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8년 만의 임신중절 실태조사 초읽기...여성계는 왜 걱정일까
[단독] 8년 만의 임신중절 실태조사 초읽기...여성계는 왜 걱정일까
  • 이세아 기자
  • 승인 2018.03.29 10:41
  • 수정 2018-04-04 18: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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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이 지난해 12월 2일 서울 광화문 세종로 공원 앞에서 낙태죄 폐지를 위한 2017 검은 시위 ‘그러니까 낙태죄 폐지’를 열었다. 시위대가 서울정부청사 앞을 지나 행진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이 지난해 12월 2일 서울 광화문 세종로 공원 앞에서 낙태죄 폐지를 위한 2017 검은 시위 ‘그러니까 낙태죄 폐지’를 열었다. 시위대가 서울정부청사 앞을 지나 행진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4월부터 8년 만의 임신중절 실태조사 추진

지난해 ‘낙태죄 폐지’ 청원 계기

그러나 여성 관점 반영 안 된 제안서에

조사 맡은 보건사회연구원 젠더의식 ‘글쎄’

비판 여론에 복지부 “여성 관점 반영해 추진할 것”

지난해 청와대가 ‘낙태죄 폐지’ 청원에 답하며 약속한 정부 차원의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가 곧 시행된다. 그런데 실태조사 목적은 “임신중절 예방”이고, ‘저출산은 여성 고스펙 탓’ 등 황당한 연구로 젠더감수성 부족을 드러낸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이 조사를 맡는다. 여성계는 “여성들의 요청으로 이뤄지는 조사건만, 여성의 관점을 충분히 반영하려는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는 우려를 표했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지난해 11월 26일 ‘낙태죄 폐지와 자연유산 유도약 (미프진) 합법화 및 도입 요구’ 청원에 답변하면서 “내년 임신중절 실태 조사를 실시, 현황과 사유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겠다”고 말했다. ⓒ청와대 답변 영상 캡처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지난해 11월 26일 ‘낙태죄 폐지와 자연유산 유도약 (미프진) 합법화 및 도입 요구’ 청원에 답변하면서 “내년 임신중절 실태 조사를 실시, 현황과 사유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겠다”고 말했다. ⓒ청와대 답변 영상 캡처
 

 

정부 차원의 임신중절 실태조사 추진 상황과 향후 일정 ⓒ박규영 디자이너
정부 차원의 임신중절 실태조사 추진 상황과 향후 일정 ⓒ박규영 디자이너

‘낙태죄 폐지’ 청원에 청와대 약속...이달 시작

정부 차원의 실태조사는 8년 만이다. 아이를 낳으라고만 하지 말고, 임신·출산 주체인 여성들의 현실과 고민부터 알아달라는 시민들의 요구로 나온 정책이다. 헌법재판소는 지금 ‘낙태죄’ 위헌 여부를 심리 중이다. 이번 실태조사는 당사자인 여성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고 법제도에 반영해 여성과 아이의 인권을 보장할 기회다.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보사연이 지난 3월 9일 최종 낙찰돼 복지부와 실태조사 방법과 내용을 논의 중이다. 손문금 복지부 출산정책과장은 “4월부터는 조사에 착수, 결과 보고서 초안이 나오기까지 8개월가량 진행해 올 12월 완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① 실태조사 목적이 ‘임신중절 예방·개선’?

“여성의 자기결정권 실종” 비판 일어

복지부 “기존 법률용어 썼을 뿐...여성 관점 반영 연구 추진”

그러나 정부가 조사에 앞서 ‘임신중절을 막자’는 결론부터 내려둔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복지부의 임신중절 실태조사 제안서 속 연구 목적은 ‘인공임신중절 예방 및 제도개선 정책 제언’이다. 여성들이 임신중절을 결심한 이유, 임신중절 시술이 여성에게 미치는 신체적·정신적 위험 등을 조사해 여성의 건강권과 자기결정권을 보호할 방법을 연구하겠다는 언급이 없다. 이에 ‘낙태죄’ 폐지를 촉구하는 여성·인권단체 모임인 ‘모두를 위한 낙태죄 공동행동’(이하 모낙폐)은 지난 14일 성명을 내고 “‘가임기 여성’의 임신중절 문제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에 초점을 둬 기존 논리를 답습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고 주장했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1월 발표한 임신중절 실태조사 제안요청서 속 연구 목적은 ‘인공임신중절 예방 및 제도개선 정책 제언’이다. ⓒ여성신문
보건복지부가 지난 1월 발표한 임신중절 실태조사 제안요청서 속 연구 목적은 ‘인공임신중절 예방 및 제도개선 정책 제언’이다. ⓒ여성신문

복지부는 “기존 법률용어를 그대로 쓴 것일 뿐”이라고 밝혔다. 손 과장은 “모자보건법 제12조에 있는 ‘인공임신중절의 예방’이라는 문구를 제안서에 그대로 쓴 것 같다. 복지부는 의료계, 여성계 등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임신중절이) 여성의 몸과 마음에 미치는 영향까지 총체적으로 살펴봐 달라고 연구진에게 제안했다”고 했다.  

