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의욕은 저하되고 대박 꿈은 커지고

내가 알던 친척 형이 돈을 벌러 사우디로 떠난 날. 일확천금을 쫓아 고향을 떠나는 그 형을 나는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본 적이 있다. 그러나 내심 더욱 더 부러웠던 것은 ‘사우디’라는 낯선 나라의 사람들이었다. 끝없이 퍼낼 수 있는 석유 덕에 돈이 넘쳐 흐르는 땅. 그 나라에서는 뭐든 공짜라는 것이었다. 한 마디로 아라비안 나이트의 나라, 바로 그 곳이었다.

지난 주 사우디아라비아에 관한 한 미국 신문의 글을 읽은 순간, 당시의 기억이 씁쓸하게 떠올랐던 것은 왜였을까? 어린 시절 내 상상만큼은 아니었지만, 실제로 이 나라는 한때 엄청난 오일 머니로 젊은이들에게 엄청난 복지 혜택을 제공했다. 이 나라의 젊은이들은 무상으로 대학 교육을 받았다. 실업 수당은 일자리 없이 먹고 살기에 충분했다. 졸업 후 일을 하는 젊은이가 둘에 한 명 꼴도 안 될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했다.

최근 들어 이 나라 정부 재정이 이런 복지 혜택을 감당하지 못하면서, 문제가 생겨났다. 일도 해본 사람이 한다고, 젊은 세대가 좀처럼 일을 하려 들지 않게 된 것이다. 그나마 남겨진 궂은 일 대부분은 외국 노동자들의 몫이었다. 지나친 복지 혜택이 이 나라 젊은이들로 하여금 근로의욕을 앗아가 버리고 만 셈이다.

경제는 자본과 노동의 결합체다. 여기에 생산성 변화도 경제를 바꾸는 요소로 작용한다. 그런데 자본과 생산성의 향상은 단기간에 쉽사리 바꿀 수 있는 요인이 아니다. 그러나 사람의 근로 의욕은 크게 좋아지거나 나빠질 수 있다. 물론 그 나라의 문화나 수준을 반영하는 근로의욕 역시 단기간에 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정치 리더십은 물론이고 사회적 합의, 해당국의 총체적 분위기에 따라 장기적으로 크게 변하기도 한다. 이에 따라 경제 상황이 엄청나게 바뀐다. 근로의욕이 그 나라 경제에 극히 중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예가 부정적인 것이라면, 60년대 이후 우리나라 경제 성장은 긍정적인 경우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한 때 근로의욕 면에서 최고 수준으로 꼽혔던 일본의 경우도 상황이 안 좋기는 마찬가지다. 일본의 젊은이들은 점차 일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고 있다. 지난해 초 수십여명의 일본 젊은이들을 인터뷰한 미국의 언론인 토마스 퓰러는 이를 ‘한 세대에 걸친 불황’(Generation Slump) 탓이라고 결론 내렸다. 이제 그들은 더 이상 봉급 생활자와 오피스 레이디를 꿈꾸지 않는다는 것이다(<인터내셔널 해럴드 트리뷴> 2001년 9월10일자). 편안한 직장과 안락한 노후 생활의 기회를 잃은 일본의 젊은이들이 일에 관심과 의욕이 있을 리 없다.

근로의 기회를 박탈당한 사람에게는 근로의욕이라는 말조차 사치스럽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일자리를 찾는 젊은 세대와 일자리에서 쫓겨난 50대 이후의 나이든 세대의 경우가 여기에 속한다. 그러나 바로 이 점이 장기적으로 근로의욕을 떨어뜨릴지 모른다는 것이다.

일자리를 가진 사람들의 경우도 상황은 비슷하다. 불안정한 경제 구조와 구조조정에 대한 불안감으로 일할 맛을 잃은 지 오래다. 정치·경제를 비롯한 사회 전체의 분위기는 말할 것도 없다. 이에 따라 비정상적인 대박에의 꿈은 높지만, 정상적인 근로의욕은 크게 저하돼 있다.

우리 나라 입국을 꿈꾸는 동남·서남 아시아 젊은이들이 우리를 사우디나 일본처럼 기억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는가?

김방희/ 경제칼럼니스트 MBC 라디오 <손에 잡히는 경제>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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