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스룰은 언제든지 여성을

배제할 수 있다는 이야기,

남성 중심적 자신감과

시각을 드러낸 개념이다

 

 

펜스룰(Pence Rule)이 펜스룰(fence rule)이 되는 모양새다. 앞 펜스룰과 뒤 펜스룰은 그러면 무슨 차이가 있을까? 뒤 펜스룰이 앞 펜스룰의 의미를 왜곡한다는 주장이 있다. 앞 펜스룰은 단순히 “행동을 조심하자”는 의미인데, 뒤 펜스룰이 “미투 운동으로 몸조심해야 하니, 여자들을 우리 모임에 끼게 하지 말자”는 남성들의 벽만들기 움직임으로 변질됐다는 이야기다. 과연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앞 펜스룰, 즉 마이크 펜스(Mike Pence) 부통령이 내세운 규칙이 더 여성을 폄하하고 결국 혐오하게 만드는 의도를 다분히 담고 있는 음흉한 시도가 아닌가 싶다. 단순히 행동을 조심하자는 이른바 ‘착한 남자 코스프레’를 넘어서 결국 세상은 남성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이고, 너희들 여성 없이도 우리는 얼마든지 잘 살 수 있어라는 식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아내 없이 어떤 여성과도 저녁을 함께 하지 않겠다”는 말을 한 펜스 부통령의 머릿속에는 이런 생각이 들어 있지 않을까? 첫째, 나는 아내가 없는 자리에서 여자를 만나면 그 여자와 왠지 뭔가를 하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그렇게 불륜을 할 수 있는 싹을 없애기 위해 아내 없이 여자를 만나지 않는다. 둘째, 내가 아무리 ‘깨끗하게’ 살려고 해도 여자는 나를 성적으로 유혹하고 결국 타락한 존재로 만들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든지 여자를 조심해야 한다.

“여자와 남자는 결국 친구가 될 수 없어”라는 속설이 있다. 그런데 펜스 부통령은 극우 집단의 보스 중 한 명답게 여성을 그냥 이른바 ‘꽃뱀’ 취급하고 있다. 자신은 여성에게 유혹할 수 있는 기회를 아예 차단하는 성실한 남편이자 아버지라는, 나름 윤리적으로 자랑스러운 모양이다.

그런데 상식선에서 생각해보자. 여성이든 남성이든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거나 아니면 유지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아내의 동석 여부와 관계없이 사업 파트너로서 혹은 동료로서 여성과 저녁 자리를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다. 나와 이야기가 통한다고, 나에게 호감을 보인다고 해서 그냥 바로 혼자만의 성적 상상력을 발휘해 여성의 몸에 손을 대지는 않는다. 나의 사회생활 혹은 사업을 위해 대등한 입장에서 만나는 관계 형성을 자연스럽게 시도할 것이다.

그런데 원조 펜스룰이 보여주는 더욱 큰 문제는 여성을 배제하고도 얼마든지 남성만의 세계를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세계 어느 지역을 막론하고 저녁식사가 사회적 관계망 형성에 갖는 의미는 중요하다. “우리 언제 밥 한번 먹지”라는 말을 진짜 실천했을 때 혹은 그냥 빈말로 끝날 때 결과로서 형성되는 사회적 관계의 양적·질적 수준이 다름을 우리는 일상에서 체험하고 있다. 그런데 펜스룰은 언제든지 여성을 배제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여성 없이도 우리는 얼마든지 세상을 주도하고 만들어 나갈 수 있다는 남성 중심적 자신감과 시각을 드러낸 개념이다. 이러한 배제는 미투 운동에 공감하는 대다수 여성을 배제하는 2차 피해가 된다.

오히려 벽만들기 차원의 펜스룰은 가부장적 사회에서 남성주도적 인간관계 형성으로만 사회화되어온 한국사회 남성들이 미투 운동을 보면서 나오는 당황스러운 반응이기도 하다. 이를 일부 정치인들이 여성을 공적영역에서 배제하는 수단으로 사용하면서 은밀하면서도 비뚤어진 남성연대를 형성하려는 시도를 한다. 이러한 시도에 상당수 남성은 실망할 뿐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답답해한다. 펜스룰의 함정에서 남성을 구해야 하는 시기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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