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위안부 관련 보고서를 쓰기 위해 나는 지난 달 15일과 22일 수요시위에 참가했다.

우리는 일본이 어떤 만행을 저질렀는지를 대강은 알고 있다. 그러나 잘은 모른다. 이유는 우리 나라조차 역사교육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할머님들과 역사왜곡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투쟁, 그리고 고이즈미의 신사참배를 저지하는 사람들. 일본이 역사를 왜곡하기 때문에 그 왜곡된 역사 아래에서는 할머님들의 존재 자체가 없고 그렇게 되면 그 분들은 고통에 대한 아무 보상과 사죄도 받지 못한 채 세상을 뜨게 되는 것이고… 이처럼 어이없고 말도 안 되는 일이 또 있을까?

그런 일들이 바로 우리의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다. 왜 학교는 우리에게 참여하라고 가르치지 않을까? 왜 세상은 우리에게 그것이 옳다고 확실하게 말하지 않을까?

세상은 시간이 지나면 정의를 잃어버린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를. 우리는 지나간 역사를 그냥 묻어 둘 수는 없다. 물론 잘못을 이해해 줄 수는 있다. 그러나 정확한 조사와 진상규명 그리고 사죄 없이는 불가하다.

탑골공원에서 열렸던 광복절 기념 수요시위는 2부에다가 가두시위까지 합쳐 오랜 시간 열렸다. “역사왜곡 중지하라/고이즈미 물러나라/역사왜곡 중지하라/…” 사람들은 빗속에서도 많이 모였고 비 때문에 자리에 앉을 수 없어 너무나 불편했지만 자신의 목소리 하나가 큰 힘이 될 거란 사실을 믿기에 모두 열심히 참여했다.

카메라 속에 담아두었다. 또 마음속에도 담아두었다. 단지 점수를 위한 과제가 아닌 내 인생의 무엇을 위한 과제로서.

22일 수요일의 대사관 앞 시위는 또 이랬다. 전경들이 일본대사관 앞에 못 가게 막는 거다. 사실 전경이란 거 TV로 보면 별거 아니지만 실제는 조금 무서웠다. 난 말도 안 되는 처사를 따졌다. 순간 서있던 전경 삼십여명의 눈길이 모두 쏠리는데. 엑. 내가 무슨 용기가 났던지.

“왜 일반인들은 통제하지 않고 학생들만 통제합니까?”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평화적인 시위에서 만약의 사태란 건 일어날 수 없습니다. 당신들이 폭력을 쓰지 않는 한.” “그래도 안됩니다. 만약의 사태에서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처입니다.”

기가 막히더군. 모든 출구와 입구를 봉쇄하다니… 사실 그 사람들 입장에서도 논리적으로 우릴 막을 만한 이유가 없는 거였다. 결국 길을 돌아서 들어가려고 했는데 한 명씩 한 명씩 들어가는데 또 막힌 거라. 또 조계사 뒤쪽으로 해서 돌아갔는데 시위에 합류해서도 앞뒤로 전경이 막고 서니까. ‘저 XX들이 혹시 폭력이라도 쓰면 어떡하지?’하는 생각이 드는 거였다.

“정말 우리 나라 전경들은 할 일이 없나봅니다. 일찍부터 와서 여기서 진을 치고 있군요. 정당한 시위 막는 전경들은 물러가라. 일본 정부 각성하라.” 수요시위 진행자가 외친 구호였다. 할머니들은 오열하고 그들은 “막아 막아” 이러면서 일본이 역사를 왜곡하고 그러한 것들보다 더욱 무섭게 막아섰다.

전경들과 몸싸움이 있을 수도 있었지만 평화적인 시위를 지향하므로 그것은 피했고 결국 자진해산을 해야만 했다. 전경들이, 얼굴을 가린 그들이 우리를 막고 섰다. 그들은 분명 대한민국의, 같은 땅에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분명 우리를 막아섰다. 정부는 그것을 묵인했다. 그들은 분명 침묵했다. 정부가 하지 말라고 하면 그들은 우리를 막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런 강제적 수단을 사용할수록 우리의 정신적인 유대는 더욱 강해진다. 사람들은 쉽게 저항을 포기하지 않거나 쉽게 잊지 않을 것이다. 무엇이 옳은 것인가를 밝히기 전까지는.

교실에서 우리는 무조건 외우는, 죽어 있는 역사를 배운다. 그러나 나는 그 날. 학교에서 백점을 받을 수는 없지만, 아무리 암기를 해도 배울 수 없는 살아있는 역사를 배웠다.

장강 혜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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