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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화/여성자원금고 이사장,전문직여성클럽 한국연맹 회장

요즘처럼 불안하고 허망한 시기에 새 대통령으로 뽑힌 분이 얼마나

많은 짐을 져야되는가를 생각할 때 “무엇을 바란다”고 감히 말하

기가 어렵다. 다만 “어떻게 하면 좋을까”를 같이 걱정한다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이러한 소시민의 심정을 헤아려 대통령은 우선 그

가 가진 최고의 권위와 큰 서비스로 우리의 잃어버린 자존심과 수치

심을 회복시키고 현실적으로 아픈 마음들을 위로해 주었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치권과 경제계의 뼈아픈 반성과 각성을 유도해

내야 할 것이고, 땅에 떨어진 국민의 신뢰도에 대한 자기 반성과 대

책도 필요할 것이다. 그래서 국민 각자의 역할과 각오가 어떻게 표

현되어 생산적 활동과 연계될 것인가에 대해 비젼을 제시해 주어야

할 것이다.

불과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세계여행을 위해 또는 해외 유학을 위

해 몇천불, 몇만불이 아깝지 않는 분위기였는데 갑자기 허리띠를 졸

라매라는 것은 도무지 실감나지 않는 얘기가 될 수도 있다. 매달 1

백만 달러가 임대 수입이던 남산 외인 아파트를 단 몇초만에 폭파시

키는 위력(?)을 보인 것犬?OECD가입으로 명실상부한 선진국 대

열에 섰다고 자축연을 연 것이 바로 1년 전인데 우리 경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그렇게 안심을 시키더니 결국 이러한 파국을 가져올

줄이야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그동안 우리 경제가 정경유착과 관치경제 속에서 투명성을 잃은 가

운데 떳떳한 개혁과 개방을 하지 못하고 결국 IMF에 의해서 그 요

구를 들어줘야 한다니 너무나 답답한 일이다. 30여 년 간의 경제발

전과 더불어 쌓이고 쌓인 모순과 부실들이 이렇게 한꺼번에 터진 것

이다. 고통분담을 넘어서 고통감수를 해야하고, 이제 나에게 어떠한

상황이 야기될지 그저 하달만 바라고 있어야 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불안감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IMF가 요구하는 사항들을 볼 때 어

쩌면 우리가 이미 예전부터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하겠다고 공언했

던 지극히 당연한 조건들도 있다. 진작에 이루었어야 할 일들을 우

리는 이제서 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것도 강요에 의해서.

지금와서 돌이킬 수 없는 과오였다고 사과하는 발언이나 책임지겠

다는 인사는 아무도 없지만 국민은 다 알고 있을 것이다. 누구누구

가 잘못해서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를. 더욱 심각한 것은 특정한 몇

사람의 잘못을 탓하고 논하기 전에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꺼야 하는

과제가 있다는 현실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IMF구제 금융이 경제 신탁통치나 다름없다고 흥

분할 여유도 없이 자본가의 수난기를 맞이했으며, 경영권의 위기와

근로자의 불행으로 이어지는 잔인한 겨울을 맞고 있다. 특히 임시국

회가 열리면 당장 시행을 할 수 밖에 없는 이른바 정리해고제의 예

고는 직장에 목숨걸었던 근로자에게는 등골이 오싹해지는 한기를 느

끼게 하는 일이다. 왜 하필이면 ‘해고’라는 용어를 써야 하는가.

