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매매와의 전쟁 (3)]'생존자'의 생생한 증언

난 돈을 써본 적이 없어요

내 몸 가지고 돈이 중개소 사람들이랑

포주들 사이를 왔다갔다한 거지

직업소개소는 인신매매 조직이에요

-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본인의 어린 시절 얘기를 들려주시겠어요?

“5살 때 5남매 중 나만 외숙모네 집에 맡겨졌는데 외숙모한테 구박 많이 받으면서 처음으로 ‘눈치’라는 걸 배웠어요. 7살 때 위층 살던 오빠가 추행을 시작했어요. 성기를 노출시키고 만지게 하고 싫다고 하면 때리고… 11살엔 옆집 아저씨가 문 열어 달래더니 내 속옷 속으로 손을 넣고 그 후로 계속 추행했어요. 고자질하면 나만 혼날 것같아 말 못했어요. 커서 이모 아들한테도 당했지만 자포자기 상태가 되었어요. 난 모든 남자들이 다 우리 아버지처럼 무섭고 폭력적인 줄 알았던 거예요.”

- 아버지에게 많이 맞았나요.

“5학년 때 아버지가 귀국했는데 매일 때렸어요. 고무호스나 가죽혁대 같은 걸로. 그게 없으면 어딘가 터져서 피가 날 때까지 손발로 마구 때렸어요. 중학교 들어갈 때부터는 발가벗기고 손발을 다 묶어놓고 가죽으로 때렸고요. 이유 없이 맞았기 때문에 나중엔 잘못했다는 소리도 안 나왔고 그냥 맞나보다 했어요. 그래도 집 나갈 생각은 안 했는데… 내가 산업고에 붙었는데 아버지가 보내줄 수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17살에 가출했어요. 빵집 점원으로 일하고 주유소에서도 6개월 이상 일했어요. 근데 돈을 안 줬어요. ‘나이가 어리고 먹고 자고 했으니 줄 게 없다’는 거예요.”

- 그래서 업소로 들어가게 되었나요.

“집에 가고 싶었지만 아버지에게 맞고 살 자신이 없었어요. 같이 일하던 언니가 술집에 일 나갔는데 그 언니 소개로 들어갔어요. 그게 18살 때예요. 가서 처음으로 술 담배를 배웠고 주인은 매일 2차를 나가게 했어요. 그때부터 남자들에게 짓밟히기 시작한 거죠. 그렇게 4년간 일했는데 한 푼도 못 받았어요. 주인은 ‘니가 어리니까 돈 대신 관리해주고 나갈 때 모아서 주겠다’ 했는데 거짓말이었어요.”

- 그후 어떻게 살았는지.

“이혼한 남자를 만나 21살에 동거 시작했어요. 아이도 낳았어요. 난 정말 열심히 살아보려고 남편이랑 돈도 악착같이 모아서 아이가 5살이 되었을 때 집까지 장만했어요. 근데 내가 가게서 일할 때 2차 손님 중 하나가 남편후배였던 거예요. 난 과거를 잊으려고 노력했고 남편에게 나에 대한 얘길 안 했거든요. 이후로 남편은 허구한 날 술 마시고 들어와서 폭언을 해대고 폭력을 행사했고 많이 싸웠어요. 결국 이혼했죠.”

- 그리고 업소로 다시 오게 된 건가요.

“친정에 돌아가려 했지만 집에서 안 받아줬어요. 아버지는 ‘너 같은 애는 다방 같은 데서 일하는 게 좋겠다’고 했죠. 결국 정말로 난 충북 음성에 있는 한 다방에 가게 됐어요. 근데 한 달만에 빚이 250만원이 생겼어요. 두 달이 되니까 480만원이 되었고요.”

- 어떻게 그런 빚이 생기는 거죠.

“일 못하면 벌금으로 까는 거예요. 부당해도 갚아야만 하는 빚이에요. 그래서 빚 까려고 5백만원 받고 원주 희망촌(사창가)에 갔어요. 거기서 6개월 간 일해줬는데 그만두려고 하니까 9백만원을 가져오라고 하는 거예요. 벌금과 이자를 합한 돈이래요. 난 돈을 만져본 적도 없는데 말이에요. 너무 억울해서 뛰쳐나왔더니 업주가 경찰에 고소를 했어요.”

- 업주가 고소를 해요? 그래서 어떻게 되었나요.

