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운동의 본질은 여성을 사람으로

인정하고 존중하라는 상식적인 요구다…

여성에 대한 폭력은 차별의 뒷면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340여개 여성‧노동‧시민단체들과 미투 운동을 지지하는 160여명의 사람들이 참여한 ‘#미투 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이 15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에서 출범식을 열어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340여개 여성‧노동‧시민단체들과 미투 운동을 지지하는 160여명의 사람들이 참여한 ‘#미투 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이 15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에서 출범식을 열어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1993년 유엔 총회에서 채택된 ‘여성에 대한 폭력 철폐 선언’은 여성에 대한 폭력을 ‘남성과 여성 사이에 존재해 온 불평등한 권력관계의 표지’이며 ‘여성에게 예속적 지위를 강요하는 주요한 사회적 기제 가운데 하나’라 규정했다. 성차별이 폭력을 부르는 것은 성별 자체가 권력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특히 더 그렇다. 어느 곳이든 권력을 가진 이는 남성이다. 하위직에 있던 그 많은 여성 동료들은 다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성별 권력관계가 형성되는 노동현장의 ‘일부’ 단면을 들여다보자.

여성 취업준비생들만 면접 자리에서 유독 자주 듣는 질문이 있다. 이른바 ‘결·남·출’(결혼·남자친구·출산) 면접관들은 여성 지원자에게 ‘결혼 여부 혹은 계획, 남자친구 유무, 출산 계획’을 묻는다. 지원자의 업무수행능력을 판단하는 면접 자리에서 행해지는 인격모독 수준의 무례한 질문들. “앞으로 3년간 아이 안 낳겠다고 자신할 수 있느냐”, “입사하면 남자친구랑 동거하는 거 아니냐?”, “아직도 남자친구가 없다면 뭔가 문제 있는 것 아니냐”. 여성에게만 던지는 이러한 질문 자체가 남녀고용평등법 위반이지만 아무도 개의치 않는다. 남자친구가 있거나, 결혼하거나, 출산계획이 있다고 하면 탈락한다. 결혼도 출산도 전혀 생각이 없다고 하면 난생처음 본 ‘아버지 같은 마음’의 면접관으로부터 가족과 출산의 중요성에 대해 일장연설을 듣고 탈락한다.

이렇게 진입부터 차단당하고 눈높이를 낮추고 낮춰 겨우 입사하면 주요 업무는 남성에게만 주어진다. 여성은 보조업무만 떠맡고, 이 경험은 여성이 승진에서 배제될 합리적 이유가 된다. 또 이미 회사 내 권력을 가진 남성들은 자신들이 형성한 라인에 여성을 배제하고 남성들로 채워간다. 공적인 자리에서 결정되지 않고 사적인 자리에서 기형적으로 내려지는 주요 결정과 접대 계약들. 여성은 다시 배제된다. 그 결과 여성은 하위직에만 머물고 권력을 가진 고위직으로의 진입이 가능하지 않은 구조는 재생산된다. 이러한 구조는 결국 우리 사회를 5급수에 머물게 한다.

이는 여성을 함께 일하는 동료로 인정하지 않는 사고에서 기인한다. 장식품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외모를 통제하고 지적한다. 동료가 아닌 성적 대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함께 일할 생각은 없고 쳐다보고 점수 매기고 만지고 싶어 한다. 여성이 권력위계의 하층에 있기 때문에 성희롱과 성폭력은 더욱 쉬워진다. ‘그래도 괜찮다, 피해자 잘못이다’라고 말해온 문화는 이를 용인하고 은폐해 왔다. 권력형 성희롱·성폭력은 알기 쉽게 설명한 말일 뿐, 성희롱과 성폭력이란 말 안에는 이미 권력 위계와 악용이 포함돼 있다. 자기주장이 있는 남성들은 ‘당당하다’고, 여성에겐 ‘드세다’고 말한다. 여성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늘 두 배, 세 배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당연하게 말해 왔다. 여성이 일을 잘 해내면 칭찬 대신 ‘여자가 독하네’라는 말이 돌아온다. 일상생활 전반에서는 ‘조신하게’를 요구해 왔다. 이것이야말로 여성들을 일상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구조적 음모였다.

최근 한국여성노동자회에서 운영하는 여성노동자를 위한 무료상담기관인 ‘평등의 전화’는 이전보다 더 울리고 있지만, ‘펜스룰’(남성들이 구설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여성을 사회적 관계에서 배제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신조어)이라는 기괴한 퇴행이 동시에 감지된다. 이는 여성을 사람으로 생각해 본 일 없는 이들의 사고다. ‘미투’(#Metoo) 운동의 본질은 여성을 사람으로 인정하고 존중하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요구다. 권력을 이용해 타인을 괴롭히지 말라는 상식선의 주장이다. 남자답게, 여자답게 강요할 게 아니라 사람답게가 통용되는 성평등한 사회를 요구하는 것이다. 여성에 대한 폭력은 차별의 뒷면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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