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이주여성은 ‘국민’… 이제 인권 주체로 봐야죠”
[만남] “이주여성은 ‘국민’… 이제 인권 주체로 봐야죠”
  • 이하나 기자
  • 승인 2018.03.20 15:52
  • 수정 2018-04-02 16: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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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이주여성의 대모 한국염

‘여목사’ 꿈 꾸다 차별에

여성운동에 눈 떠

96년 남편과 민중교회 통해

이주노동자 운동 시작

한국의 이주여성 인권운동

개척하며 제도화 기틀 마련

이주여성 주춧돌 놓은지 17년

법제도와 인식 사이 격차 커

변방에 있던 이주여성

주체로 설 수 있게 도와야

 

공정무역 카페 티트립에서 만난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설립자 한국염 목사. 그는 “이주여성을 ‘위한’ 운동이 아니라 이주여성과 ‘함께하는’ 운동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공정무역 카페 티트립에서 만난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설립자 한국염 목사. 그는 “이주여성을 ‘위한’ 운동이 아니라 이주여성과 ‘함께하는’ 운동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좋은 길동무가 되길 바라며’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설립자인 한국염(70) 목사가 기자에게 건넨 책 속에 담긴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친구라는 말대신 ‘길동무’라는 말을 즐겨 썼다. 자신의 책 『우리 모두는 이방인입니다』에서는 동료가 된 이주여성 활동가들과 운동을 지원해준 이들을 ‘길벗’이라고 불렀다. 없는 길을 내야 했고, 평탄한 길이 아닌 험준한 길을 택한 그에게 곁에 있는 이들은 함께 길을 걷는 벗이었다.

그는 1969년 ‘여목사’라는 꿈을 품고 한신대에 입학했다. 하지만 여성은 목사 안수를 받지 못한다는 교단의 논리가 꿈을 가로막았다. 다행히 1975년 세계여성의 해를 한 해 앞둔 1974년 한국기독교장로회가 여성목사 안수제를 통과시키면서 어렵게 꿈을 이룰 수 있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겪어야 했던 그는 그렇게 여성운동에 눈을 뜨게 된다.

‘한국염’이라는 세 글자는 한국 이주여성인권운동의 역사의 첫 장을 장식하는 이름이다. 1996년 서울 종로구 창신2동 청암교회에서 목회활동을 하던 그는 양말 공장에서 임금체불, 성추행에 시달리다 도망쳐 나온 이주노동자 8명을 만나면서 이주노동자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당시 외국인 노동자 8명 중 7명이 여성이었다.

“그 일을 계기로 청암교회에 서울이주노동자센터를 만들었어요. 그렇게 낮에는 생계를 위해 여신학자협의회에서 일하고 밤에는 이주여성노동자들 상담을 시작했지요.”

그의 곁에는 평생의 동지이자 남편인 최의팔 목사가 늘 함께였다. 1988년 장학금을 받아 떠났던 독일 유학길도 남편과 함께했다. 독일 유학은 중간에 접어야 했지만 한 목사는 오히려 “지금도 독일에서 박사 학위를 포기한 건 잘한 일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박사 학위를 받고 한국에 돌아왔다면 그는 학자의 길을 걸었을 것이다. 3년 장학금을 약속받고 떠났던 독일에서 ‘여성신학’으로 논문 주제도 정해 2년만 더 공부하면 학위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여성 신학자가 흔치 않았기에 모교에서 ‘여성 교수’가 됐을 가능성도 높았다. 하지만 남편의 한 마디가 그의 마음을 흔들었다. “마흔이 넘으면 그동안 배운 것을 삶으로 실천해야 한다.” 평소 ‘민중 신학자’에 대해 고민하던 그는 그렇게 앎과 삶이 하나가 되는 길을 택했다.

1997년 남편과 함께 서울외국인노동자센터를 열고 이주노동자를 돕던 그는 2000년 여성들과 독립해 이주여성인권단체의 전신인 여성 이주 노동자의 집을 열었다. 한국 최초의 이주 여성 전용 쉼터였다. 한 목사는 이곳에서 접한 국제결혼 이주 여성들의 상황을 “창살 없는 감옥에 사는 삶” 같았다고 했다. 그들이 ‘사람답게’ 살 수 있으려면 누군가는 나서야 했다. 한 목사는 2001년 본격적으로 이주여성운동을 하기 위해 한국여신학자협의회 사무총장 재임도 포기하고 쉼터의 이름을 ‘이주여성인권센터’로 바꾼다. 본격적인 이주 여성 인권운동의 시작이다.

