 속에서 지역엘리트 통합이 굉장히 빨라졌다. 지금은 지방분권 체제에 대한 문제점들이 있지만, 통일을 염두에 둔다면 지방분권의 약점을 보완하는 방법을 생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지방분권이 잘 돼있다는 것이 차이와 공존에 대한 연습이라 통일 준비에 도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성폭력 극복, 평화로 가는 길

“가장 기본 단계인 개인이 타인과의 차이를 인정하고, 동등한 인격체로서 대한다는 것은 사적인 관계에서의 평화가 가장 커다란 세계 질서와 연결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독일 통일이 우리에게 큰 희망을 줬듯 우리의 가장 어려운 분단 역사를 극복할 수 있다면 전 세계에 큰 희망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여성 내부의 차이를 일단 극복하고, 새로운 세대를 잘 키워내는 것도 중요하다. 이것들이 모두 평화 정착을 위한 필요한 단계라고 본다.”

“한국에서 나타나는 문제는 유럽, 중남미에서도 발생하고 있으며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학 안에서 젠더연구를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국가 간 경계를 넘을 뿐 아니라 학문 분과의 경계도 넘는 연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본다.”

“오늘 대담을 통해 통일과 평화 준비는 나부터, 내 일상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라는 점이 선명해졌다.”

“미투와 남북 정상회담이 겉으로는 별개의 이슈처럼 보이지만, 성폭력 극복은 결국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고 공동체를 만드는 과정이며, 분단을 극복하고 평화로 가는 길이 될 수 있다.”

“평화 정착은 결국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드는 것을 말한다.”

 

장필화 이화여대 여성학과 명예교수

1984년 아시아에서 첫번째로 생긴 여성학과의 첫 전임교수로 부임한 뒤 30년 넘게 여성학을 가르쳤다. 정년퇴임 이후에도 ‘생명·정의·사회를 위한 여성학’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 영국 헐대학교 석사(여성 교육 철학), 서섹스대(여성과 발전학) 박사 학위

△ 1984년 이화여대 대학원 여성학과 첫 전임교수로 부임

△ 한국여성연구소 소장, 이화리더십개발원 원장, 이화여자대학교 아시아여성학센터 소장, 아시아여성학회 회장 지냄. 현 (사)아시아 위민브릿지 두런두런 이사장

△ 여성발전 기여에 따른 녹조근정훈장 수훈

 

이은정 베를린자유대 한국학연구소장

독일 독일에서 한국학을 전파하고 있으며 한독통일자문위원회 독일 측 위원으로 참여하는 등 한국과 독일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 1993년 독일 괴팅겐대학교에서 정치철학 박사 학위

△ 2008년 베를린자유대 한국학과 학과장, 한국학연구소장 부임

△ 2014년 유럽 학술원 회원, 2016년 독일 브란덴부르크 아카데미 정회원 선출

△ 한국과 독일 문화교류 증진에 기여한 공로로 제8회 이미륵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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