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3일 충남 지역 시민·인권단체들로 구성된 충남인권조례지키기공동행동과 충남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는 충남도의회 앞에서 ‘충남인권조례 폐지 찬성 도의원 낙선운동 선언 기자회견’을 열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홈페이지 캡처
4월 3일 충남 지역 시민·인권단체들로 구성된 충남인권조례지키기공동행동과 충남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는 충남도의회 앞에서 ‘충남인권조례 폐지 찬성 도의원 낙선운동 선언 기자회견’을 열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홈페이지 캡처

충남도, 한국당 의원들 주도로 인권조례 폐지안 가결

전국 지자체 중 최초

충청남도 도민 인권 보호 및 증진에 관한 조례(충남인권조례)가 결국 폐지됐다. 국가인권위원회는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성소수자·여성·인권단체들도 “역사에 남을 반인권적 결정”이라며 규탄했다.

충남도의회는 지난 3일 충남인권조례 폐지안을 가결했다. 재석의원 26명(자유한국당 25명·바른미래당 1명·더불어민주당 불참) 전원이 찬성했다. 폐지안은 지난 2월 한국당 소속 의원들 주도로 본회의를 통과했다가, 당시 안희정 충남지사의 재의결 요구로 미뤄졌으나 결국 가결됐다. 충남도는 전국 17개 시·도 중 인권조례를 폐지한 첫 광역자치단체가 됐다.

 

이성호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은 4월 6일 성명을 발표하고 충남인권조례 폐지에 “강한 유감을 표했다.
이성호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은 4월 6일 성명을 발표하고 충남인권조례 폐지에 “강한 유감을 표했다.

인권위, “조례 폐지에 강한 유감...성소수자 관련 왜곡 주장 확산 우려”

이성호 인권위원장은 6일 성명을 내고 “(충남인권조례 폐지는) 지역주민의 인권보호를 위한 제도와 기반을 허물어 버린” 조처라며 유감을 표했다. 이번 폐지 과정에서 “성소수자 차별금지를 문제 삼아 충분한 토의 및 공론화 과정도 없”었던 점, “동성애가 치료가 필요한 정신질환이라거나 AIDS 감염의 원인이라는 등 성소수자에 대한 왜곡된 정보와 주장이 확산되는 것 또한 매우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인권위는 그간 거듭 충남인권조례 폐지에 반대하고 나섰다. 지난 2월 인권위 상임위원회는 충남도의회 의장과 충남지사에게 조례 폐지 반대 의견을  표명했고, 지난해 6월에도 같은 취지의 반대 의견을 밝혔다. 이 위원장은 “인권조례의 목표는 헌법과 국제인권기준에 따라 성적 지향을 비롯한 일체의 불합리한 차별을 예방하는 것”이라며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이 남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불합리한 차별을 받거나 인권을 침해당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역주민에 대한 인권 증진과 보호는 헌법에 근거한 지방자치단체의 기본적 책무”라며 “충남도에 적극적인 후속 대응 방안을 강구할 것을 기대하며, 인권위도 이를 면밀히 주시해 필요한 조치 방안을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4월 3일 충남 지역 시민·인권단체들로 구성된 충남인권조례지키기공동행동과 충남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는 충남도의회 앞에서 ‘충남인권조례 폐지 찬성 도의원 낙선운동 선언 기자회견’을 열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홈페이지 캡처
4월 3일 충남 지역 시민·인권단체들로 구성된 충남인권조례지키기공동행동과 충남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는 충남도의회 앞에서 ‘충남인권조례 폐지 찬성 도의원 낙선운동 선언 기자회견’을 열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홈페이지 캡처

타 지역 인권조례 폐지나 축소로 이어질 가능성도

성소수자·인권단체 “반민주적 인권조례 폐지 규탄...관련자 낙선운동”

충남도의 사례가 다른 지역의 인권조례 폐지나 축소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충북 지역 보수 기독교단체 등은 지난달 충북도의회에 충북인권조례 폐지 청원서를 제출했다. 충남 공주·계룡·부여와 충북 증평 등에서도 인권조례 폐지 조짐이 보인다. 앞서 2월 부산시 해운대구의회는 해운대구 인권 증진 조례를 개정해 ‘성별, 장애, 성적지향 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는다’는 ‘구민의 권리’ 조항을 삭제했다. 대신 ‘구가 수행하는 인권 시책에 협력해야 한다’는 ‘구민의 협력’ 조항이 포함됐다.

시민사회는 이러한 흐름에 깊은 우려를 표했다. 충남인권조례가 폐지된 3일, 충남 지역 시민·인권단체들로 구성된 충남인권조례지키기공동행동과 충남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는 충남도의회 앞에서 ‘충남인권조례 폐지 찬성 도의원 낙선운동 선언 기자회견’을 열었다.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차별금지법제정연대, 평등과연대로 인권운동 더하기 등도 이날 성명을 내고 “(충남인권조례 폐지는) 반인권적, 반민주주의적, 그리고 반헌법적 폭거”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자유한국당과 찬성표를 던진 의원들에 대한 낙선운동을 다짐하는 한편, “우리 인권단체들은 평등과 존엄의 가치가 전국 곳곳에서 실현할 수 있도록 힘을 모을 것”이라고 밝혔다.

유엔, 충남인권조례 폐지에 “깊은 우려”

성소수자 차별 금지 위한 정부 노력 보고 요청 

유엔도 충남인권조례 폐지에 “깊은 우려”를 표했다. 빅터 마드리갈-볼로즈 유엔 성소수자 특별보고관은 5일(제네바 현지 시간) 한국 정부에 서한을 보내 “충남도의회가 인권조례를 폐지하기로 한 최근 결정에 대해 매우 우려하고 있다. 반(反) 인권 집단의 압력으로 현재의 법적, 제도적 인권 토대를 해체한다면 중대한 우려를 낳는 일이 될 것”이라며 “한국 정부가 성소수자 인권이 충분히 존중되고 국제 인권 기준에 부합하는 법률 및 공공 정책을 계속 장려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했다.

유엔이 충남인권조례 폐지에 대해 우려를 표명한 것은 지난 2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여성차별철폐 위원회의 한국 심사에서 로사리오 마날로 위원이 ‘한국의 국가·지방 인권체계가 공격받고 있다’며 우려한 데 이어 두 번째다.

마드리갈-볼로즈 사무관은 “한국의 종교 단체들은 다른 도시에서도 인권 조례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며 “이러한 시도는 성소수자들에 대한 증오를 강화하고 성소수자를 폭력과 차별로 보호하기 위한 인권 체계를 위협한다”고 지적했다.

또 한국 정부에 ▲충남도의회의 충남인권조례 폐지 결정과 국가 차원의 다른 입법안 제안 현황 ▲이번 결정이 한국이 비준한 국제인권규약(ICCPR, ICESR)에 명시된 의무 이행에 미칠 영향 설명 ▲정부가 성소수자 차별 금지·인권 보호를 위해 채택했거나 검토 중인 입법 조치 정보 등을 요청했다. 한국 정부는 이 서한에 대해 60일 이내에 답변을 보내야 한다. 정부가 보낸 답변은 유엔 인권이사회에 보고서를 통해 공개될 예정이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