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희망을 갖고 살고 싶어”
“이젠 희망을 갖고 살고 싶어”
  • 여성신문
  • 승인 2005.05.12 16:29
  • 수정 2005-05-12 16: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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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출소녀들의 대안학교 ‘범숙학교’ 개교
소녀들은 폭력을 휘둘렀던

아버지를 용서했고

미래의 꿈을 눈물로 약속했다






“어머니가 나가신 후 새어머니가 들어왔지만 아버지의 폭력은 계속되었다. 지긋지긋해 집을 나왔다. 가출한 친구 집을 돌아다니며 남자들을 만났고 술 마시고 담배 피고 노는 일만 했다. 그 생활이 반복되는 것이 싫었다. 따뜻한 방에서 잠도 자고 싶었다. 어느 날 갈곳이 없어 초등학교에서 술 마시다가 경찰관에게 잡혔다. 그것이 오히려 내겐 행운이었다. 왜냐하면 경찰이 창원여성의 집으로 보내주었기 때문에…



처음엔 어색했지만 언니들과 선생님들과 친해진 후엔 이렇게 행복했던 시간들이 내겐 없었다는 걸 알았다. 다시 학교에 가게되었을 땐 너무 좋아 며칠동안 잠도 못 잤다.



이번엔 사고 치지 않고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다짐과 함께. 그러나 첫날부터 선생님은 나를 불량학생 취급하며 푸대접했다. 복학생이었고, 창원여성의집에서 다닌다는 이유였다. 나는 화가 나서 욕을 했고, 아이들도 나를 이상하게 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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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문을 연 범숙학교의 개교식 모습.



다시 대구의 중학교로 전학했지만 마찬가지였다. 난 다시 가출했다.

다방에서 한달 동안 일했지만 월급도 주지 않았다. 너무 힘들었고 갈 곳이 없어 다시 창원여성의집으로 왔다. 선생님들은 아무 말 없이 안아주셨다. 이젠 어디에도 가지 않을 것이다. 여기가 내 집이니까. 이젠 다른 학교에 가지 않아서 좋다. 범숙학교가 생겼으니까.

극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다. 난 이 꿈을 꼭 이룰 것이다.”(연숙·14세, 가명)



“운동선수로 학교를 다녔는데, 수업시간이 되면 선생님은 늘 나한테 문제를 풀라고 시켰고 못 풀면 혼내고, 머리 짧다고 혼내고 늘 꼬투리를 잡았다. 새엄마가 있어도 동생 밥만 챙겨 주어 어느 날 등교시간에 좀 늦었는데 선생님은 여러 종류의 매로 나를 때렸다. 난 그 수모를 당하는 게 너무 억울했다.



학교의 일진회와 어울렸고 아무데서나 담배를 피웠고 욕설을 하며 다녔다. 그 후 대마초를 피우기 시작했고 선생님들과 싸우기도 했다. 다른 학교로 옮겼지만 차별 받는 것은 마찬가지였고 난 가출을 했다. 이젠 바로 여기에서 꿈과 희망을 가지고 살아 갈 것이다.”라는 나영(16세, 가명)이는 이 학교의 반장으로 성실히 생활하고 있다.





소녀들은 폭력을 휘둘렀던 아버지를 용서했고, 어머니를 용서하며 미래의 꿈을 눈물로 약속했다. 참석자들의 눈시울도 붉어진 이 날은 가출소녀들을 위한 대안학교인 범숙학교의 개교식이 있던 날이었다.



지난 1일 문을 연 범숙학교(교장 정현순 창원여성의 집 관장)는 현재 교사 30여명에 전학년 20명의 학생들이 중학교 과정을 배우게 된다.



정현순 교장는 “현 사회는 고등학교 졸업장을 사회활동 시작의 기본적인 조건으로 요구하고 있다. 우리 청소녀들이 청소녀기를 좌절과 방황으로 보냈지만, 교육을 통해 사회에 나가게 될 때 필요조건을 충족시켜주고, 이성적 판단과 자율적 행동으로 자신을 책임질 수 있게 하고 건전한 사회인으로 이 땅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학교를 설립했으며, 가출청소녀들이 아름답고 고운 마음을 되찾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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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숙학교 김은혜(16) 학생의 작품.



‘자유인으로 개인의 역할을 중시, 사람됨을 중시, 정서순화 교육’을 목표로 삼고 가정을 대신하는 학교가 되길 희망하는 범숙학교는 제도권 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한 아이들에게 교육 기회를 제공하고 거주와 교육을 동시에 제공한다. 단순히 보호시설이 아닌 학교의 역할을 하면서 청소녀들의 정체성 확립을 돕는다는 것이다.

미인가 상태로 개교식을 한 범숙학교의 한 관계자는 “중학교 과정을 ‘특성화 중학교’로 인가해 공교육과 대안교육이 공존하도록 해야 할 것” 이라고 말했다.



이날 교육청의 관계자는 한 명도 참석하지 않았다.



교육을 받을 권리는 이들에게도 있다. 획일적 교육 형태만이 교육이 아니라, 가치 지향적 교육도 중요하다. 가출소녀들에 대한 방향성의 부재가 또 다른 결과를 초래 할 수 있다. 고통받고 신음하는 아이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면 포기할 수는 없다. 1%를 위한 대안이라도 세워야 하는 것은 아닌지.



버림받으면서 마음고생을 지독히 한 아이들이 이곳을 집처럼 생각하고 교사들을 어머니처럼 생각하는 단 한 가지 이유는 사랑받는다는 것,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는다는 것이다. 공부 못해도, 나쁜 짓만 하고 다녔다 하더라도 그 아이는 존중되고 사랑 받아야 한다는 것이 범숙학교의 생활 속에서 자리잡고 있었다.



가출소녀들은 여기에서 사랑하는 법과 사랑 받는 법을 배울 것이다. 가출이 이 아이들의 잘못만은 결코 아니란 것과 그들이 절실하게 필요로 한 것은 사랑임을 어른들은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경북 권은주 주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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