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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하성란(32)씨의 첫 창작집

〈루빈의 술잔〉이 출간됐다. 등단 이후 깔끔한 문체, 탄탄한 구성력

으로 문단의 주목을 받아온 하씨의 신작에서는 현대의 젊은이들이

몸담고 있는 까칠한 일상의 절실함에서부터 미세한 삶의 영역까지

세밀하고 정교하게 그려져 있다.

그는 현대 도시 속에서의 삶을 소통이 불가능한 지루한 풍경으로

인식한다.

그 풍경에는 인간 관계는 단절되고, 유예된 시간을 겨우겨우 살아가

는 파편화된 익명의 군상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구체적인 이름없이

‘여자’나 ‘남자’또는 ‘기역’이나 ‘K’와 같은 방식으로 존

재한다. 이러한 익명성을 통해 작가는 현대인의 정체성에 대한 문제

를 집요하게 탐문한다. 나른한 권태에 빠져있는 개인에게 가해지는

존재의 익명성은 일상의 소소한 순간에 포착된 단절적 인간관계를

잘 보여준다. 이것은 가까운 인물의 느닷없는 사라짐으로 표현되는

‘실종’모티브에서 더욱 확연해진다.

표제작인 〈루빈의 술잔〉에서는 P백화점이 붕괴한 갑작스런 사고

로 죽음 조차 확인되지 않는 남편이 등장하고, 〈내가 사랑한 것은

그녀의 등허리였을까〉에는 어느날 갑자기 가짜 악어 핸드백과 다듬

다 만 고추만 남겨놓은 채 사라진 K가 있으며, 이복자매의 이야기

를 다룬 〈두개의 다우징〉에는 십오년 전에 행방불명된 아버지가

등장한다. 이 실종 모티브는 탈각당한 개인성의 흔적을 복원하기 위

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현대인의 지난한 여정을 암시하는 것

이며, 균열된 일상 속에서 소멸되기 직전의 운명에 처해 있는 실존

의 적나라한 초상을 냉정하게 포착한 것이기도 하다.

“실종이란 삶의 또다른 측면 혹은 인간의 전혀 다른 모습을 새롭게

발견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인간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통해서 삶의 돌파구를 찾을 수도 있다

는 가능성 때문이지요.”

이같은 작가의 생각은 〈루빈의 술잔〉에서 ‘여자’가 남편의 실종

이후 폐쇄된 삶을 살다가 자신과 주민등록번호가 같은 여자의 집을

찾아가 그처럼 살면서 삶의 새로운 가능성을 되찾는 데서 잘 드러난

다. 그의 작품이 절제된듯, 혹은 단절된 듯 하면서도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이런 이미지는 ‘마이크로식 묘사체’로 일컬어지는 그의 문체에

기대고 있는 부분이 많다.

“대상을 자세히 바라보고 나누어보고 내면까지 알려고 노력하는 과

정이 사랑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물론 아무리 자세히 보더

라도 표면밖에 볼 수 없는 경우도 많지만 그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

까 하는 끊임없는 고민은 대상에 이입되고 같은 감정을 느끼게도 합

니다. 기본적으로 생을 긍정하기에 척박한 일상이나마 응시하고 조

응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는 이후로도 인간에 대한 탐색작업을 계속할 계획이다. 그 작업이

지난하기에 장편소설은 잠시 보류하고 있다.

이제 세살박이인 아들을 낳은 뒤 그러한 생의 긍정이 가능했다는

그는 젊은 여성작가라는 이유로 반짝 주목받는 것이 아니라 작품으

로 독자들과 정신적 교류를 나누고 싶다는 바램을 전했다.

서울예전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한 하성란씨는 작가 조경란씨와 함께

서울예전 ‘양란’으로 불리며 기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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