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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는 법 없이도 잘 살 사람이라는 말을 들으면 요즘은 좀 헷갈린다. 고전적 의미 그대로 워낙 착하여 그의 행동과 말과 사고에는 법을 들이대어 형별적 효과를 노릴 만한 제재거리가 전혀 없다는 것인지, 현재적 의미로 봤을 때 그 어떤 법 적용도 무용지물로 만드는 소위 법망을 하도 잘 피하므로 그 어떤 법을 갖다놔도 소용없다는 것인지 구분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에다 또 한가지, 법이란 그저 법관의 해석 나름으로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정도로 치부되는 듯한 인상을 받는 경우도 드물지 않게 마주친다.

삶을 이어가는 과정에서 어쩌다 불이익을 당하거나 인권이 유린되는 경우에도 보통 시민이 감히 법에 호소하여 잃은 그 무엇을 찾겠다는 그 자체가 시간낭비는 아닐까? 그렇다면 어떤 특정한 목적을 염두에 두고 제정되어 운용되는 <특별법>은 그야말로 법의 특별한 액세서리는 아닐까? 내키면 다이아몬드도 박아넣을 수 있고 수틀리면 납도 아까워 내팽개쳐 버리는…이라고 고개를 내젓는 등 사뭇 부정적인 편견을 앞세워 법을 생각하게 되면서 딜레마에 빠져 고민하는 게 한편으로는 스스로 가소로워 조소적인 미소를 머금는다.

그러나 그냥 넘어갈 수가 없다.

며칠 전 일이다. 정오 무렵 우연히 거실을 지나다가 켜져있는 TV에서 흘러나오는 짤막한 뉴스를 들었다. <강도강간> 죄목이 성립되려면 강도질을 하면서 시차없이 연속적으로 강간을 해야만 한다는 판결이 서울의 한 법원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당연히 그 범죄자는 <강도죄>만 적용되었다던가.

그 사건의 시말이 갑자기 궁금해졌다. 그렇지 않아도 청소년과 관련한 성범죄자들이 죄는 지었어도 범죄자가 되지 않는 예가 하루가 멀다하고 재판결과로 나오고 있잖는가. 하던 일을 제쳐두고 인터넷에서 관련 뉴스를 찾았다.

세상에! 그 뉴스를 보면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그러니까 한 여성이 술에 취하여 택시를 잡아탔다. 택시기사는 음료수 한 병을 친절하게 내밀었다. 음료수를 마신 여성이 깊이 잠들자 택시기사는 여관으로 옮긴다. 그리고는 우선 강도짓을 하고나서 택시회사로 가 근무교대를 하였다.

다시 여관으로 돌아가서 그 여성을 강간하였다. 그 택시기사가 강도짓하고 나서 강간하기까지 두어시간이 흘렀다.

택시 기사는 음료수에 수면제를 탔던 것이다. 때문에 그 여성은 강도를 당할 때 의식이 없었고 강간을 당할 때도 미쳐 깨어나지 못하여 저항할 수 없었다. 이 사건의 결과는 판사에 의하여 중형을 선고할 수 있는 <강도강간죄>가 아닌 형량이 비교적 가벼운 <강도죄>와 <강간죄>라는 각각의 다른 법적용이 이뤄졌다. <강간죄>는 일종의 친고죄여서 피해여성이 신고를 따로 해야 죄가 성립된다고 하였다. 정말로 그럴까?

택시기사는 강도와 강간을 연속적으로 하였다. 더구나 너무 완벽하게 범행을 저질렀다. 수면제를 탄 음료수를 준비할 때부터 그는 범행의 의도가 있었고 여성승객에게 주었을 때는 이미 범행에 들어갔다. 중간에 근무교대를 하느라 두 시간의 공백을 둔 것은 그 시간동안에 도저히 여성승객이 깨어나지 못한다는 치밀한 계산을 한 것이므로 두 범죄는 시차를 두고 저질러 진 게 아니고 범죄 중에 유유자적한 것이다.

그럼으로 택시기사는 계획적인 <강도강간죄>를 지었다고 본다. 판결로만 보건데 여기 나열한 나의 <공소유지>가 타당하지 않던가 그 담당판사의 법적용이 <이언령 비언령>이든가 둘 중의 하나이다.

<한림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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