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묘문화 이대론 안된다” 개선논의 시작

50년 후면 땅에 묻히는것 불가능

매장이냐 화장이냐 논란보다

추모에 대한 사고 전환이 열쇠

최근 2∼3년새 우리 사회는 온통 장지로 뒤덮일 위기에 놓인 국토를 구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사회지도층이 솔선수범해 간소화된 장례문화의 모범을 촉구하기도 하고 화장과 납골당, 추모공원 건립 등 다양한 대안을 제시하기도 한다.

화장 유언남기기운동은 기독교에서도 화장장려운동본부를 만듦으로써 화장을 거부한다는 인식을 불식시키고 있다. 9월에는 장묘문화개선운동본부가 발족했으며, 10월 17일에는 한국장례문화연구회가 ‘서울시민을 위한 장묘 정보 발표회’를 갖고 선진적인 화장문화 실천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또 대구사랑운동시민회의가 ‘아름다운 혼·상례를 위한 사회지도층 선언’을 통해 ‘매장보다 화장을 선택하고 납골당을 이용하는 검소한’장례문화를 정착시키겠다고 다짐했다.

환경단체에서는 “매장 위주의 문화로 인한 산림 파괴 및 자연환경 훼손을 줄이고 자연과 인간, 산 자와 죽은 자가 공존”할 수 있는 장묘문화 실천을 위해 녹색장묘운동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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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장 위주의 장묘문화가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묘지가 이미 포화상태에 이르자 산 사람을 위한 주거공간이 줄어든다는 위기감에서 비롯되었다.

환경운동연합 자료에 의하면 97년말 기준 국내 묘지 면적은 전체 택지 면적의 절반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도권에서는 3년, 전국적으로 10년 이내에 집단묘지는 한계상황에 이르며 앞으로 50년 후면 땅에 묻히는 것은 포기해야 할 정도라는 것이다.

즉 매년 20만기의 묘지가 새로 조성됨에 따라 여의도 면적의 1.2배가 잠식당한다는 것이다. 용미리, 벽제, 망우리, 내곡리 등 서울 시립묘지는 이미 사용 중단되거나 만장이 된 지 오래다.

우리 장묘문화가 원래부터 매장은 아니었다고 한다. 서울보건대 장례지도학과 이필도 교수는 “신라시대나 고려시대에는 종교적인 이유로 인해 주로 화장을 했지만 조선시대부터 유교의 영향을 받아 매장하는 풍습으로 바뀌어 오늘날까지 전해져 오는 것”이라고 말한다. 풍수도참사상과 유교적 효의 사상이 결합해 명당 발복을 기원하는 매장제도로 이어져 내려와 선산 및 개인 묘를 선호하는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최근 장묘문화의 대안으로 제시된 화장문화가 다시 주목받고 있는 것은 서울시의 제2화장장 건립부지 선정과정에서 서초구 원지동 주민과 7개월 가까이 갈등을 빚어오면서부터이다.

그러나 부모를 화장한다는 것이 불효를 저지르는 일이라는 오래된 고정관념은 차츰 깨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서울시민의 화장률을 보면 96년 30%에서 작년 1월 현재 55%로 증가했다. 전국적인 추세를 보면 33%에 이르고 있다.

환경운동연합 자료에 의하면 60.6%가 화장을 유언으로 남기기 서명운동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했으며 사망 후 자신의 화장에 대해 66.8%가 찬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에는 잔디를 심어 자연친화적인 요소를 접목시키고 있으며, 전문 납골시공업체들에 의해 납골묘에 대한 인식은 점점 나아지고 있다.

결국 추모에 대한 사고 전환이 열쇠라고 대부분의 취재원들은 전했다. “가장 조상을 잘 모신다고 자부하는 나라에서 기껏해야 1년에 한두 번 그것도 교통대란을 유발하며 성묘를 하는 것은 조상을 모시는 것이 아닌 방치하는 것”이라고 얘기하는 학자도 있었다.

부의금도 찾아볼 수 없고 매장의 경우 1평 이상을 허용하지 않으며 이마저도 시한부 묘지로 이용하게 하는 외국의 경우 우리만큼 추모의 정도가 낮지는 않을 것이다. 장미동산, 추억의 동산이라 불리는 공원묘지가 도심지에 위치해 언제 어느 때든 찾아가 야생동물이 뛰어 다니는 한 쪽에서 고인에게 책을 읽어주는 풍경은 이제 남의 나라만의 얘기로만 들을 수 없는 때가 되었다.

화장 및 납골시설의 설치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설치 주제나 절차, 입지 면에서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지속적인 홍보를 통해 주민 의식을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전국 최초로 가족 납골묘 설치를 도 시책으로 정해 납골묘 1개소 당 설치비용의 50%를 지원하는 경상남도는 장묘개선사업의 모범사례로 꼽힌다. 전통적으로 보수성향이 짙은 지역특성을 감안하면 4년만에 전국에서 가장 많은 납골묘와 납골탑을 보급시킨 것은 획기적인 일이라 할 수 있다.

경상남도는 내년부터 거제시, 창녕군, 남해군, 산청군, 거창군, 합천군 등 6개 시군 거주자 중 화장을 할 때는 화장 장려금을 지급할 계획이라고 한다. 97년부터 납골묘 설치 사업 시범시로 선정된 밀양시의 경우 문중 어른을 수차례 방문해 설득한 결과 시행 첫 해에는 세 개 면에, 이듬해에는 나머지 면에 시범 설치했으며, 3년이 되던 해에는 신청자가 쇄도해 선별해 허가 설치했다고 한다.

또 하나의 문제는 대규모의 화장장이 가져오는 교통대란이나 자연환경 훼손을 들 수 있다.

전 주민이 님비현상의 이기주의자로 몰리는 것을 각오하고 제2화장장 건립을 결사 반대했던 청계산지키기 시민운동본부는 화장장 및 추모공원 건립은 필요하나 대형으로 건립될 때의 문제점으로 “피할 수 없는 교통대란과 잘 조성되어 있는 자연공원이 인위적인 힘에 의해 인조공원으로 전락하는 것”을 들며 강하게 반발했다.

시민운동본부에 따르면 “청계산은 서초구에서 약 70억원을 들여 등산객들이 편히 이용할 수 있도록 다듬어진 서울시민들의 쉼터”인데 “이 곳에 화장장과 추모공원을 건립한다면 5만여 평의 자연공원이 훼손되고 3년 후면 결국 만장되기 때문에 약 10만여 평의 자연파괴가 예상된다”며 “입지조건을 충분히 검토한 후 4∼5개 권역별로 소규모 분산시켜 건립할 것”을 제안했다.

사단법인 한국장례문화연구회 남대훈 실장도 “갑작스런 변화는 많은 부작용을 낳는다”며 “대규모 묘역화보다는 동네마다 작은 규모의 공원을 조성해 지역주민들에게 친밀감을 주는 방향으로 추진한다면 그들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박정 희경 기자 chkyung@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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