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폐지를 위해 결성된 연대체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이 지난해 12월2일 서울 광화문 세종로 공원 앞에서 낙태죄 폐지를 위한 2017 검은 시위 ‘그러니까 낙태죄 폐지’를 열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낙태죄 폐지를 위해 결성된 연대체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이 지난해 12월2일 서울 광화문 세종로 공원 앞에서 낙태죄 폐지를 위한 2017 검은 시위 ‘그러니까 낙태죄 폐지’를 열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정부, 낙태죄 폐지·성소수자 인권보호 등 유엔 권고 97개 '불수용'

“낙태는 여성 권리와 태아 생명권 걸린 문제...신중히 결정”

“차별금지법 둘러싼 논란 고려하면 사회적 합의 필요”

국회 여성 할당제·ILO 4대 핵심협약 비준 등 121개 권고 수용

시민단체 “인권은 합의 대상 아냐...계속 모니터링할 것”

한국 정부가 ‘낙태죄’ 폐지,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사형제 폐지 등 유엔 인권이사회 권고 97개를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다.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게 주된 이유다.

지난 15일(이하 현지 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37차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한국 정부는 유엔의 국가별 정례 인권 검토(Universal Periodic Review, UPR) 결과 받은 218개 권고 중 121개 권고를 수용, 97개는 불수용하겠다고 밝혔다. UPR이란 유엔 회원국의 전반적 인권상황을 4년 6개월마다 검토하는 회의로, 한국은 지난해 11월 9일 3차 UPR 심의를 받았다.

유엔 인권이사회에 참석한 77개 한국비정부기구(NGO) 모임이 16일 낸 입장문을 보면, 한국 정부는 ▲인공임신중절을 원하는 여성과 해당 의료 서비스 제공자에 대한 처벌 철폐 ▲장애 여성의 강제 불임시술 사례 조사와 근절 조처를 불수용했다. △성적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포함한 모든 형태의 차별을 금지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군대 내 동성 간 합의된 성관계를 금지·처벌하는 군형법 제92조의6 폐지 등 성 소수자 인권 관련 23개 권고는 모두 수용하지 않았다.

또 ▲반국가단체 활동을 찬양하거나, 이적표현물을 소지 및 유포한 경우 처벌하도록 한 국가보안법 제7조의 개정 ▲사형제 폐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법적 인정 ▲대체복무제 도입 등 권고도 불수용했다.

주된 이유는 ‘사회적 논란’과 ‘사회적 합의’였다. 정부는 낙태죄 폐지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은 이유에 대해 “낙태죄를 폐지 혹은 낙태가 허용되는 상황의 폭을 넓히는 것은, 임신한 여성의 생명, 신체에 대한 자기결정권뿐만 아니라 태아의 생명권과도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문제다. 이 문제는 현재 헌법재판소에 계류 중인 낙태죄의 합헌성에 관한 결정, 해외 각국의 입법례, 그리고 사회 각계의 의견을 모두 고려하여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장애 여성에 대한 강제불임수술 조사와 근절 권고에 대해선 “이는 대한민국에서 금지되어 있으며 그러한 행위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일축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권고를 수용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선 “차별 금지 사유에 대한 논란을 감안할 때 상당한 검토와 의견 수렴 과정을 거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동성애 ‘전환치료’를 금지하라는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로는 “사적인 영역에서 일어나는 전환치료를 정부가 금지하는 것은 부적합”하다고 밝혔다. 군형법제92조6 폐지를 받아들이지 않은 이유로는 “군대 내 동성 간 성행위 합의 혹은 합의에 의하지 않은 동성 간의 성행위가 군형법 제92의조6에 의거하여 처벌될 수 있는지 여부와 그 합헌성 판단이 일반 법원 및 헌법재판소에 계류 중이고 정부는 사법부의 최종 판결을 준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제노동기구(ILO) 4대 핵심협약 비준, 국가인권위원 선정의 투명성과 위원의 독립성 보장, 인종차별 금지, 국회 여성 할당제 수립, 성 주류화를 위한 신뢰할 수 있는 조처와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 강화, 집회와 시위의 자유 권리 보장 등은 수용 의사를 밝혔다.

정부는 “권고들 중 일부는 국내법 및 조건과 양립할 수 없었고, 일부는 이미 시행 중이며, 일부는 사회적 논란 혹은 정부의 입장과의 불일치로 인하여 즉각적인 채택을 저지하기에 불수용했다”며 “일부 권고가 불수용됐을지라도, 한국 정부는 인권 상황에 대한 회원국들의 관심과 기대를 고려하기 위한 노력에 있어서 언제나 전념할 것”이라고 밝혔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지난해 4월 25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19대 대선 후보 대상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질의서에 대한 답변 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지난해 4월 25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19대 대선 후보 대상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질의서에 대한 답변 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77개 NGO모임은 한국 정부가 일부 권고를 수용한 일은 “환영”하면서도, “인권은 합의의 대상이 아니며, 정치적 선언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정부가 유엔 조약기구 심의를 비롯해 국내외에서 ‘사회적 합의를 이유로 소수자 인권보호를 지체할 수 없다’는 비판을 받은 일도 지적했다.

이어 “정부는 인권시민사회들과의 긴밀한 협조를 통해 수용 권고에 대하여 구체적 이행 계획을 제시하고, 불수용 권고에 대하여도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는 노력을 할 것을 촉구”했다. 또 “수용한 권고들을 구체적으로 이행하기 위하여 입법, 사법, 행정부의 노력이 함께 있어야 할 것이며 시민사회는 이를 계속 모니터링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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