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립형사립고 도입 논란

강남구 대치동에 사는 이아무개(43) 주부는 요즘 새로운 걱정거리가 생겼다. 정부가 2003년부터 시범적으로 실시하기로 발표한 자립형사립고에 작은아이를 보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기 때문이다. 이씨는 “벌써부터 학원에 자립형사립고 대비반이 생겨나고, 엄마들도 만나기만 하면 자립형사립고 얘기밖에 안한다”면서 “중학교 2학년인 둘째 아이가 부쩍 관심을 보이지만 행여나 외국어고등학교에 다니다 자퇴한 큰애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고민된다”고 토로한다.

전교조 관계자는 “자립형사립고는 1995년 5.31 교육개혁안에 포함되었다가 실제 실시를 검토하던 중 많은 문제점이 발견돼 유보된 것”이라면서 “작년 5월 교육부 주최 공청회 이후 공식적인 의견수렴 과정도 거치지 않고, 법적 근거도 없이 시행을 서두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교육부가 이르면 내년부터 자립형사립고를 시범 운영하겠다고 방침을 발표한 이후 학부모들의 우려와 교육시민단체의 반발이 계속되고 있다.

교육부는 건학이념이 분명하고 재정이 건실한 사립고교 가운데 전국적으로 30개교 이내의 학교를 선발해 자립형사립고를 시범운영할 방침이며, 등록금은 일반고교의 3배 이상을 넘지 않으며, 학생 15% 이상 장학금 지급 의무화, 국·영·수 위주의 지필고사는 불허한다고 밝혔다.

교육부는 이달 중 자립형사립고 시범학교 선정심사위원회를 꾸리고 시·도교육청의 심사·추천을 받아 10월 20일까지 시범학교를 지정·통보한다는 계획이다.

이러한 절차상의 문제 외에도 학부모와 교육시민단체는 자립형사립고가 과학고나 특수목적고처럼 입시학교로 전락할 우려가 크며, 교육 불평등을 심화시켜 계층간 갈등과 위화감을 증폭시킬 것으로 걱정하고 있다. 더욱이 서울, 전남, 충북 등 시도교육감 등은 자립형사립고 추천을 거부하고 있어 시행에 큰 차질을 빚을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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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8일 전교조와 참교육학부모연대 등 교육시민단체가 자립형사립고 도입 철회를 요구하며 교육부를 항의방문했다. <사진·한겨례>

▲입시학교·귀족학교 전락 우려

최근 한 공중파 방송의 TV 토론프로그램 진행 중 전화인터뷰에 응한 일선 학교장들은 “자립형사립고로 선정되면 입시명문으로 키울 수밖에 없다”며 “학부모들도 비싼 등록금을 낼 때에는 일류대에 보내고자 하기 때문 아니겠느냐”고 털어놓았다.

참교육학부모회 박경양 부회장은 “자립형사립고는 자유로운 학생선발을 보장하고 있는데 이들 학교가 목적하는 학생을 선발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일류대학에 많은 학생을 입학시키는 것으로 우위를 점할 수밖에 없다”면서 “이는 부유한 사람들을 위한 고액입시학원을 공식적으로 인정해주는 것과 다름없으며 결국 학교간의 입시경쟁을 가속화시킬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와 관련하여 교육부는 학생 15% 이상에게 장학금 지급을 의무화했지만, 교육시민단체는 “할당을 통해 입학한 아이들이 학교에서 겪게 될 문화적 소외는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하고 반박한다.

중학교 1학년 자녀를 둔 은평구의 한아무개(42) 학부모는 “결국 서울대를 많이 보내는 과거의 입시명문학교를 부활시키자는 얘긴데, 그렇게 되면 대학 뿐 아니라 고등학교마저 서열화되는 것 아니냐”며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사교육비 가중, 교육불평등 심화

지난 4월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발표한 ‘교육의 형평성과 과외에 관한 실증분석’을 살펴보면 2000학년도 서울시내 구별 일반계 고교 졸업생의 서울대 진학률은 강남구가 100명 중 2.7명으로 가장 높았다. 이 발표에 따르면 진학률의 격차는 주민의 교육수준·소득수준보다 과외비 지출과 상관관계가 가장 밀접한 것으로 나타났다. 집계 결과 서울대 진학률이 최고인 강남구는 초·중·고교생 1인당 월평균 42만원의 과외비를 지출했고, 진학률이 낮은 구는 15만원대였다.

전교조와 참교육학부모회는 잇딴 성명을 통해 “자립형사립고의 도입은 중학생에게조차 과중한 입시부담을 지워 고등학교 입시를 위한 중학생 과외가 성행할 우려가 있다”면서 “결국 부모의 경제력에 의해 교육의 질이 달라질 것이며 현재도 심각한 교육 불평등을 더욱 고착화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이 부자 기자 bjchoi@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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