한 해 1500명이 넘는 이주여성들이 이주여성인권센터를 거쳐 갔다. 단체는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이주여성 정책과 제도를 제안하고 모니터링해 나갔다. 2006년 대통령 국정과제에 ‘결혼이민자와 그 자녀의 사회통합 지원 대책’에 결혼이주여성 인권 보호를 위한 정책이 포함된 것, 가정폭력방지법에 외국인을 포함하도록 가정폭력방지법을 개정한 것, 이주여성 긴급전화 ‘1577-1366’ 개설, 폭력피해 이주여성 쉼터와 자립 지원 쉼터 설치가 이뤄진 것도 한 목사와 단체의 노력 덕이다.

약 17년이 흘러 지금 한국에는 200만명이 넘는 외국인이 살고, 귀화자를 포함한 결혼이민자는 29만5842명, 이들의 자녀는 20만4204명에 이른다(다문화가족 포털사이트 '다누리'의 통계자료). 이른바 ‘다문화’ 사회로 들어섰지만, 인종, 성별 등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와는 여전히 거리가 멀다. 특히 이주여성들은 인종차별과 성차별이라는 이중 차별을 겪고 있다. 한 목사는 “다문화라고 말하지만 실제로 다문화정책은 없다”고 비판했다. 다양한 문화를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이 다문화 사회지만 우리는 결혼이주여성에게 ‘동화정책’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비관하지 않는다고 했다. 피해자나 증언자로만 등장하던 이주여성들이 발화자로 나서기 시작했고 법제도의 기틀을 마련했다. 다문화 인구의 증가는 자연스러운 사회변화다. 그는 “이주여성을 ‘위한’ 운동이 아니라 이주여성과 ‘함께하는’ 운동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으며 함께 걸어가는 공감과 연대의 확인’이라는 신영복 선생의 글을 그는 삶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최근 제주에서 벌어진 이주여성 처제 성폭행 사건 항소심에서 무죄였던 원심판결을 뒤집고 가해자에게 7년형이 선고됐습니다. 어떻게 보셨나요.

“이주여성의 ‘미투’(Metoo)가 재판부에도 영향을 준 것은 아닐까 생각해요. 1심에서 가해자에게 무죄 판결이 나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래도 단체들이 모여 공동대책위원회를를 구성하고 친족 성폭력의 특수성, 이주여성이라는 위치 등을 강조했고, 이것이 재판부에 받아들여진 것으로 봐요. 이번 판례가 이주여성 성폭력에 경고할 수 있다는 면에서 고무적이에요.”

*광주고법 제주형사1부는 14일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혐의(강간 등 치상)로 재판에 넘겨진 전모(39)씨에게 징역 7년을 선고했다. 결혼을 3일 앞두고 필리핀 처제를 강간한 혐의다. 1심 재판부는 피해자가 적극적인 항거를 하지 않아 성관계를 거부하지 않는 것으로 오인될 수 있다고 판단해 전씨에게 무죄를 선고했으나 2심 재판부는 결혼식을 앞둔 언니의 행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려 했고 친족 성폭력의 특수성을 반영해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중형을 선고했다.

-이주여성들은 성폭력 피해를 입는데도 언어 장벽과 체류 신분 탓에 제대로 항의도 못 하고 있죠.

“이주여성의 인권 문제는 기본적으로 체류권 문제에요. 이주여성의 ‘아내강간’은 거의 성립조차 되지 않아요. 지난 2009년 법원이 처음 부부간 강간죄를 인정한 판결은 베트남 이주여성 사건이어서 주목받았어요. 당시 가스총을 들고 강제로 성관계한 남편에 대해 강간죄가 적용됐죠. 그런데 2013년 부산출입국관리사무소가 이 피해 여성의 체류연장허가신청을 거부한 사실이 드러난 거예요. 이유가 뭔지 아세요? 남편이 법원 판결 나흘 후 “억울하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그걸 두고 법무부가 ‘강간사건 전 가출 경험이 있고 정상적인 결혼생활이 아니었다’면서 법원 판결을 무시하고 비자 연장을 거부한 거예요. ‘오죽했으면 죽었겠느냐’는 동정론에 이주여성은 한국에서 쫓겨날 뻔한 거예요. 다행히 단체들이 항의해 비자가 연장됐지만, 체류권 때문에 이주여성들은 피해를 입어도 드러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매년 3월 21일은 유엔(UN)이 정한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입니다. 한국에 사는 외국인이 200만명이나 되는데 여전히 인종차별, 이주민 혐오가 심각합니다.