② 실태조사 맡은 보건사회연구원

“수차례 낮은 젠더의식 보여줘 못 미덥다” 비판

복지부 “지나친 우려...젠더관점 깃든 연구 추진”

실태조사를 맡게 된 보사연의 젠더 의식이 유감스러운 수준이라는 지적도 있다. 지난해 보사연의 ‘결혼시장 측면에서 살펴본 연령계층별 결혼결정요인 분석’ 보고서는 ‘고학력·고스펙 여성들이 저학력 남성과 하향결혼하게 유도할 백색 음모가 필요하다’는 황당무계한 내용으로, 여성을 출산 도구쯤으로 여기는 시각을 보여줬다. 이 파문으로 보고서를 작성한 원종욱 선임연구위원은 공개 사과하고 보직해임됐다.

 

2017년 2월 24일 열린 보건사회연구원 13차 인구 포럼에서 발표된 보고서는 여성들을 분노케 했다. ⓒJTBC 뉴스 영상 캡처
2017년 2월 24일 열린 보건사회연구원 13차 인구 포럼에서 발표된 보고서는 여성들을 분노케 했다. ⓒJTBC 뉴스 영상 캡처

보사연의 ‘인공임신중절 실태와 정책과제’ 보고서(2010년)엔 “인공임신중절은 무엇보다도 발생 자체를 억제하는 것이 중요하다” “피임 방법의 보급과 함께 인공임신중절의 폐해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을 확산시키는 일 그리고 인공임신중절의 법적 제재 등으로 어쩔 수 없이 출산한 경우의 양육지원”이라는 정책 제언이 나온다. 모낙폐는 “(보사연이) 성인지적 관점의 연구를 수행할 역량과 의지가 충분한지 우려스럽다”고 비판했다. 

복지부는 기우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손 과장은 “여성계 포함 각계 전문가의 심의를 거쳐 보사연이 이번 실태조사를 맡게 됐다. 과거의 불찰을 두고 우려하신다지만, 이번 조사에 참여하는 연구자들까지 그럴 것 같지 않다. 정부는 이번 실태조사에 여성 건강 관련 내용이 포함되도록 협의하겠다”고 말했다.  

여성·시민단체 “신뢰할만한 성인지적 연구 필요”

‘여성 건강권·재생산권 보호’ 초점 맞춰야

모낙폐는 “청와대가 여성을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건강과 평등을 누릴 수 있는 존재로 인정하고 있다면 이번 실태조사 내용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며 “신뢰할 수 있고 역량 있는 연구진의 성인지적 연구를 통해 여성의 간절한 외침과 경험이 정책으로, 입법으로 실현될 가능성을 보여달라”고 촉구했다. 

정책 프레임은 “임신중절 예방”이 아닌 ‘여성의 건강권과 재생산권 침해 실태 파악과 보호 대책 마련’으로 바꾸라고도 촉구했다. 모낙폐의 이유림 건강과대안 젠더건강팀 연구위원은 “시대의 변화에 맞춰 여성의 재생산권 포함 통합적 권리 보호를 위한 새 법제도를 설계할 때다. ‘몇 명이 임신중절을 했다’는 조사 결과만 갖고는 여성의 권리를 보호할 정책을 만들기 어렵다. ‘몇 주 이하의 임신중절은 괜찮다’는 조각사유를 현 모자보건법에 추가하는 것으로도 안 된다”며 이를 위해 “복지부뿐 아니라 여가부, 법무부 등 관련 부서와 다양한 시민사회 구성원이 참여하는 TF를 꾸려야 한다”고 말했다.

여성가족부도 3월 12일 복지부에 “기존 저출산 정책은 여성을 ‘출산 수단’으로만 다루고 있어 전면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며 ▲남녀 생애주기 전반의 재생산 건강권 증진 방안 ▲인공임신중절에 따른 여성 건강권 확보 방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보다 현저히 높은 여성의 임신·출산 관련 사망률 감소 방안 등을 마련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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