“그건 (한소리회의 도움을 받아) 무혐의 처리됐어요. 하지만 난 돈을 벌러 나서야 했죠. 충주 직업소개소에서 다방을 소개해 줬는데 일하다 쓰러졌어요. 병원에 갔더니 신우염이래요. 근데 입원 두 번 하고 그랬더니 다 빚이 돼서 4백만원이라고 했어요. 소개소에서 나를 집결지(사창가)로 보냈죠. 충주 룸살롱, 고성 룸살롱, 온양 방석집, 대전 유성 술집 거치면서 1천7백만원으로 빚이 늘어났어요. 그거 갚으려고 대구 자갈치로 팔려갔다가 견딜 수가 없어서 도망 나왔어요.”

- 직업소개소가 포주들에게 여성들 넘겨주면서 돈을 받는 건가요.

“난 돈을 써본 적이 없어요. 그냥 내 몸 가지고 돈이 중개소 사람들이랑 포주들 사이를 왔다갔다한 거예요. 전국에 있는 직업소개소들이 업주보다 더 나빠요. 인신매매 조직이에요.”

- 안 가 본 곳이 없는데 장소에 따라 환경이 다른가요.

“사창가, 다방, 술집, 룸살롱 다 비슷해요. 술 안 먹고 매춘하는 거랑 술 먹고 매춘하는 거랑 차이죠. 물론 집결지(무허가 건물 사창가)가 육체적으로 더 힘들어요. 손님 더 받아야 하니까. 하지만 다 마찬가지예요. 오후 6시부터 다음날 아침 9시까지 일하면서 7∼8명 받아야 돼요.”

- 가두어 놓거나 감시를 하는지.

“외출을 못한 건 아니에요. 집에 간다고 하고 하루 정도 나올 수 있어요. 근데 나와 있으면 돌아가기 싫어지잖아요. 그래서 하루 이틀 더 나와 있으면 벌금을 엄청 물려요. 그리고 정말 감금된 적도 있어요. 대구에선 밖으로 한 발짝도 못 나가게 했어요. 1천4백에 넘어갔는데 화장실에 가려고 해도 종업원 하나가 붙어요. 말이 쉽지, 낮에 지키고 밤에 지키고. 유리관에서 드레스 입고 있으면 이모들이(히빠리) 남자 데려오는데 술 취한 남자, 변태들 상관없이 들어가라고 하면 내가 아파서 죽어도 가야 하는 거예요. 병원에 가도 2명씩 따라 붙고 밖과 완전히 단절시켜요.”

- 피임이나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죠? 식사는 챙겨먹나요.

“(피임)약 먹죠. 남자들 콘돔 안 써요. 업주는 언니들 낙태하고 관절 나빠지고 허리 안 좋아지고 그러면 쉬게 해준다고 하면서 다른 데로 넘겨요. 밥은… 밥 시간 정해놓고 그 때만 먹을 수 있는데 피곤해서 눈도 못 뜨는데 그거 지키기 어렵죠. 속이 괴로운데 입맛도 안 생기고요. 밥 시간 아닐 때 먹다가 들켜서 욕먹고 무지 맞고 돈까지 물기도 해요.”

- 병원에 자주 간 것 같은데 업주가 가라고 하는 건지.

“한 번은 내가 너무 손님을 많이 받는 것 같으니까 좀 쉬라고 했어요. 기력이 없어 쓰러지면 자기들이 손해니까. 영양제 맞춰가면서 일하게 해요. 병원도 수시로 가게 하고요. 언젠가 꽁지뼈에 금이 갔다고 의사가 무조건 쉬어야 한다고 했어요. 근데 1주일 지나니까 눈치를 주는 거예요. 일할 수밖에 없었죠. 남자들은 육체적으로 우릴 괴롭히지만 업주 눈치보느니 손님 받는 게 차라리 낫다 했어요.”

- 사람이 그런 짓을 할 수 있다는 게 상상이 안 가는군요.

“돈 벌어서 우리가 다 자기들 먹여 살리는데 우리한테 그렇게 해요. 정말 업주들 중에 딸 키우는 사람도 있는데 이럴 수 있나 싶죠. 나쁜 맘이지만 ‘니 딸도 나처럼 되면 우리에게 얼마나 잘못했는지 알텐데’하는 생각했어요. 내 딸이 그렇게 된다면 난 못 견딜 거예요. 피눈물 안 쏟는 아가씨들 못 봤어요. 일 끝나면 술 마시면서 부둥켜안고 울어요.”

- 업소를 빠져나갈 수 없는 건 빚 때문인가요.

“잡히게 되어 있어요. 사람 써서 잡히면 사람 쓴 것만큼 빚이 늘어나요. 더 험악한 곳으로 보낸다고 위협하고. 그리고 돈 한 푼 없는데 갈 곳이 있어야지요. 자포자기해서 다시 오는 거예요. 나도 정말 운이 안 따라주었음 ‘이렇게 살 수 밖에 없는가 보다’하고 계속 끌려 다니고 있을 거예요.”

조이 여울 기자 cognate@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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