“UN이 66년에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을 선포하고, 전 세계가 이날을 기념하고 있는데 우리 정부만 유독 5월 20일을 세계인의 날을 따로 지정해 기념하고 있어요. 의식 수준이 드러나는 사례라고 할 수 있어요. 현재 시행 중인 다문화정책은 엄밀히 말해 ‘다문화가족정책’이에요. 현재 다문화가족의 범위는 한국인과 결혼이민자(외국인)로 이뤄진 가족, 한국인과 귀화자로 이뤄진 가족을 말해요. 굉장히 폐쇄적이죠. 유엔 인종차별 특별보고관이 한국 정부에 다문화가족 정의에 이주노동자가족, 중국 및 중앙아시아 동포 등 여타 이주민도 포함하라고 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다문화 사회라고 하지만 실제로 다문화정책은 없어요. 다양한 문화를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이 다문화 사회이지만, 현재 우리는 결혼이주여성에게 ‘한국인 며느리’가 되라는 동화정책을 쓰고 있으니까요.”

-이주민 관련 TV 프로그램이 늘었지만 여전히 이주여성에 대한 왜곡된 시선이 담겨 있어요.

“예전에 비해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도 방송 프로그램에선 경제 사정이 어려운 결혼이주여성의 사연을 소개하고 더 어려운 친정에서 부둥켜안고 우는 모습 위주로 보여줘요. 사실 잘 사는 이주여성들도 많거든요. 한국여성들은 가부장적인 며느리 상을 거부하잖아요. 그런데 이주여성들에게는 그것을 그대로 수용해야 한다고 말해요. 이것도 차별이죠. 일부에선 남자들도 피해를 본다고 해요. 이주여성들이 결혼해놓고 도망갔다는 거죠. 그런데 사연을 보면 도망가는 여성들이 이해될 때도 있어요. 가난을 면하기 위해 잘사는 나라인 한국에 왔는데, 실제로 와서 또 다른 가난에 직면하는 거예요. 그런데 여기엔 친구도 없고, 시집이라는 24시간 창살 없는 감옥에서 살아야 했던 거예요.”

-법제도는 어느 정도 마련됐지만 이주여성에 대한 사회 인식은 여전히 낮습니다. 이 차이를 좁히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요.

“먼저 이주여성들의 역량을 강화해 세력화하는 것이 중요해요. 이주여성 활동가 레티마이투씨가 10년째 열심히 활동하고 있고, 국회의원도 탄생했죠. 상담원, 통역가, 공무원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여성들도 많아졌고요. 앞으로 이주여성운동이 해야 할 일은 이주 여성을 ‘변방에서 중심으로’ 보내는 것보다는 선주민들이 변방에 선 이주여성들과 함께할 수 있도록 선주민 사회를 변화시키는 일에 더 힘을 싣는 것이에요. 선주민 중심에서 중심을 주변화하고, 변방에 있는 이주여성 삶의 자리를 중심화하는 운동을 해야 제대로 된 여성운동이 될 수 있지요. 고 신영복 교수 말처럼 ‘변방에 숲을 만드는 일’이 중요해요.”

-지난해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대표 자리를 내놓으셨어요. 앞으로의 계획 있으신가요.

“은퇴하면 데모대 맨 앞에 앉아있겠다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실제로 해보니 힘들더라고요. 하하. 지금은 특별히 계획이 없어요. 오늘에 충실하려고요. 그런데 제게 늘 일거리가 주어지더라고요. 제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야죠.”

 

한국염 목사

(사)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설립자로 현재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공동대표다. 빈민운동, 여성운동, 기독교개혁운동에 오랫동안 몸담았고 2001년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를 설립하면서 이주여성운동에 헌신해왔다. 이주여성의 인권 향상을 위한 법과 제도를 마련하는 데 기여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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