해고라는 글자는 근로자 자신의 귀책사유에 의한 중징계시 사용하는

용어로써 공포의 단어이고 근로자에게는 절망의 용어이다. 그런데

사회전반 특히 경제계 전반의 구조조정에 의해서 경영권 내지는 소

유권, 고용권 조정의 일환으로 행해지는 일에도 굳이 ‘정리해고’

라는 공포의 용어를 써야만 하는가. 이는 나의 과거 경험에(?)의한

인지상정한 마음에서 비롯된 일단의 심정이다. 아무튼 그용어를 무

엇이라 선택하던 간에 실업자가 늘어나는 사태에 대해서는 철저한

대책과 고민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직장을 잃고 거??헤매는 국민이 많아질수록 국가의 위기가 더욱

커지게 될 것은 뻔한 이치다. 할 수만 있으면 지금 이 시기에 일감

을 나누어 같이 살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여야 한다. 어려움을 함께

나누는 뜻에서 새로운 근무형태로 시간제노동, 단축근무, 플렉스타임

제, 순번휴직제 등 여러 방법이 동원되어야 한다. 또한 지금 이 기간

동안 특별조치에 의해 실직한 사람들에게는 기본적인 생활보장을 위

해 의료보험과 생활협동조합 이용권 등을 보장해 주는 것도 방법이

다. 초·중·고 아이들의 교육비 혜택도 필요하다.

새로운 일터, 일감확보를 위해 중, 장, 단기 교육과 훈련으로 새로

운 직업에 도전할 수 있도록 직종 개발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또한

여기에 여성인력을 최대한 활용하여야 한다. 주부이기 때문에 더 잘

할 수 있는 일이 반드시 있다. 아기를 키우고 살림을 한 경험은 누

구에게도 없는 주부들만의 노하우이다. 여성의 감성이 영업을 혁신

할 수 있다는 얘기는 단순한 구호가 아니다. 여성의 힘을 백번 활용

할 때 국가의 고민이 덜어진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행 고용보험의 혜택을 실직자의 가족에게도 돌아

가게 하여 직업훈련에 드는 비용을 대신 부담해 주는 방법도 좋을

것 같다.

직업개발에는 연령별, 경험별로 또 능력과 환경에 따라서 알맞은

직종을 선택하도록 도와주는 전국적인 조직망도 필요하다. 또 기업

이 어려운 가운데도 실직자를 줄이기 위해 파트타임 노동과 여성노

동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고, 정부는 이 기관을 통해서

기업과 근로자를 보조하는 일을 적극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불란서에서도 실업자를 구제하기 위해 수조원을 투입해서 새로운

직업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동네분쟁, 예방요원, 퇴원환자 재적응

지원요원, 수감자가족 응대요원, 학교폭력 예방요원, 가정분쟁 중재

요원, 대중교통 동반요원, 범죄피해자 접대요원, 임대차계약 보조원,

무의탁노인 동반요원 등 정말 생소한 직업들이 마구 생겨난다. 이는

젊은 실업자들에게 용기와 힘이 되고 있다. 정부가 지방자치단체와

공공단체, 기관 등으로 하여금 정부가 제시한 이러한 직종을 토대로

각자 필요에 따른 채용 계획을 마련하고 청년들을 고용하도록 유도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주부인력을 필요로 하는 업종들로서는 여성자원금

고가 개발한 텔레마케팅 교육을 비롯하여 세무사무원, 관세사무원,

파출탁아인, 간병인, 산업카운셀러, 병원 매니저, 수유요원, 알콜중독

자 요원, 각종 기관의 모니터, 컴퓨터 개인교수, 출장사서 등이 있다.

아직도 개발되어야 할 직종이 많이 있다. 더욱 다양한 직종 개발을

통해 워크쉐어링을 시도해야 할 것이다. 최선은 정리해고를 하지 않

는 방법이지만 만약 정리해고가 불가피하다면 차선책으로라도 이 불

행한 시기를 극복하려는 시도가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모쪼록 새 대통령은 국민들의 소리를 언제나 귀 기울여 듣고, 끊임

없는 대화를 통해 국민이 원하는 사회를 만들어 나갔으면 한다. 이

제는 투명한 정치, 정직한 정치에 길들여지고 싶다. 앞으로 정말 바

르고,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사회, 상식이 통하는 사회에

서 살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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