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좋나. 처음 출연한 생방송에서 대형 사고를 쳐 버렸다. 얼마 전 K 모 방송사의 토론 프로그램을 보신 독자가 혹시 있으시다면 잘못된 정보를 필자가 덥썩 알려드렸다는 사실에 심심한 사죄의 뜻을 표한다.

당시 방송에서 필자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 성희롱·성폭력 2차 피해에 해당하는지를 우리 법은 아직까지 밝혀두고 있지 않다.’ 라는 취지로 말했다. 한데, 돌아와서 관련 자료를 찬찬히 확인하다보니 큰 실수를 했음을 깨달았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법에서 2차 피해 관련 사항을 구체적으로 열거하고 있지 않았던 것은 맞다. 다만, 바로 몇 달 전 개정된 남녀고용평등법에서는 몇 가지 세부 사항들을 적시한 조항을 신설한 점이 있었다.

현재 시점 기준으로는 이 법은 아직은 ‘있다고 하기도 어렵고 없다고 하기도 어려운’ 모호한 상태에 있기는 하다. 작년 11월 2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여 개정되었지만 올해 5월 29일이 되어서야 시행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법전에는 있으되, 아직은 적용은 되지 않고 있다. 필자가 작년 여름부터 11월 무렵까지 포항공대 성희롱·성폭력 예방과 처리에 관한 규정 개정작업을 진행하면서 2차 피해 관련 규정을 신설하려고 참고가 될 만한 자료를 찾다보니 그 무렵까지는 별 다른 구체적 내용을 찾기가 쉽지 않았기에 그 기억과 인상이 너무 강렬했던 모양이다. 어쨌든 필자가 실수를 한 것은 맞으니, 솔직히 이실직고 하련다. 누군가 실제로 ‘2차 피해’로 고통 받고 있는 피해자가, 필자의 잘못된 소리를 듣고서 ‘아, 내가 입은 피해에 대해서는 법에서 일언반구 아무 말도 없는 것이로구나.’ 라고 생각하면서 낙담하고 지레 단념해 버리는 또 다른 ‘2차 피해’를 입는 일이 없기만을 바랄 뿐이다.

한 번 보자. 올해 5월 29일 시행 예정인 남녀고용평등법 제14조 제6항은 처음으로 다음과 같은 내용을 성희롱 피해근로자 등에 대하여 금지되는 불리한 처우의 구체적 세목으로 열거해 두었다. 하나, 파면, 해임, 해고, 그 밖에 신분상실에 해당하는 불이익 조치. 둘, 징계, 정직, 감봉, 강등, 승진 제한 등 부당한 인사조치. 셋, 직무 미부여, 직무 재배치, 그 밖에 본인의 의사에 반하는 인사조치. 넷, 성과평가 또는 동료평가 등에서 차별이나 그에 따른 임금 또는 상여금 등의 차별 지급. 다섯, 직업능력 개발 및 향상을 위한 교육훈련 기회의 제한. 여섯, 집단 따돌림, 폭행 또는 폭언 등 정신적·신체적 손상을 가져오는 행위를 하거나 그 행위의 발생을 방치하는 행위. 일곱, 그 밖에 신고를 한 근로자 및 피해근로자 등의 의사에 반하는 불리한 처우.

새 법이 국가기관 등을 포함한 모든 기관과 단체 등에 직접 적용되는 일반적 법률인 것은 아니다. 남녀고용평등법 자체가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업 또는 사업장에 적용되는 법이기 때문이다. 양성평등기본법에서는 아직도 2차 피해의 세목 대신 ‘사건 은폐’나 ‘고충처리 또는 구제과정 중의 추가적인 피해’ 정도로만 포괄적으로 규정해 두고 있다. 하지만 위와 같은 새 규정이 향후 각 기관 내 2차 피해 발생 여부 판단에 관한 일단의 기준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작년 12월 22일부터 새로 시행 중인 포항공대 자체 규정도 살펴보자. 여기서는 2차 피해란 성희롱·성폭력 사건이 발생한 이후, 해당 피해사실과 관련되고 그로부터 파생하여 제3자 또는 피신고자에 의하여 피해자 등에게 추가적으로 발생하는 피해를 뜻하는 것으로 규정했다. 그 세부적인 사항으로는 첫째, 피신고자가 피해자 또는 신고자에게 보복하는 행위, 둘째, 관리자가 성희롱·성폭력 피해사실을 인지하고도 이를 은폐하는 행위, 셋째, 누구든지 피해자, 신고자 또는 해당 사건에 관한 사실이나 허위사실을 공연히 유포하여 피해자 또는 신고자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피해자 또는 신고자를 공연히 비난함으로써 모욕하는 행위, 넷째, 누구든지 피해자 또는 신고하려는 자를 회유하는 등 피해자 등으로 하여금 신고하는 것에 심리적 부담감을 가지게 하는 행위, 다섯째, 누구든지 성희롱·성폭력 피해사실에 대한 신고를 이유로 피해자 또는 그 신고자에게 위해를 가하거나 위해 우려를 야기, 또는 정당한 사유 없이 불이익한 조치 등을 취하는 행위를 포함했다. 그리고 누구든지 여기서 정하는 2차 피해를 유발한 경우에는 징계한다고 명시했다. 대학 등 공공기관의 자치규범 중에서는 이 정도 수준으로나마 상세하게 항목을 구성해 둔 예가 아직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안다.

작년 12월에 대법원은 2차 피해와 관련한 매우 기념비적인 판결을 선고했다(2016다202947). 대법원은 사업주가 성희롱 피해근로자에게 불리한 조치나 대우를 하는 것은 피해자에게 성희롱을 당한 것 이상의 또 다른 정신적 고통을 줄 수 있음을 인정했다. 사업주가 성희롱 피해근로자에게 불리한 조치를 했다면 민법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이 사업주에게 발생한다는 것도 명확히 했다. 피해근로자에 대한 불리한 조치가 성희롱과는 관련성이 없거나 정당한 사유가 있었다는 입증의 책임이 사업주에게 있음도 명백하게 확인하였다. 피해근로자를 도와준 동료 근로자에게 부당한 징계 등 불리한 조치가 있었던 경우에, 그로 말미암아 피해근로자 등이 정신적 고통을 입었다면 피해근로자가 직접 그 조치를 받은 사람이 아니더라도 사업주에게 불법행위 손해배상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것도 인정하였다. 기관 내 성희롱 사건 조사참여자가 조사하면서 알게 된 비밀을 누설했거나 가해자 또는 피해자의 사회적 가치나 평가를 침해할 수 있는 언동을 했다면 이것도 피해자에게 2차 피해를 유발할 수 있는 것임을 인정한 것은 물론이다. 정말 중요한 판결이다.

#미투와 함께 2차 피해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간다. 2차 피해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는 이제 겨우 시작이다. ‘무식해서 더 용맹했던’ 필자의 허튼소리가 2차 피해 금지와 제재에 관한 제도화에 하나의 기폭제가 될 수만 있다면 열 번이라도 스무 번이라도 더 허튼소리를 늘어놓을 용의가 있다. #미투를 이어받은 꼼꼼한 법제화 노력이 절실하다. 2차 피해가 정확히 무엇인지, 어디까지 어떠한 내용으로 규제해 나갈 것인지 섬세한 토론을 계속 이어나가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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