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 여기 냉면 육수에 고기 안 넣는 것 확실하죠?” “다시마, 무, 양파 이런 야채만 넣는다니까.” “다시다 같은 조미료도 안넣으시나요?” “그것도 안 치면 맛이 안나.” “그래도 좋으니 조미료는 넣지 말아주세요.” “김치에 젓갈 들어갔나요?” “그럼 젓갈 안넣고 어떻게 김치를 담궈. 젊은이들 너무 까다롭구만.”

지난 19일 위생병원 근처 한 채식식당에 모인 채식동호회 ‘지구사랑 베가’ 회원들의 저녁식사 풍경이다. 9월 22일 마련할 ‘열혈·채식·광란쇼’에 대해 상의하고자 모인 이들은 이런 실랑이는 “끼니때마다 겪는 일”이라면서 아무렇지도 않아 한다.

채식을 하던 초기 ‘까다롭다’‘꼴값하네’‘배부른 소리’ 등 주위로부터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아야 했던 이들은 채식 후 몸과 마음이 맑아졌을 뿐 아니라 지구환경을 살리고 더불어 사는 삶을 실천한다는 뿌듯함에 왕따가 되는 고통쯤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고 전한다.

~3.jpg

◀ 최근 채식인이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젊은층을 중심으로 지구환경을 살리고 다른 생명과 함께 살아가기 위한 사회성 강한 채식을 택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 서울 강남구 포이동에 위치한 채식뷔페SM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있는 채식인들.

사진·민원기 기자 minwk@womennews.co.kr

“동물성 안먹어도 건강 이상없다”

채식에 대해 일반적인 우려는 ‘영양상 불균형하다’는 것. 채식만으로는 단백질과 V12 섭취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배태성 교수는 “사람은 성장속도가 매우 느려 세포의 수를 늘리는데 필요한 단백질의 소요량이 성장속도가 빠른 동물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다”면서 “식량농업기구(FAO)와 세계보건기구(WHO)의 1일 단백질 섭취 요구량은 0.54∼0.99g/kg으로, 체중 60kg인 성인을 기준으로 할 때 32.4∼59.4g에 달하는데 이 정도 양은 곡물과 야채류를 통해 충분히 섭취할 수 있는 것으로 굳이 동물성 식품을 먹지 않는다 하더라도 단백질의 부족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송숙자 박사(전 삼육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도 “식물성 단백질이 동물성 단백질에 비해 질이 낮다는 고정관념이 있지만, 오히려 많은 연구결과는 동물성 단백질이 고혈압, 심장병, 암 등 성인병을 유발하고 면역기능을 떨어뜨린다고 보고하고 있다”면서 “V12 역시 육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시금치, 콩, 보리, 해초류에 함유돼 있음이 여러 경로를 통해 입증됐다”면서 채식에 대한 기우를 일축했다.

채식인들은 흰쌀밥에 김치를 먹는 것을 채식이라 하지 않는다. 두 가지 이상의 곡물을 섞어 먹고, 세 가지 이상의 신선한 야채와 해조류, 과일을 골고루 먹을 것을 권한다. 균형잡힌 채식을 꾸준히 하면 초기에는 2㎏ 정도 체중이 좀 빠지지만 시일이 지나면 체중에 변동이 없고, 지구력, 피로저항력, 집중력이 강해진다고 채식인들은 입을 모은다.

그러나 채식인들이 건강을 위해 채식을 하는 것은 아니다. 푸른생명채식연합 서울지부의 이광조씨는 “최근 채식을 시작한 인구의 대부분이 20대 초에서 30대 초반인데, 지구환경과 동물권, 명상 등의 이유로 채식을 시작하는 사람이 많다”며 “이런 문제에 관심이 없었더라도 채식을 시작한 후 2개월 정도만 지나면 생명의 존엄에 대한 인식이 내면에서 우러나와 실수로 지나가던 가로수를 발로 차더라도 미안하다고 쓰다듬게 된다”고 전한다. 이씨는 “동물의 생명착취가 잘못된 남녀차별로 이어진다”면서 “채식을 하게 되면 모든 존재가 행복해지고 이 사회는 생명중심의 사회로 이행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채식한 지 4개월 된 박이경주씨는 “이제껏 잘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채식에 대해 알게 된 후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다른 생명에게 올바르지 못한 일을 저질러왔다는 걸 깨달았다”고 채식을 택한 이유를 밝혔다.

‘비빔밥 인생’ ‘식물인간’ 그래도 행복해

채식 경력 1년6개월의 박하재홍씨는 “군대에서 대민지원으로 700마리의 돼지가 죽어있는 축사를 치우는데 병으로 죽은 줄 알았던 돼지들이 수지가 맞지 않아 굶어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 더이상 고기가 먹고 싶지 않아졌다”고 말한다. 이후 ‘식물인간’으로 불리며 밖에서 밥 먹을 땐 고기와 계란 뺀 비빔밥만 먹어 ‘비빔밥 인생’이 된 박하재홍씨는 그래도 마음이 가볍고 “행복하다”고 전한다.

그는 또 “채식을 하면서 자연히 소식을 하게 됐는데 욕심이 없어지고 화를 내거나 감정이 극으로 치닫는 적이 없다”면서 “자신을 컨트롤할 수 있을만큼 내적인 정화가 이루어진 것 아니겠냐”며 흐뭇해한다.

8년째 채식을 하고 있다는 전상준씨는 처음 채식을 시작할 땐 정보가 거의 없어 뭘 먹어야 할지 몰랐다고. “밥을 해본 적이 없어서 처음 전기밥솥에 밥을 하는데, 물을 너무 적게 부어 설익은 밥이 된 거예요. 다시 물을 넣고 밥을 하니까 밥알이 전기밥솥을 뚫고 나오더라구요. 그 밥을 간장과 함께 맛있게 먹던 기억을 하면 웃음이 절로 나오죠.”

요리를 전혀 할 줄 몰랐던 그는 현재 웬만한 요리는 직접 해먹고 있다. 전씨는 “예전처럼 여자는 이래야 해 남자는 저래야 해 하는 획일적인 사고의 틀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었던 것도 채식의 덕”이라며 “내가 만나는 채식인 중에는 누구를 억압하거나 지배하려는 사람은 거의 없고 서로를 배려하는 것도 좋다”고 덧붙인다.

한편 요즘 채식동호인들은 9월 23일 세계채식인의 날 행사 준비를 위해 활발히 연대하고 있다. 원래 10월 1일이지만 올해는 추석이 겹쳐 한 주 앞당기기로 했다. 이들은 오전 12시∼오후 4시까지 서울역광장에서 채식관련 자료 배포와 채식 강연회, 무료시식회를 벌이는 한편 학교급식과 공공기관의 급식에 채식메뉴 선택권을 달라는 내용의 서명운동을 시작할 계획이다. 이번 채식의날 행사에는 환경단체와 동물보호단체도 함께 할 예정이어서 채식바람은 더욱 확산될 전망이다.

최이 부자 기자 bjchoi@womennews.co.kr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