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자사이트 폐쇄에 대하여

2001년 여름. 한국의 동성애자들은 특별히 뜨거운 여름을 나고 있다. 모든 것을 녹여버릴 듯한 더위에,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이하 정통윤)의 동성애 사이트 폐쇄에 숨이 턱턱 막힐 정도다.

인터넷이란 공간은 자유롭다. 특히 동성애자들에게 익명성이 보장되는 인터넷 공간은 자유 그 이상이다. 그곳엔 동성애자들이 맘껏 얘기를 하고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며 마음이 통하는 친구를 찾을 수도 있다. 그런데 갑자기 자유의 공간에 균열이 일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없었던 실질적인 공격이 가해지고 있는 것이다.

처음에 그것은 알 수 없는 소문들을 통해서 나타났다. 동성애자 까페에 가입했던 고등학생들이 IP추적을 당해서 학교에 알려지고 퇴학 위기에 처해 있다는 등의 진위를 가리기는 힘든, 그러나 그냥 넘겨버릴 수만은 없는 그런 소문이 돌았다.

2001년 7월 1일로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이하 통신질서확립법)’과 ‘정보통신기반보호법’이 시행되었다. 이로써 동성애자들이 그나마 누렸던 인터넷상의 자유는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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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당할 순 없다” 지난 10일 서초동 정보통신윤리위원회 앞에서는 동성애 사이트에 대한 탄압 및 폐쇄에 항의하는 ‘동성애자차별반대공동행동’ 주최의 항의집회가 열렸다. ‘동성애자 사이트 폐쇄 반대, 정보통신윤리위 해체’등의 요구를 내걸고 벌인 이날 집회에서는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해체되어야 한다는 뜻에서 국화꽃을 던지는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사진·민원기 기자 minwk@womennews.co.kr

정통윤은 청소년을 음란매체, 유해매체로부터 보호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무엇이 음란한가? 동성애가 유해한가? 음란함을 정통윤이 심의하게 놔둬야 할만큼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는 무능한가? 자신의 성정체성을 고민하는 청소년은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 동성애는 비정상적이라고 하니 그런 매체로부터 격리시켜 정상적인 이성애자로 자라도록 할 것인가?

동성애자들이 설 곳은 이제 없다. 다음이나 세이클럽에서는 음란하단 신고가 들어왔다는 이유로 동성애 까페들을 경고 또는 일방적 폐쇄 조치했다. 그리고 모든 까페 운영자들에게 실명과 주민등록번호를 요구하고 있다.

동성애자 커뮤니티 내부에서는 이런 일련의 과정들을 보면서 두가지 상반된 반응이 나왔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검열과 자기들의 공간이 폐쇄당해 사라지는 것에 대한 분노, 그리고 분노 저변에 깔려있는 것은 IP추적을 당하지 않을까, 신분이 노출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다. 많은 동성애자들은 두려움으로 까페를 탈퇴하고 있고 자기검열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스스로 폐쇄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그만큼 분노도 크다. 벽장 안에서만 안주하던 동성애자들은 자신들을 드러내면서까지 행동을 개시했다.

‘동성애자 차별반대 공동행동’은 그 결과물이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고 했다. 가만히 앉아서 당할 수만은 없었다. 우리는 음란이란 꼬리표를 달고 우리의 공간이 사리지는 것을 묵과할 수 없었다.

2001년 8월 10일 정오의 정보통신윤리위원회 앞은 진풍경이었다. 동성애자 40여명을 포함해 60명 정도의 인원이 모여 정통윤 장례를 치뤘다. 정보통신윤리위원회 이름이 적인 돌 앞에 검은 띠를 두르고 촛불을 켰다. 모든 집회 참가자들은 이 땅에서 인터넷 검열이 없어지길 바라면서 분향하고 국화를 올렸다. 앰프에서는 퀸의 'We are the champion'이 흘러나왔다. 감격스러운 장면이었다. 40명 가까이 모인 동성애자들은 분명 챔피언이었다.

어제는 비가 내렸다. 입추도 지나고 이제 이 비가 그치고 나면 정말 가을이 올 것이다. 그렇게나 뜨거웠던 여름도 이제 한풀 꺾여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여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청소년보호법은 동성애를 사회통념상 허용되지 아니한 성관계를 조장하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고 정통윤은 이런 청보법 조항을 갖고 동성애 사이트를 청소년 유해매체물로 심의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가을이 올 거라고. 막판 기승을 부리는 늦여름 땡볕에 더 이상 우리가 기어 들어가지 않고 열심히 싸운다면 단비를 뿌리며 가을은 올 것이다.

고승우/동성애자인권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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