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 ‘미투’, 페미니스트 연대행동으로 나아가다
대학가 ‘미투’, 페미니스트 연대행동으로 나아가다
  • 이세아 기자
  • 승인 2018.04.01 23:51
  • 수정 2018-04-08 11: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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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30일 전국14개 대학 33개 동아리가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앞에 모여 ‘함께 말하면 비로소 바뀐다 3.30 펭귄들의 반란’ 문화제를 열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지난 3월 30일 전국14개 대학 33개 동아리가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앞에 모여 ‘함께 말하면 비로소 바뀐다 3.30 펭귄들의 반란’ 문화제를 열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페미니스트 연대행동으로 번진 대학가 ‘미투’ 운동

대학가의 ‘미투(#MeToo·나도 말한다)’ 운동이 페미니스트들의 연대 행동으로 번지고 있다. 서울을 중심으로 최근 캠퍼스 내 성폭력에 반대하는 대학생들의 포스트잇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대학 내 성차별·성폭력 말하기 대회, 지금 대학에 필요한 페미니즘은 무엇인지 고민하고 토론하는 강연·워크숍 등도 이어지고 있다. 

14개 대학 연대 ‘펭귄 프로젝트’, 반성폭력 문화제 열어

“함께 말하면 비로소 바뀐다!” “우리가 이런다고 세상이 바뀝니다!” 지난달 30일 저녁,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 앞에 모인 대학생들은 대학 내 성폭력에 종지부를 찍자고 외쳤다. 전국 14개 대학 35개 단체에 속한 페미니스트 대학생들이 연 문화제, ‘3.30 펭귄들의 반란’이다. 참가자 150여명은 반성폭력 문구가 적힌 손팻말과 깃발 등을 들고 대학로 일대를 행진했다. 

 

지난 3월 30일 전국14개 대학 33개 동아리가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앞에 모여 ‘함께 말하면 비로소 바뀐다 3.30 펭귄들의 반란’ 문화제를 열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지난 3월 30일 전국14개 대학 33개 동아리가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앞에 모여 ‘함께 말하면 비로소 바뀐다 3.30 펭귄들의 반란’ 문화제를 열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이화여대 성폭력 교수 파면 시위

이화여대에서는 지난달 29일 저녁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교수들의 파면을 요구하는 시위가 열렸다. 이대 조형예술대학·음악대학 건물 앞에 모인 학생 2800여명은 보랏빛 의상을 입고 “가해 교수 파면하라!” “2차 피해 막고 피해자 보호하라!” 등을 외쳤다. 지난달 이대 조형예술대학 A교수와 음악대학 관현악과 B교수가 학생들을 대상으로 상습적으로 성추행했다는 폭로가 나온 데 대한 항의 시위다. 이대 학생들은 폭로가 나온 직후부터 기자회견을 열고, 해당 교수 사무실 벽면을 “방 빼” “성범죄자 OUT” 등 항의 포스트잇으로 도배하는 등 여러 방법으로 문제 해결을 촉구해왔다. 

덕성여대·성신여대·연세대 ‘포스트잇 연대 시위’

덕성여대, 성신여대, 연세대 등에서도 ‘포스트잇 연대 시위’가 진행 중이다. 교수들의 성폭력을 폭로하는 ‘미투’ 고발이 이어진 후, 학생들은 가해자로 지목된 교수들의 사무실 앞에 포스트잇과 대자보를 붙여 ‘포위’하고, 사건 진상규명과 처벌을 촉구하는 한편 학교 측의 미온적인 대처를 비판하고 있다.

 

지난달 23일 이화여대 조형예술대 K교수와 음대 S교수의 연구실 문 밖에 붙인 성폭력 규탄 포스트잇. 한 학생의 제안을 계기로 하루 만에 수많은 학생들이 동참했다. ⓒ이화여자대학교 음악대학 관현악과 성폭력사건 비상대책위원회 페이스북 캡처
지난달 23일 이화여대 조형예술대 K교수와 음대 S교수의 연구실 문 밖에 붙인 성폭력 규탄 포스트잇. 한 학생의 제안을 계기로 하루 만에 수많은 학생들이 동참했다. ⓒ이화여자대학교 음악대학 관현악과 성폭력사건 비상대책위원회 페이스북 캡처

학생들은 왜 ‘분노의 연대’에 나설까. 성폭력 폭로가 쏟아져도 대학 측의 문제 해결 속도는 더디다는 불만이 높다. 학내 실태조사에 착수하거나 ‘강경 대응’을 선언한 대학도 있지만, 당황스러운 일들이 벌어지는 곳도 있다. 성균관대는 지난달 29일 학내 미투 관련 행사가 “정치적”이라며 강의실 대여를 취소했다. 성희롱·성추행 가해자로 지목된 성신여대 서비스디자인공학과 유모(50) 교수는 자신과 관련된 대자보를 쓴 학생들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피해자를 지지하고 변화를 모색하려는 노력보다, 가해자 옹호론과 피해자를 무고 혐의로 역고소하는 일이 횡행하는 데 대한 분노와 변화에의 욕구가 학생들의 연대 행동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최근 다시 우리 사회의 주요한 목소리로 떠오른 페미니즘과, 2016년 ‘#○○_내_성폭력’ 고발 운동으로 대학생들이 얻은 교훈도 연대 행동의 동력이다. ‘포스트잇 시위’에 나선 이대생 김모씨(25)는 “2016년부터 대학 내 성폭력 고발이 쏟아졌다. 이전엔 이 문제에 관심 없던 많은 학생들이 폭력과 차별에 눈뜨는 계기였다. 그러나 학교 본부의 대응은 대체로 느리고 실망스러웠다. ‘신고했으니까 해결되겠지’, ‘그래도 대학인데 정당한 조처가 있겠지’ 하고 가만히 있기보다는 학생들이 직접 비판하고 감시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게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학생들 주최 공개 페미니즘 강연·워크샵

