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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밖에서 보기에 언론인은 상당한 권위를 누리고 있는 듯 보인

다. 그러나 속사정은 다르다. 언론의 덩치가 커지면 커질수록 언론인

들의 위상은 작아지기만 한다. 언론의 핵심인 ‘편집권’이 언론인

의 손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기자들은 15대 대선을 치르면서 ‘힘없는 언론인’의 자화상을 보

았다. 기자협회가 지난해 말 실시한 ‘기자여론조사’에 따르면 기

자들의 74%가 대선보도가 공정하지 못했다고 평가했으며 84%가 편

파보도의 주도세력을 ‘사주와 경영진’으로 꼽았다. 놀랍게도 ‘일

선기자가 편파보도를 주도했다’는 대답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만

큼 ‘15대 대선보도는 기자들의 손을 떠나 이뤄졌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실제로 언론의 보도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세력은 언론사주

와 경영진이다. 기업으로 치자면 기업주가 자신의 기업에서 생산되

는 제품의 성격과 품질에 간여하는 것이 당연하다. 언론‘사’도

‘기업’인 만큼 기업주가 자기 회사에서 나오는 상품인 ‘언론보

도’에 간여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뉴욕타임즈

나 워싱턴포스트의 경우 한국의 ‘족벌신문’들처럼 특정 가문에 의

해 소유되어 있지만 그들의 보도는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는다.

보도의 ‘객관’과 ‘공정’을 위해 그리고 언론수용자의 알권리를

위해 어떤 권력과도 타협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 언론의 이러한

전통은 언론사주의 투철한 언론관이 없었다면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

다.

한국의 언론사주들도 그러할까? 지금까지로 보건대 한국의 언론사

주들은 보도에 언론사의 사활을 걸 만큼 투철한 언론관을 가진 것

같지 않다. 91년 동아일보 김상만 회장이 김중배 편집국장을 쫓아낸

일이나 94년 문화일보가 현대그룹의 입김에 따라 손광식 사장과 백

기범 편집국장을 쫓아낸 일이 대표적인 경우다. 당시 두 편집국장들

은 외부의 간섭을 배제하고 평기자들의 목소리를 지면에 담으려 노

력하던 몇 안되는 언론인이었다. 편집전권을 가진 편집책임자조차

가차없이 목이 달아나는 판에 평기자들의 목이야 더 말할 나위도 없

을 것이다. 원로언론인인 송건호 씨는 “사주의 인사권 전횡을 막지

못하는 한 편집권 독립을 쟁취하고 지키기란 대단히 어렵다”고 말

했다.

일선기자들이 언론개혁의 첫과제로 언론사의 소유 제한을 드는 이

유도 여기에 있다. 언론사가 특정 기업이나 가문에 의해 소유되는

현 상태로는 언론사주의 압력을 피할 길이 없다. 프랑스처럼 언론의

소유지분을 제한하면 특정 세력이나 인물이 보도에 미치는 영향력

역시 자연스레 제한된다.

또하나의 방법은 편집·편성규약을 두어 언론사주와 언론인이 중요

문제를 공동결정하는 창구를 제도화하는 것. 독일언론은 편집책임자

임면, 편집방향 변경, 소유상태의 변화시 편집진을 대표하는 편집위

원회의 동의를 얻도록 규정한 ‘편집협약’을 도입해 ‘언론내 자

유’를 보장해 놓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는 대선때 각 언론사의 편집·편성규약 조항

마련을 법으로 강제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정작 한국언론의

‘체질개선책’인 언론사 소유 제한의 현실화에 대해선 언급하지 못

했다. 대선이라는 민감한 시기에 재벌, 족벌신문의 심경을 건드리게

될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일까? 편집규약 마련이 언론의 자유에 한발

접근하는 큰 성과일지라도 그 진정한 초석은 그러나 언론의 사적 소

유물화 방지에 있음은 물론이다.

이경숙/언론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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