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라고 말하지 못하는 생모들
어머니라고 말하지 못하는 생모들
  • 여성신문
  • 승인 2005.05.12 16:29
  • 수정 2005-05-12 16: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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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클레몬트에서]
해외 입양아 생모의 아픔

한국사회도 헤아려야 할때

한국의 해외 입양아들이 성인이 되어 부모를 찾는 일이 한국의 미디어를 통해서 알려지기 시작한 지도 벌써 수년이 되었다. 과거를 접어두고, 또 미래에는 더 큰 방황과 상처를 느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알면서도, 만남 그 자체를 위해서 해외 입양아들은 생부모를 찾는 모험을 하고 있다. 과거 해외 입양아들은 이제 21세기의 한국적인 대하드라마의 주인공들이다. 이 한국적 대하드라마에서 여전히 잊혀지고 더러운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바로 입양아들의 생모이다.

케리(가명)의 생모의 경우도 그러하다. 생후 6개월에 미국으로 입양됐던 케리는 성인이 되어 한국인들이 많기로 이름난 남가주의 모 신학교에서 신학도가 되기로 결심한다. 여기에서 한 한국인 신학교 교수의 도움으로 케리는 생부모를 만나게 되었다. 케리의 경우는 행복한 결말이므로 케리 자신이나 케리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은 흐뭇해한다.

그러나 이 만남의 기쁨을 누릴 수 없는 사람이 있는데 바로 그녀의 생모이다. 케리의 생부모는 모두 따로 결혼을 해서 자녀를 둔 원만한 가정생활을 하고 있었다. 생부와 그의 부인과 자녀들은 케리와 상봉하고 잃었던 자녀와 자매를 만난 것을 기뻐하면서 계속 만나고 있다. 반면에 생모는 케리를 만나는 일을 일년동안 주저했다. 결국 비밀리에 겨우 30분간 모녀가 상면했다. 그리고 생모는 이 일을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자신의 가족들에게 알리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케리 뿐 아니라 다른 입양아들의 경우에도 생부는 그 만남의 기쁨과 슬픔을 사회적으로 드러낼 수 있지만, 생모는 만남 후에 그 죄책감과 고통이 더 크게 된다는 이야기는 한국의 성(gender)문화가 만들어내는, 여성들에게 가해진 또 하나의 비극이다. 20여 년 전의 실수 혹은 피해를 용서하지 않으려는 남편과 자식들, 그리고 한국사회의 풍토 때문에 생모들은 자식들이 찾으러 와도 그 만남을 기뻐하기보다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 여성들이 두려워하는 이유가 자신들이 키울 수 없었던 자녀들을 완전히 잊고 상관하지 않기 때문인가? 케리의 생모는 그녀가 키울 수 없었던 딸이 서울 하늘아래 어딘가에 살아 있다고 하는 점쟁이의 말에 의지하면서 20년을 살았다고 한다. 그리고 혹시 딸이 생부모를 찾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나올까 싶어서 매주 시청했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 딸이 자신을 찾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앞으로 나서지 못하는 그녀의 심정을 한국사회는 대수롭지 않게 여겨야 할 것인가.

이런 생모의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들이나 듣는 사람들은 이들의 고통에 대해서 무감각하거나 외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국 사회는 생모들의 예리한 아픔을 여전히 감추어두려고 하는 듯하다. 이를 헤아려보는 대신 방종했던 철부지 소녀들에 대한 경고 정도로 차갑고 동정에 찬 눈길을 잠시 던질 뿐이다. 생모들이 자녀들을 계속 만날 수 없는 상황에 있는 한 한국 여성운동의 길이 멀다는 점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황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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