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나는 지금 무얼 하고 있는가’

쫓기듯 돌아가는 일상 가운데 문득 고개를 쳐드는 이 내면으로부터의 질문은 사람을 당혹스럽게 한다. 만약 이런 자문에 다리에 힘이 빠지고 영혼의 허기가 느껴진다면 ‘떠날 때가 됐다’는 증거다. 바닷가도 산도 아닌 바로 나 자신에게로.

서울 도심의 길상사. 70여명 남짓한 사람들이 좌선하는 자세로 마주 앉아있다. 나무에서는 매미소리가 들려오고 순간 순간 불어오는 바람이 삽상하다. 졸음오기 딱 좋은 한낮.

절로 꾸벅 떨어지는 고개에 여지없이 죽비가 어깨를 내리친다. 척∼.

‘묵언’이 원칙인 수행에서는 힘이 들어도 절대 말을 해서는 안된다. 대화해야 할 대상이 있다면 그건 자신 뿐이다. 눈을 감고 호흡의 계단을 통해 내 안으로 내려간다. 나 자신이 아닌 다른 곳으로만 관심을 두는 동안 나의 영혼은 공허함에 떨고 있었음을 느낀다.

스스로 낮추는 연습하니 머리가 맑아져

“앉아있는 게 그렇게 힘든 건 줄 몰랐어요”라며 좌선의 고통을 얘기하던 안민정(전주 ㅅ여고 교사)씨. “여행 다니는 걸 좋아해요. 그런데 항상 여행을 다녀오면 뭔가 부족한 걸 느껴요. 그래서 이번 여름엔 뭔가 뜻깊은 일을 해보자 생각하고 왔어요.” 안씨는 “조용한 곳에 와서 묵언하면서 수행을 하고 나니까 내 자신이 살아있는 느낌이 들어요”라며 이번 여름은 아무리 무더워도 잘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힘있게 말한다.

눈 앞에서 조카를 잃고 삶과 죽음의 의미에 대해 깊이 고민해온 김정란 씨는 싱가포르에서 이곳까지 왔다. 그는 “마음을 다스리지 못했었는데 나흘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보람있었어요”라며 울먹인다.

전국 수행·종교 단체 명상프로그램 마련

“나는 누구인가” 화두 안고 자아와 대화

정미경 씨(ㅇ대 부속병원 간호과장)는 정말 좋은 휴가였다고 한다. “20여년간 직장에서 일을 하다보니 마음의 균형을 잃었죠”라는 그는 “욕심과 이기심을 버리고 나를 낮추는 연습을 하고 나니 머리가 맑아졌어요”라고 한다.

정씨는 휴가를 다녀오면 오히려 텅비어 버린 공허함에 안타까웠는데 이번 수행으로 재창조의 에너지가 충만해진 데에 대해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괜한 분노감과 미움같은 감정이 부질없어 보이고 머리속을 지배하던 막연한 개념들이 명확해졌어요”라는 정씨는 중심을 잡은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에 대해 행복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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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휴가철을 맞아 전국의 수행단체나 사찰, 천주교와 기독교 수련원 등에서는 이러한 수행 프로그램을 마련해 놓고 있는 곳이 많다. 이 프로그램들은 대개 종교적인 관점을 떠나 ‘내면여행’을 할 수 있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고 해마다 여름이나 겨울 휴가철에 마련되어 지친 이들을 수행으로 이끈다.

길상사 주지 덕조 스님은 내가 누구인지 무얼하고 있는지 알고 일을 하는 것과 도대체 내 자신이 누구인지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채 살아가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이런 수행으로 삶이 확 달라지지는 않지만 이후의 생활을 조금씩 변화시킬 수 있는 씨앗을 발견할 수는 있는 것.

짧은 시간동안 치열하게 수련하는 곳

덕조 스님은 “발 담그고 한가로이 책 볼 요량으로 찾을 곳이 아닙니다.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기 위해서 짧은 시간 동안 치열하게 몸과 마음을 수련하는 곳이죠”라며 개중에 “잠자리가 불편하다” “너무 덥다”는 등의 핑계를 대고 떠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은 이미 수련을 할 자세는 아니었다고 한다.

<힐링 소사이어티>의 방은진 편집장은 “자아발견 수련을 떠날 때 가장 중요한 건 짧은 기간이나마 그 프로그램에 나를 온전히 맡기겠다는 자세입니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열어놓고 프로그램 지도자를 신뢰해야 수행을 통해 뭔가를 얻어갈 수 있습니다”라고 조언한다.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은 그저 낭만적이고 고즈넉한 것도 아니고 거창한 무엇도 아니다. 몇십년 동안 방황했던 자아가 단 며칠만에 중심을 잡고 바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욕심. 몇십년에 걸쳐 단단하게 다져온 것이 몸에 붙어있는 습관이고 관념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것들을 떼어내는 데에도 그만큼의 시간과 노력이 들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기본자세. 다만 일상으로 돌아와서도 내면의 자아를 의식할 수 있는 힘을 줄 뿐이다.

수행은 바로 수행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지금부터 시작일 뿐이라는 마음 자세를 갖고 시작해 볼 일이다.

지은주 기자 ippen@womennews.co.kr

수행 프로그램 운영하는 곳

길상사 (02)741-4697 송광사 (02)755-0107~9

해인사 (055)931-1003 쌍계사 (055)883-1901

보림사 (02)914-6187 사찰수련 안내전화 (02)7300-108

천도교 중앙총부 (02)732-3956 정통회 깨달음의 장 (054)571-6031

보리수 선원 (02)928-2844 성장 상담연구소 (02)540-6520

장수 명상의집 (063)351-5125 예수살이 공동체 (02)3144-2144

야마기시 마을 (031)353-3920 오상 영성원 (033)673-0035

원불교 영산성지(061)352-6344 봉도 수련원 (02)993-0029

삼동원 (041)733-9216 명상의 집 (02)990-1004

애니어그램 연구소(02)501-2912 의식개발 연구소 (02)572-1673~4

밝은길 아봐타센터(02)396-2736 느끼기 아봐타센터 (02)547-2078

마음 수련원 (055)931-3439 오쇼 니케타나 명상센터(02)362-5444

단학선원 (02)3218-7515 실바 마인드컨트롤 (02)747-7033

푸른누리 (054)536-9820 갑사선방 (041)857-8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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