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성폭력 조작의혹 ‘자보’ 논방

지난 달 24일 서울대학교 인문대 건물에 ‘서울대 성희롱성폭력상담소의 사건 조작 기도를 고발합니다’라는 자보가 붙었다. 자보 앞에는 유례가 없을 만큼 많은 학생들이 몰려들었고, 다음날 몇몇 개인들과 서울대 여성모임들이 이 자보에 반박하는 자보를 붙여 인문대 벽은 벽돌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빼곡하게 자보가 들어찼다.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온라인에서도 학내 자치언론 SNUNowwww.snunow.com 의 토론방을 중심으로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문제의 자보를 붙인 이는 작년 10월 성폭력 사건의 가해자로 지목되어 공개 사과자보를 쓴 ㅇ씨다. ㅇ씨는 “나는 성폭력을 저지른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의도적으로 성폭력을 저지른 가해자의 누명을 썼다. 비대위(성폭력사건 비상대책위원회)의 조사과정에서 사건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사건 공개자보에 없는 사실이 들어갔으며, 자신의 대리인에게 구타를 당하는 등의 문제가 있었다. 사건이 성희롱·성폭력상담소(이하 상담소)로 넘어간 이후에도 조사위원 자격이 없는 상담소 상근자가 조사를 도맡아 수행했고 피해자를 일방적으로 편들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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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들이 ㅇ씨가 붙인 ‘서울대 성희롱성폭력상담소의 사건조작 기도를 고발합니다’ 자보를 읽고 있다.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당시 상담소 상근자였던 안모씨, 조사위원 진모씨는 각각 반박 자보를 통해 “상근자는 조사위원들과 조사위원장의 허가 없이 단독으로 사건을 조사할 수 없으며, 사건 해결과정에서 아무런 결정권을 갖고 있지 않고, 증인진술 조작을 방조한 적도 없다” “조사위원들은 피신고자를 압박하지 않기 위해, 첫날 이후 5인 중 1∼2인 정도만 면담에 참여했다. 조사위원들은 모든 회의에 참석하여 관련 자료들을 모두 검토하였으며, 피해자의 진술 번복에 대한 조사도 모두 이루어졌고, 조사결과 바뀐 진술내용은 성폭력 사실의 성립 여부에 상관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항의했다.

당시 비대위에 가해자 ㅇ씨의 대리인으로 참석한 조모씨도 “비대위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진술에 기초하여 조사를 한 이후 사과문을 요구했으며, 가해자는 자신이 성폭력을 저질렀음을 인정하고 사건공개에도 합의했다. 비대위는 사건을 공개하면서 이 사건이 의도된 성폭력이라고 규정한 적이 없으며, 단지 자보에 당시 상황을 간략하게 서술했을 뿐이다. ㅇ씨와 나는 평소 친밀한 사이였고, 그 때문에 배신감을 느껴 몇 대만 때리겠다고 하자 ㅇ씨도 응했다. 이후 가해자 대리인을 교체하고 싶으면 그렇게 하라고 했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라고 반박했다. 또 ‘ㅇ씨가 피해자가 성폭력을 유발한 것인 양 가해자의 관점에서 사건을 왜곡하고 있다’라는 반박도 여러 번 제기되었다.

‘성폭력 조작의혹 사건’이 터진 지 1주일이 지났지만 아직 해결의 실마리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로 인해 자칫 지금까지 일구어 온 반성폭력 운동 자체가 무너져내리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할 것이다. ㅇ씨와, 현재 피해자 대리인 역할을 하고 있는 이모씨(관악여모 집행부)와의 이메일 인터뷰를 싣는다.

가해자o씨 “의도적으로 가해자 누명썼다”

- 자보를 통해 자신의 행위가 성폭력이 아니라고 주장했는데.

“성폭력은 상대의 의사에 반하는 성적행위가 있었을 때 성립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여성의 의사가 있고, 그 의사에 반해야 하며, 행위가 있어야 성립할 것이다. 나는 ‘암묵적 동의’에 따라 행동했고, 상대여성의 ‘암묵적인 거부’에 따라 모든 행위를 중단했다.”

- 자신이 ‘피해자 유발론’으로 사건을 왜곡하고 있다는 비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나는 상대여성이 성폭력을 유발했다는 식으로 글을 쓴 적이 없다. 단지 내가 계획적으로 상대여성에게 접근하여 성폭력을 저질렀다는 비대위 주장에 반박한 것뿐이다.”

- 비대위 사건처리 과정에서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이 무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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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위 구성원은 모두 관악여모에서 지명한 사람들이었다. 나는 가뜩이나 위축된 터에 내 대리인에게 구타까지 당했다. 조사는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이루어졌고, 사실조사와 증인조사가 미비한 상태에서 사건 공개자보에는 없는 사실까지 첨가돼 실렸다.”

- 상담소 상근자에겐 조사권한이 없다. 조사과정에 문제 제기하려면 조사위원회에 했어야 하지 않나.

“조사위원 5인과는 최초 대면 이후 얼굴 본 적이 없다. 실질적인 조사는 대부분 조사권한이 없는 상근자를 통해 이뤄졌다. 또 상대여성이 증인의 진술서를 받아 수정하는 일이 일어났는데 상근자는 이를 방치했다. 조사위원 5인 중 4인은 첫날 이후로 나를 조사한 적이 없다.”

피해자 대리인 이모씨“피해자 유발론 용납할 수 없어”

- 이번 사건에서 맡은 역할이 무엇인가.

“비대위나 상담소 활동에 공식적으로 참여하지는 않았다. 나는 ㅇ씨의 자보가 붙은 이후로 피해자를 대리하고 상담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 비대위의 성격과 역할에 대해 설명해달라.

“비대위는 학내 성폭력사건을 해결하는 자치기구다. 강제력이 없으며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의 합의를 통해 문제를 풀어가고자 한다. 따라서 비대위는 조사기구·논의기구·합의기구·실행기구 등 여러 가지 복합적 성격을 띠고 있다. 합의에 의한 사건의 해결과, 피해자의 치유 및 권리 보장, 그리고 가해자와 학생사회 전체의 인식 변화가 목적이다. 비대위는 일반적으로 피해자 소속단위 1인, 가해자 소속단위 1인, 관악여모 소속 1인으로 구성되며 피해자 대리인과 가해자 본인 및 대리인이 미팅에 함께 참석하고 동등한 발언권을 가진다.”

- 비대위가 아무런 사건조사 없이 피신고자에게 사과문부터 요구했다는데.

“가해자 대리인 조씨의 자보에도 나오듯이, 그렇지 않다. 사건이 신고된 첫날 ㅇ씨와의 첫 대면 자리에 나도 있었다. 그 이후에도 몇 번 ㅇ씨와 접촉했었고 사과문은 세 번째 모임에서 요구된 것으로 안다.”

- ㅇ씨는 사건당시 상황이 성폭력적이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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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안 된다. 피해자는 ‘전혀 원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더구나 피해자는 몸이 아팠고, 술을 마시고 잠이 든 상태라 의사표현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작년 사과문에도 ㅇ씨는 ‘피해자가 아팠다는 것을 알았다’고 썼다. 만약 피해자가 약간 의식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런 상황에선 저항하기 힘들다. 성폭력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피해자가 어떻게 느꼈는가’이다. 가해자는 자신의 행동이 성폭력이 아니라고 스스로 생각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피해자가 고통을 받았다면 그것은 분명히 성폭력이다.”

김한 정연/서울대 3년필자

(xinai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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