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8년 북구의 겨울은 길고 혹독했다. 땅속에 묻어 놓았던 청어, 절인 생선, 그리고 감자와 통밀을 으깨 만든 갓 구운 빵을 구워 실내 부엌 아궁이에서 나오는 열기 주위에 옹기종기 가족이 모여 앉아 식사하는 즐거움은 혹독한 겨울을 버틸 수 있는 유일한 낙이었다.

 

하지만 음식창고는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그해 이상한파로 6월 말까지 스웨덴의 중북지방은 눈과 얼음이 뒤덮고 있었고, 7월 초까지 파종을 할 수 없었다. 중부지역에 위치한 스톡홀름도 6월 평균 기온이 영상 3.3도까지 내려갔다. 북부지방은 말할 것도 없이 영하와 영상을 오가는 차가운 나날이었다. 7월 중순이 돼서야 파종할 수 있었던 밀과 귀리, 그리고 감자의 싹은 자라지 못하고 다시 찾아온 영하의 불청객에 속수무책으로 죽어 갔다. 그 해 수확한 작물은 예년에 비해 90% 이상 줄었다.

북구의 겨울은 유난히 길다. 밤은 길고 낮은 짧다. 보통 10월부터 시작해 다음 해 4월까지 겨울이다. 하지만 1868년의 겨울은 길고 지리 했다. 이른 봄에 씨앗을 뿌려 7~8월에 거둬들이는 짧은 경작기간으로 연명을 하는 농민은 그 당시까지 인구의 70%에 이르렀다.

150만명이 스웨덴 떠나

1868년 겨울 동안 아사자가 속출했다. 북부지역에서만 1만여 명이 먹을 것이 없어 죽어 나갔다. 뿌리를 캐 먹고 나무 껍데기를 벗겨 죽을 끓여 먹었다. 초근목피의 생존은 우리만 가진 가난의 상징이 아니었다. 가장 취약한 어린이들과 노인들은 영양실조로 쓰러졌다. 스웨덴이 영국에서 들여온 긴급구호물자는 위기에 처한 농촌인구를 살려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스웨덴과 북쪽 국경을 맞대고 있는 핀란드에서도 15만명이 아사해 인구의 8.6%를 가족의 품에서 앗아 갔다.

1868년의 대아사 참사로 농민들은 스웨덴을 이제 더 이상 살 수 없는 나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아도 철광석이 많이 나오는 터라 단단한 돌을 깨가면서 땅을 일궈야 했던 농민들은 날씨까지 저주하는 그해 새로운 결심을 할 수 밖에 없었다.

1861년 발표된 미국의 홈스테드법(서부 개척 지역의 일정한 토지를 경작한 자에게 토지를 무상 지급하는 내용)은 스웨덴에 널리 알려져 있던 터였다. 기회만 되면 언제든지 떠날 마음들을 갖고 있었다. 빙하의 저주는 새로운 기회의 땅에서 새롭게 시작해 보겠다는 농민들의 꿈에 다시 불을 붙이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살던 집과 땅을 버리고 미국으로 떠난 사람이 1869년부터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한 마을이 함께 떠나는 집단이민도 성행했다고 한다. 지금 우리의 이민계와 같은 현상이다. 초기 정착민들이 보내온 부모님들의 생활비는 그나마 마음잡고 살던 농민들까지 싹쓸이해 갔다. 1896년부터 1910년대까지 스웨덴을 떠난 사람들은 150만명에 이른다. 4명당 1명꼴에 이르는 당시 인구의 25%가 고향을 등지고 기회의 땅에 정착했다.

150년 후 선망받는 국가로

150년 후의 스웨덴. 2018년 스웨덴은 세계에서 이민자들이 가장 선망하는 나라 중 하나로 탈바꿈했다. 매년 평균 2만5000명의 망명객이 스웨덴을 찾는다. 2015년 아랍의 봄의 국가들에서 쏟아져 나온 망명객 중 스웨덴을 찾은 사람은 16만명에 이른다. 150년 전 저주의 땅이라고 떠났던 스웨덴에서 어떤 일이 일어난 걸까? 그들이 떠난 스웨덴 사회는 가난의 질곡, 기후의 저주, 그리고 갈등과 대립의 사회를 경제적 번영, 평등, 복지를 통한 살기 좋은 나라를 합의와 타협, 그리고 대화로 만들어 냈다. 이민신드롬은 국가개혁과 스웨덴 모델을 만들어낸 출발점이었다.

지금 우리나라는 국민들이 떠나고 싶은 나라로 인식할까, 아니면 다시 떠났던 국민들이 돌아오고 싶은 나라, 그리고 전 세계의 난민, 그리고 이민자들이 선호하는 나라일까? 애석하게도 떠나고 싶어 하는 비율이 70%에 이른다. 세계 난민들이 우리나라를 정착국가로 선호하고 있다는 것은 둘째 치고, 지금 들어와 활동하는 이민자들이 기회가 되면 떠나고 싶다고 할 정도로 다문화정책, 이민자정책은 열악하다. 가장 주된 원인은 금수저와 흙수저 논란 그리고 고강도 노동시간과 잃어버린 저녁, 아무리 노력해도 성공할 수 없는 사회적 가치박탈, 끝없는 갑의 횡포와 지도층의 부패도 이유로 등장하지만 지금은 무엇보다 미세먼지가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당장 기회가 된다면 떠나고 싶다는 부모들, 경제적 여유가 있는 고급기술자들과 전문직 종사자들, 경제적 여유가 있는 퇴직자들이 공기가 맑은 곳으로 이민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고 그중 50%는 이미 이민과 관련된 정보를 찾아본 경험이 있다고 한다.

스웨덴은 자연의 저주를 피해 나라를 떠난 농민, 저소득층 이민이었다면, 한국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중산층과 고학력자, 전문가 집단들이 이민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 상황과 큰 차이가 난다. 스웨덴보다 지금 한국의 집단이민 신드롬이 더욱 심각한 이유다.

그래도 정치인들은 선거에만 정신이 빠져 있다. 자신의 당선과 권력향유에만 몰두한다. 미세먼지는 이제 국가의 존립까지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발생원인 규명과 대책강구는 지금 대통령과 여당, 야당 구분 없이 반드시 가시적 결과를 빨리 내놓아야 할 국민적 명령임을 명심해야 할 때다. 이 기회에 스웨덴처럼 국가의 개조를 위한 발판 놓기를 해 보면 어떨까?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