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오채민 작가·변영후 연출

극단 가교의 연극 ‘그녀의 그네’, 

아이 잃은 엄마의 이야기 통해

‘세월호 참사’와 우리 사회 들여다보다 

11~15일 대학로 소극장 혜화당서 공연

 

연극 ‘그녀의 그네’ 변영후 연출(왼쪽)과 오채민 작가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연극 ‘그녀의 그네’ 변영후 연출(왼쪽)과 오채민 작가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놀이터에서 갑자기 아이가 사라진다. 엄마는 딸이 실종된 놀이터 그네에서 계속 아이를 기다리지만, 10년이 흘러도 아이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마을 사람들은 아이가 원래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고, 남편마저도 ‘희망을 버리라’고 말한다.

연극 ‘그녀의 그네’를 요약하면 이렇다.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주변인들은 ‘놀이터를 밀어 주차장을 만들기’를 바라고, 가장 가까운 존재로 여겼던 남편조차도 편이 되어주지 못한다. ‘그녀의 그네’는 대중의 익명성이 드러내는 위선과 이질감, 무기력한 공권력, 미디어의 횡포 등 사회가 지닌 다양한 요소를 그린다.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나고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모두가 잊으려 하는 사건 속에서 아이의 엄마는 홀로 사투를 벌인다.

블랙 코미디로 완성된 극은 과장된 동작과 부조리한 설정을 통해 웃음을 유발한다. 노란 풍선이나 배우들의 표정을 가리는 가면을 사용해 극적인 요소를 높였다. ‘그녀의 그네’를 쓴 오채민 작가와 변영후 연출을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만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지난해 연극 ‘퍼즈(pause)’로 함께 한 둘은 이번이 두 번째 작품이다. 오 작가와 변 연출은 “‘그녀의 그네’ 원제는 ‘그네 이야기’였다”고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 다룬 이야기였다. 변 연출이 ‘그네 이야기’에 대한 얘기를 먼저 꺼냈고, 오 작가가 “내가 쓰겠다”며 덥석 물었다. 그렇게 둘의 작업이 시작됐다.

 

오채민 작가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오채민 작가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그녀의 그네’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작가님은 딸을 잃은 엄마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 반면, 연출님은 세월호 참사를 얘기하는 데 더 집중하셨다고요.

변영후 연출(이하 변): 이 얘기를 구상할 때 생각했던 게 ‘세월호를 빼놓고 박근혜 정권을 얘기할 수 있을까?’였어요. 제가 그때 파악한 박근혜 정권은, 이의를 제기하거나 불합리한 것들을 짚으면 그걸 해결하려는 게 아니라 애초에 그런 문제가 없었던 것처럼 행동한다는 것이었죠. 또 문제제기하는 이들의 주장을 정치적으로 해석한다는 것이었어요. 이러한 현실을 풍자적으로 풀어내고 싶었죠. 작품에 세월호가 직접적으로 표현되진 않지만, 작품 속에 드러나는 미디어의 행태라든가 주민들의 반응, 공권력의 태도 등이 그 당시의 모습과 너무 닮았기 때문에 관객 분들이 자연스레 세월호를 떠올리시게 될 것 같아요.

오채민 작가(이하 오): 제가 10여 년간 초·중·고 학생들에게 연극을 가르쳤어요. 그래서 세월호 참사가 더 힘들게 다가왔어요. 남일 같지 않았죠. 아무 잘못도 없는 아이들이 무참히 희생당한 거잖아요. 세월호만 떠올리면 실제로 몸이 아플 정도로 너무 힘들었어요. 그래서 오히려 머리에서 세월호를 지우고 아이를 잃은 가족, 엄마에게 더 집중했죠.

 

변영후 연출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변영후 연출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연극의 포인트가 크게 3가지로 나뉩니다. 우리 시대에 대한 이야기, 세상 속의 엄마, 실험적 요소 등이 그것인데요. 이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신다면요.

변: 현재 우리 사회, 우리 시대를 말하고 싶었어요. 제가 가장 이해하기 힘들었던 게 누군가 피해를 보고 억울함을 호소하면 그것에 과도하게 정치적인 색깔을 씌우거나 그것에 반대하는 투쟁이 일어난다는 것이었어요. 세월호 때는 ‘폭식 투쟁’이 있었죠(세월호 참사 유족이 지난 2014년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광화문광장에서 단식 투쟁에 나서자 극우 성향의 인터넷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저장소’ 회원들이 이에 반대하기 위해 근처에서 피자와 치킨 등을 먹었던 일). 그런데 그게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나요? 세월호 이전에도 국가의 필요에 의해서, 다수의 이득을 위한다는 이유로 피해 입는 소수가 존재했고, 그들에 대한 보상이라든가 권위 회복은 굵직한 몇 개 사건 외에는 사실상 제대로 진행된 게 없어요. 소수자를 위한 배려 없이 희생만 반복되는 세태를 다뤄보고 싶었어요.

-주인공으로 엄마를 설정한 이유가 있다면요.

