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군학교 존폐논란

“기초교육부터 같이 받으면 보직과 진급에 있어서도 남군과 동등해질 거라고, 우리에게도 비전이 있을 거라고들 하죠. 하지만 현실을 아는 여군들은 통합교육에 회의적입니다. 남성위주의 조직에서 여군학교마저 폐지돼 버리면 과연 얼마나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아마조네스의 여전사를 요구하는 것인지.” (예비역 장교 L씨)

육군에 이어 올해 해·공군에도 여군학사장교 제도가 신설됐고 97년 공군사관학교를 필두로 육군, 해군사관학교가 여성에 개방돼 올해부터 최초의 정규사관학교 출신 여성장교들이 임관된다. 이러한 추세에서 지금까지 여군장교와 부사관의 산실이었던 여군학교를 폐지하고 3사관학교와 부사관학교에 남녀군을 통합시킨다는 육군의 방침은 시대적인 추세이자 군의 문호를 여성에게 한층 더 개방한다는 면에서 긍정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내년 11월 여군학교 해체를 앞두고 여군들 사이에선 “무작정 남군 조직에 여군을 끼워 넣는다고 평등해지는 건 아니다”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특히 3사관학교 내 학사과정의 경우 직업군인이 되기 위해 들어온 우수자원인 여군과 의무군인인 남군을 함께 교육시키는 것은 무리가 크다는 지적이다.

통합교육에 찬성하는 이들은 주로 젊은 여군들로 △장교나 부사관 임관 후 보수교육에 들어가서 어차피 남군 조직에 적응하려면 기초교육부터 남군들과 함께 받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과 △전체 군에서 남녀차등 없이 보직을 관리하고 공정하게 진급심사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점 등을 기대한다.

그러나 대위급 이상 여군들은 “이론과 현실은 다르다”고 반론을 제기한다. “소위 때 7사단에 던져졌는데 남군들은 전혀 신체적인 배려를 하지 않았습니다. 화장실도 몰래 갔다와야 하고 생리대도 바지주머니에 넣어 가지고 다니고…” 대위 P씨는 “숙소를 비롯한 시설과 더불어 문화적으로 여군에 대한 인식이 되어있지 않은 상태에서 통합교육 실시는 너무 큰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강력한 반대입장을 표한다.

<찬 성> 기초교육부터 남군과 받는게 낫다

보직받고 생활하는데 통합이 유리

<반 대> 의무병과 지원병 함께 교육은 무리

여군 자생력 생길때까지 존속시켜야

대위 K씨는 “사관학교 관계자로부터 현재 여생도들이 체력요건이 고려되지 않은 훈련을 감당해내고 남군들의 부정적인 시선을 견디느라 급성 방광염, 난소종양, 생리불순 등 부인병을 앓고 있으며 입대 2∼3년만에 군의 남성중심성에 대해 심한 회의감을 느끼는 이들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전한다. K씨는 “신체적인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남군의 특성에 맞춰 따라가는 것이 평등은 아니지 않은가”라며 “통합교육은 여러 방면에서 남녀군의 특성에 대한 연구나 실험이 먼저 이루어진 이후에 점차적으로 시도해야 할 문제”라고 주장한다.

한편 보직관리와 진급에 대해서도 대위 L씨는 “남녀군이 공평하게 이루어지리라는 보장이 결코 없다”고 말한다. “어떤 지휘관이 여군에게 힘을 실어주겠습니까? 그랬다가는 오히려 뒷말만 무성할 텐데.” 예비역 K씨도 “진급 자리 하나는 인생이 걸린 겁니다. 대위들만 해도 소령진급을 위해 목숨걸고 로비를 하죠. 여군들은 이길 수 없는 싸움입니다”라고 지적한다.

남녀군 통합교육 방안에 대해 연구해 온 독고순 국방연구원은 “선진국의 사례를 보아도 대세는 통합 쪽”이라며 “지금은 여군학교를 어떤 식으로 전환하느냐의 문제가 더 중요한 것 같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9월 6일 여군창설기념 심포지엄에서 독고 박사는 여군학교 대신 여군연구기능과 교육기능 등을 갖춘 센터를 국방부 내에 두는 방식을 제안할 예정이다.

그러나 여군훈육사나 여군학교장을 지낸 현역·예비역들은 “통합교육을 제대로 실시하려면 예산이 훨씬 확충되어야 하는데 현재 군은 여군학교 폐쇄를 예산절감의 기회로 생각하고 있다”며 “여군정책에 실질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관이 새로 만들어진다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L대위는 “어려운 일을 겪었을 때 버팀목이 되어준 것은 여군학교를 통한 결속력입니다. 적어도 여군이 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 정도는 되어야 자생력을 갖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한다. 예비역 K씨는 “젊은 남자장교들 마저 ‘남군은 투자, 여군은 낭비’라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면서 “군이 여성을 편견 없이 받아들일 준비가 될 때까지 여군학교 폐지는 유보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조이 여울 기자 cognate@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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