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개헌 논의 과정에선

헌법 1조에 ‘대한민국은

성평등 국가’라는 것이

포함되길 기대한다

 

 

대통령이 발의할 개헌안이 공개됐다. 1987년 개헌 이후 급격한 사회변화를 거치면서 새롭게 대두한 기본권이 다수 포함됐다. 생명권, 안전권, 주거권, 건강권, 정보 기본권이 신설됐다. 노동권은 대폭 강화됐다. 근로라는 용어가 노동으로 대체되고, 동일가치 동일 노동 수준 임금 지급 노력 의무를 명시했으며, 노동조건의 노사 대등 결정 원칙을 추가했다. 공무원의 노동 3권을 원칙적으로 허용하기로 했다. 직접 민주주의 조항도 신설해 국민이 국회의원을 소환할 수 있고, 국민이 법률안을 발의할 수 있도록 했다.

 

개헌과 관련해서는 그동안 크게 세 가지 쟁점이 대립했다. 우선, 개헌 주체다. 현행 헌법에는 정부와 국회가 개헌을 발의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역대 9번의 개헌 중 3차 개헌(1960년), 4차 개헌(1960년) 그리고 9차 개헌(1987년)은 국회 합의를 통해 이뤄졌고, 나머지 6차례는 정부가 개헌을 주도했다. 여당은 국회가 1년 동안 개헌 논의를 했지만 진전이 없기 때문에 정부가 발의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이에 반해 야당은 개헌은 국회 주도로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특히 자유한국당은 정부의 개헌 발의는 지방선거용 관제 개헌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현 정부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정의당 이정미 대표도 “대통령 단독 개헌안 발의는 곧 개헌의 중단이 될 가능성이 크다”며 “개헌에 대한 대통령의 진심을 이해하지만 개헌안 직접 발의 대신 국회 제안을 요청드린다”고 했다.

둘째, 개헌의 시기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월 10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30년이 지난 옛 헌법으로는 국민의 뜻을 따라갈 수 없다”고 개헌의 필요성을 지적했다. 지난 대선에서 모든 정당과 후보들이 지방선거와 개헌 국민투표를 동시에 실시하자고 국민과 약속한 만큼 이를 지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여하튼 지방선거와 개헌을 같이 하지 않으면 개헌 동력이 사라져 개헌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판단을 한 것 같다. 반면, 자유한국당은 지방선거가 끝난 후 6월에 개헌을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셋째, 권력구조 문제다. 정부는 4년 연임 대통령제를, 야당은 국회에서 국무총리를 추천 또는 선출하는 분권형 대통령제를 선호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기자회견에서 정부가 개헌을 발의할 경우에 대해 “국민이 공감 및 지지할 수 있고, 국회의 의결을 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개헌으로 좁힐 수 있다”고 밝혔다. ‘최소한의 개헌’은 중앙권력구조 부분을 뺀 개헌을 의미한다. 앞으로 정치권은 개헌의 시점과 내용을 둘러싸고 치열한 공방을 펼칠 것이다. 그러나 국민 중심의 개헌이 되기 위해선 몇 가지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무엇보다 편향성을 최소화해야 한다. 헌법은 국가 운영의 근간을 담는 그릇이다. 따라서 개헌을 논의할 때는 특정 정부, 특정 세력의 가치와 이념을 최대한 배제해야 한다. 더불어 시대정신의 원칙이 충실히 반영돼야 한다. 이번 개헌의 시대정신은 평등과 분권이다. 정부가 공개한 개헌안 전문에는 자치분권, 지역 간 균형 발전, 자연과의 공존 등을 지향해야 할 사회적 가치로 추가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성평등에 대한 가치가 빠졌다.

정부안에는 차별금지 사항으로 장애, 연령, 인종, 지역주의가 추가하는 내용의 평등권 조항이 신설됐다. 이는 국회 개헌 특위 자문위원회 보고서에 포함됐던 성평등 신설 조항과 비교해 크게 후퇴한 것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 들불처럼 일어나고 있는 미투 운동의 본질은 여성 인권과 인간 존엄성의 회복이다. 성폭력을 없애 성평등 사회를 만들자는 것은 지극히 당위론적인 주장으로 울림이 적다. 단언컨대, 성평등이 이뤄져야 성폭력이 사라진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개헌에서는 성평등 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있는 초석이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

헌법 제1조는 국가의 핵심 가치를 담고 있다. 프랑스 헌법 제1조엔 “법률은 남녀가 선거직과 그 지위는 물론 직업적·사회적 직책에 대해서도 동등하게 다가설 수 있도록 노력한다”라 규정하고 있다. 국회 개헌 논의 과정에선 헌법 1조에 ‘대한민국은 성평등 국가’라는 것이 포함되길 기대한다.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