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저녁이 있는 삶’

위해 퇴근 뒤 집으로 다시

출근해야 하는 여성노동자들

 

 

법정 최대 노동시간이 주 68시간에서 주 52시간으로 줄어드는 노동시간 단축 관련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2월 2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회에서 본격적으로 이 문제를 논의한 지 5년 만이다. 일부 언론은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누리는 발판을 마련했다고 평가한다. 이 법안이 시행되면 노동형태만이 아니라 삶의 형태도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한다. ‘저녁이 있는 삶’이 눈앞에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달리 노동계 쪽에서는 개정안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휴일수당 삭감, 중소·영세사업장의 장시간노동 허용, 노동시간 특례업종 유지 등 그동안 문제제기한 사항들을 그대로 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부의 기대 섞인 평가나 노동계의 비판에도 빠져 있는 것이 있다. 여성의 문제, 특히 일하는 여성노동자들의 문제다. 우선 여성노동자들 대다수가 중소 규모의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은 이 법의 사각지대에 방치된다. 그에 따라 성별 임금격차, 고용격차에 이어 노동시간의 격차가 더욱 커질 것이다.

더 중요한 문제는 노동시간 단축을 둘러싼 논의에서 아예 고려조차 되지 않고 있는 영역이 있다는 것이다. 바로 ‘가사노동’의 문제다. 노동시간단축에 대해 일부 언론에서는 퇴근 이후 저녁 시간을 활용해 “만나고 배우고…”(sbs, 3.13) 라는 기사나 잘 차려진 저녁밥상의 사진(한겨레21, 3.12)이 같이 등장했다. 그런데 이 저녁 밥상은 누가 차리는 걸까? 노동시간이 단축되면 여성노동자들도 가사노동에서 벗어나 저녁시간을 활용해서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고 사람들도 만날 수 있는 것일까?

맞벌이하는 여성노동자들은 근무시간 동안에도 자녀들을 전화로 틈틈이 챙기다가 퇴근할 때면 “이제 집으로 출근한다”고 말한다. 그녀들은 집에 가면 다시 가사노동을 하다가 하루를 마친다. 이런 상황은 주 48시간에서 주 40시간으로 법정 노동시간이 줄어든 이후에도 지속해왔다.

이는 남성과 여성의 가사노동시간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통계청의 ‘2004년 생활시간조사’에 따르면 맞벌이 가구의 성별 가사노동시간은 여성이 3시간 28분으로 남성의 32분보다 7배가량 많다. 10년이 지난 ‘2015년 일·가정 양립지표’라는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맞벌이 가구의 여성은 가사노동시간이 하루 평균 3시간 14분이고, 남성은 40분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5배가량 길었다. 물론 성별 가사노동시간이 2004년의 7배보다 2015년에는 5배 차이로 줄었다. 그럼에도 가사노동은 여전히 여성의 몫이다.

여기에 맞벌이 여성과 전업주부의 가사노동시간을 비교해보면, 2002년 통계자료에 따르면 전업주부는 가사노동의 90.7%를 담당하고 있었고, 맞벌이 여성은 88.4%를 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맞벌이하지 않는 남편의 가사노동시간과 맞벌이를 하는 남편의 가사노동시간은 각각 31분, 32분으로, 아내가 취업하든 말든 남편이 가사노동에 거의 참여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업주부나 맞벌이 여성이나 여성이 가사노동을 담당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결국 대부분 맞벌이 부부인 여성노동자들은 직장에서 남성보다 낮은 임금으로 장시간 노동하고, 다시 집에 출근해 ‘저녁이 있는 삶’을 위해 가사노동을 해야 하는 현실이다.

이처럼 노동시간 단축과 ‘저녁이 있는 삶’은 대기업 남성 중심의 삶의 모델로서 중소규모 기업에 고용된 대다수의 여성노동자들을 배제하고 있다. 거기에 가사노동은 여성의 일이라는 성별화된 노동관념을 은폐하고 있고, ‘가사노동’을 노동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여성, 특히 여성노동자들이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노동시간 단축에 앞서, 왜 ‘가사노동’을 여성이 전담해야하는지, 노동시간을 논의하는 ‘노동의 범주’에, 왜 ‘가사노동’은 포함시키지 않는지를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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