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고통』

 

『보이지 않는 고통』
『보이지 않는 고통』

『헨젤과 그레텔』은 예쁜 과자 집으로 기억되는 이야기이다. 독일 민속 역사 연구가였던 그림형제는 흉년 때 아이들을 버린 가난한 농부들의 이야기를 가져왔다. 이것은 결국 학대 부모와 살아남으려 애쓴 아이들, 그리고 그들을 거둬준 독거노인 살인사건의 이야기이다. 이것이 어떻게 동화가 될 수 있었을까? 한 가지 장치는 노파가 마녀라는 설정이다. 그 순간 매정한 부모와 살인을 하고 도둑질한 남매의 이야기는 영웅적 모험 이야기가 된다. 그러나 노파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늙은 여자에 대한 공포와 혐오를 거둬내는 순간 헨젤과 그레텔은 전혀 다른 이야기로 읽힌다.

페미니즘은 침묵된 여성의 목소리를 발굴하는 연구 방법론을 발전시켜 역사의 의미를 새롭게 발굴해왔다. 『누구의 과학이며 누구의 지식인가: 여성들의 삶에서 생각하기』(샌드라 하딩, 조주현 옮김, 나남출판)에서 과학철학자 샌드라 하딩은 ‘객관성’ 개념을 비판한다. 과학자들은 감정 개입 없는 실증적이고 논리적 연구로 누구에게나 옳다고 여겨지는 보편적 답을 줄 수 있다는 과학 신화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과학은 식민주의자를 만나 인종차별을 정당화했으며, 비장애 우월주의자를 만나 장애인 차별의 의료담론을 만들었고, 남성들을 만나 성차별을 공고히 했고, 부유한 사업가를 만나 노동자 착취와 자연훼손을 정당화했다. 공정하다고 여겨진 과학은 사실상 권력가들의 지배수단이기도 했다.

하딩은 더 나아가 ‘강한 객관성’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면 그 분야에서 가장 주변화된 사람의 시선에서 봐야 한다. 노동의 문제는 비공식 노동자의 시선에서 봐야 하고, 성 건강의 문제는 성소수자의 시선에서 봐야 하고, 주택문제는 무주택자 서민들의 입장에서 봐야 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사회 전 분야에서 차별당한 여성들의 시선은 소중하다. 이들의 시선은 차가운 분석이 아니고 함께 공감하는 거리 좁히기를 가능케 한다. 과학은 거리 두기가 아니라 공감하기에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하딩과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캐런 메싱은 페미니스트 과학자다. 그는 지난 37년간 저임금 노동자들의 노동조건과 건강정책에 관한 연구를 했다. 물론 여성 노동자 다수가 저임금 노동자라는 점에서 그가 여성직업건강 전문가라는 점은 놀랍지 않다. 다국적 기업의 부사장인 아버지와 좌파 예술가 어머니 사이에서 엘리트로 자라났던 그가 어떻게 저임금 노동자들에게 관심을 갖게 됐을까? 『보이지 않는 고통』(캐런 메싱, 김인아 옮김, 동녘)에서 캐런은 싱글맘, 성차별 등을 겪으며 페미니스트로 되어가는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한다.

일단 페미니스트가 된 캐런은 더는 차가운 연구자가 아니다. 노동자의 열악한 노동조건에 함께 분노하고 공감하며 여성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드러내고 그것을 정책에 반영할 것을 촉구하는 연구자가 됐다. 박사학위를 받은 후 몬트리올 퀘백 대학 강단에 오랫동안 섰던 그가 어떻게 현장 연구에 집중할 수 있었을까?

캐나다 대학은 교수들을 학술 논문쓰기로 평가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이 지역 발전과 지역연구에 얼마나 기여했는가에 따라 업적을 평가한다. 여성청소부가 점심시간에 캐런을 찾아와 울부짖는다. “교수님이 뭔가를 해주세요.” “병원에서 선물이 들어와도 청소부에게 나눠주지 않아요. 그들은 생일파티를 해도 우리를 초대하지 않지요. 심지어 나에게 환자나 가족들에게 말을 붙이지 말라고 충고하지요.” 동료에게 차별당하고 사람 대접 못 받는 이들의 자존감은 손상됐다.

캐런은 청소노동자의 호소를 듣고 현장연구에 착수한다. 병원 청소노동자는 전염병 위험이 있거나 화학물질 오염 위험에 대해 미리 교육받지 못하고 있었다. 병원 청소는 감염 방지 차원에서 중요한 일임에도 병원 측은 청소에 전문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결국 캐런의 연구로 청소노동의 어려움이 밝혀지고 노동조건이 향상됐다. 캐런은 그밖에도 공장노동자, 마켓 직원, 전화교환수, 교사 등에 관한 연구 사례를 소개한다. 우리 사회 약자들의 고통에 귀 기울이는 페미니스트 연구방법이 무엇인지 구체적인 방법을 보여주는 책이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