 

한양대 반성폭력반성차별 모임 ‘월담’은 지난 2월 30일 한양대에서 퀴어 페미니즘과 미투 운동의 의미를 짚어 보는 공개 강연을 열었다. ⓒ한양대 반성폭력반성차별 모임 ‘월담’
한양대 반성폭력반성차별 모임 ‘월담’은 지난 2월 30일 한양대에서 퀴어 페미니즘과 미투 운동의 의미를 짚어 보는 공개 강연을 열었다. ⓒ한양대 반성폭력반성차별 모임 ‘월담’

‘가해자 단죄’를 넘어 대학 문화를 성찰해 성평등을 실천·확산하려는 노력도 눈에 띈다. 봄 학기 들어 대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여는 페미니즘 강연, 워크숍 등이 이어지고 있어서다.

지난달 30일 한양대 반성폭력반성차별 모임 ‘월담’은 섹스 칼럼니스트인 은하선 작가, 김홍미리 여성주의 연구활동가를 초청해 퀴어 페미니즘과 미투 운동의 의미를 짚어 보는 공개 강연을 열었다. 같은 달 31일과 이달 1일엔 서울 내 대학 신입생들의 페미니즘 캠프가 열렸다. 동국대 총여학생회 ‘무빙’, 서울대 페미니즘 모임 ‘지금, 여기: 관악의 페미들’, 성균관대 여성주의 소모임 ‘나은’, 연세대 총여학생회 ‘모음’. 연세대 문과대학 페미니즘 학회 ‘앨리스’, 연세대 이과대학 페미니즘 학회 ‘고양이발바닥’, 한양대 ‘월담’과 서울시성평등활동지원센터가 함께 연 ‘페미니스트가 떴다!’다. 대학생 40여 명이 참여해 에코 페미니즘, 세계 페미니즘 운동의 역사와 한국의 페미니즘 흐름에 관한 강의를 듣고 다양한 젠더 이슈에 관해 토론했다. 주최측은 “수많은 성폭력이 공론화되고 있고, 페미니즘 교육의 필요성이 더욱 절실하게 와 닿는 시점에 서울 내 여러 대학의 학생들이 성평등을 주제로 만나 교류하여 긴밀한 소통과 연대의 계기를 만들고자 했다”고 말했다. 

 

서울 내 대학 신입생들의 페미니즘 캠프 ‘페미니스트가 떴다!’가 지난달 31일과 이달 1일 서울 동작구 서울여성플라자에서 열렸다. 동국대 총여학생회 ‘무빙’, 서울대 페미니즘 모임 ‘지금, 여기: 관악의 페미들’, 성균관대 여성주의 소모임 ‘나은’, 연세대 총여학생회 ‘모음’. 연세대 문과대학 페미니즘 학회 ‘앨리스’, 연세대 이과대학 페미니즘 학회 ‘고양이발바닥’, 한양대 ‘월담’과 서울시성평등활동지원센터가 함께 연 행사다. ⓒ서울시성평등활동지원센터 제공
서울 내 대학 신입생들의 페미니즘 캠프 ‘페미니스트가 떴다!’가 지난달 31일과 이달 1일 서울 동작구 서울여성플라자에서 열렸다. 동국대 총여학생회 ‘무빙’, 서울대 페미니즘 모임 ‘지금, 여기: 관악의 페미들’, 성균관대 여성주의 소모임 ‘나은’, 연세대 총여학생회 ‘모음’. 연세대 문과대학 페미니즘 학회 ‘앨리스’, 연세대 이과대학 페미니즘 학회 ‘고양이발바닥’, 한양대 ‘월담’과 서울시성평등활동지원센터가 함께 연 행사다. ⓒ서울시성평등활동지원센터 제공

“함께해야 바꿀 수 있다”

서강대 재학생 김나영 씨는 “대학은 지금 한국의 20대들이 가장 긴 시간을 보내는 곳이자 성차별과 성폭력을 가까이서 접할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화만 내서는 바뀌는 게 없지만, 연대하면 언론 보도도 되고, 함께 이야기를 나눌 친구들을 만날 수 있고, 이 문제에 관심 없던 다른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학생들만의 노력으로는 대학 내 성폭력을 뿌리뽑을 수 없다. 여성계와 시민사회는 대학생들의 페미니즘 연대 행동을 지지하는 한편 교육계의 적극적인 문제 해결 노력을 촉구하고 있다. ‘#미투운동과함께하는시민행동’은 2일 “학교와 교육계는 모든 학생에게 평등한 교육의 기회와 안전한 환경을 제공할 본연의 임무를 상기하여 이같은 행태를 멈춰야 한다”고 촉구했다. ▲제대로 된 성폭력 사건 조사와 징계 ▲대학 내 성평등 문화 조성을 위한 전방위적 노력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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