오: 제가 여자라서 그런가, 별다른 고민 없이 주인공을 엄마로 정했던 것 같아요. 엄마와는 탯줄로 연결돼있어서 끊어질 수 없는 뭔가가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엄마에 대한 영향을 받은 것도 있고요. 애착이나 애증이 있죠. 그런데 연출님은 처음에 ‘아빠로 바꿀까?’라고 생각하셨죠.

변: 엄마라는 단어가 감성적인 단어라고 생각했어요. ‘아이를 잃어버린 엄마’라는 소재 자체가 굉장히 신파적인 흐름으로 읽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피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연극 ‘그녀의 그네’ 오채민 작가(왼쪽)와 변영후 연출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연극 ‘그녀의 그네’ 오채민 작가(왼쪽)와 변영후 연출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극중에 등장하는 아빠는 엄마의 편이 되어주지 못하는데요.

변: 아빠는 엄마가 그만하기를 바랍니다. 너무 힘드니까 포기한 거죠. 아이가 실종되고 나서의 10년은 이 부부에게 분명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을 거예요. 근데 고통이라는 건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균등하게 나눠가질 수 없어요. ‘왜 당신은 그것밖에 슬퍼하지 않아?’ ‘넌 왜 잊지 못해?’라고 논쟁을 벌이는 순간 보이지 않는 앙금과 균열이 생기겠죠. 갑작스럽게 가족 구성원의 손실이 생기면 남은 사람들은 엄청난 정신적 충격을 받게 되죠. 가족이 점차 힘들어지다 뿔뿔이 흩어지는 경우도 있고, 이혼하는 부부도 있어요. 그렇다면 그만하는 것이야말로 자신들이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 것 아닐까요.

-극중에는 실험적인 요소도 많이 사용됐다고 들었습니다.

오: 저는 작품에 동화적인 요소와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스릴러적인 요소를 접목하고 싶었어요.

변: 가장 재미있는 건 가면이에요. 뒤로 갈수록 가면이 점점 더 커져서 배우들은 완전히 자신의 얼굴을 가리게 돼요. 가면을 통해 단체, 집단의 익명성, 인간성이 결여된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또 우리가 흔히 생각할 수 있는 상황이 전혀 다른 방식으로 표현되기도 해요. 가령 엄마는 엄청 다급한데 경찰은 ‘저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느긋한 태도를 취하거나 과장된 방식으로 아이가 사라진 사실을 남 얘기 대하듯 하죠. 또 인물들이 자연스럽게 행동하기보다는 인형적인 움직임을 보이거나 과장된 제스처를 취해요. 엄마와 아빠를 제외한 모든 인물을 현실 인물이 아닌 것처럼 구성했어요. 이질적인 인물로 느껴지게끔 말이죠.

 

연극 ‘그녀의 그네’에 출연하는 배우들과 오채민 작가, 변영후 연출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연극 ‘그녀의 그네’에 출연하는 배우들과 오채민 작가, 변영후 연출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작품의 내용은 무거운 감이 있지만, 극은 코믹하게 전개된다고 하셨는데요.

변: 관객 분들이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웃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되도록 이 작품을 심각하게 안 보셨으면 좋겠어요. 재미와 감동이 쌓이고 쌓이다보면 작품 주제는 자연스럽게 전달되지 않을까요. 특히 마을 사람들은 시종일관 우스꽝스러운 인물로 묘사돼요. 마당놀이에서 양반을 골리는 게 가장 큰 재미있듯, 저희 작품에서도 아이를 찾는 엄마를 방해하는 주변인들의 모습이 우스꽝스럽게 묘사돼요. 하지만 극중 내내 웃음을 유발하면서도 끝으로 갈수록 씁쓸해질 수밖에 없는 식으로 극이 진행되도록 했죠.

-그동안 영화나 음악회 등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는 다양한 문화 콘텐츠가 나온 바 있는데요. 연극이라는 무대가 주는 또 다른 울림이 있을 것 같습니다.

오: 모두가 각자의 사연을 갖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상사에게 질책을 받았는데 아무도 내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았다거나, 아이를 잃어버린 경험이 실제로 있다거나, 혹은 큰 공권력과 싸운 경험이 있다든지. 꼭 세월호와 상관없더라도 각자 자신이 가진 사연에 대해 위로받고 가셨으면 좋겠어요.

변: 연극은 관객과 무대가 직접적으로 연결돼있죠. 어떤 순간에 분명히 접점이 일어나는 부분이 있을 거예요. 그 지점이 어느 곳이라고 딱히 의도하고 싶지는 않지만 아마 대체로 마지막 장면이 될 것 같아요. 그 지점에서 관객과 배우들 간에 시너지가 생길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그 순간만큼은 무대와 관객이 하나 되는 지점이 아닐까요. 보고 즐기는 것을 넘어 호흡을 공유할 수 있다는 점이 연극에서는 가능하니까요. 동시간대, 같은 장소에서 서로 교감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매력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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