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에서 22년 동안 일하고 임원이 된 필자가 직장생활을 잘하기 위해 고민하는 여성 직장인들에게 선배로서 직접 현장에서 보고 듣고 경험한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이 글은 재능기부로 <편집자주>

 

[나도 승진하고 싶어요] ①

 

저는 1995년 1월 초에 S그룹 소비자문화원에 첫 출근을 했습니다. 첫날 여러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었고, OJT (On-the Job-Training) 이라는 세션을 가졌습니다. 당시 같이 입사했던 남자 박사 수료자와 함께 OJT를 받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OJT는 크게 세 가지였는데요, 1) 회사생활 규칙: 출근시간, 품의 및 비용 처리 방법, 기타 등등의 필수적인 것들이지요 2) 타부서의 업무 소개: 개괄적으로 다른 연관 부서가 하는 일들을 소개받았습니다 3) 제가 일할 “고객만족실”의 업무 소개: 선임과장이 업무소개도 했지만, 그동안 고객만족실에서 작성, 보고한 각종 보고서들이 묶인 두툼한 서류 파일 서너 뭉치를 받았습니다. 읽어 보고 참조하라고 했습니다.

그 서류들은 높은 분들에게 보고 완료 및 실행 중인 다양한 보고서였습니다. S의료원 환자·보호자 만족도 조사결과, S그룹의 주요 관계사 고객만족도 조사결과, S그룹 금융 4개사의 고객창구 만족도 조사결과 등 다양한 방법의 설문조사 결과를 요약하고, S그룹의 고객들을 더 만족시키기 위해 개선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제언해 놓은 보고서였습니다. 보고서의 주제가 독특하거나 완성도가 높은 경우, 정기적인 보고서인 경우, S그룹사장단 회의에서 보고된 훌륭한 보고서였습니다.

새로운 제안을 하라 

저는 보고서를 열심히 훑어봤습니다. “엄청난 설문조사를 매우 자주 하면서 고객 의견을 청취하는구나…대단하다”는 생각이 우선 떠올랐지요. 당시는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이 나오기 훨씬 전이라서, 고객 설문조사를 하려면 일일이 만나서 대면조사 또는 유선으로 전화조사를 해야 했답니다. 그러니 조사하기가 정말 힘들었지요.

그런데 그 다음에 또 드는 생각은, “요런 건 요렇게 했으면 더 좋았을 것을…”, “흐음….요런 건 통계조사 방법론 상에 좀 문제가 있네…” 등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보고서를 다 리뷰하고 나서 간단히 OJT 받은 소감을 겸해서 “고객만족실의 보고서 개선 제안”이라는 보고서를 준비했고, 고객만족실의 리더이던 부장님께 드렸습니다.

나중에 들은 얘기인데, 같이 입사했던 남자 박사 수료자는 그런 노력을 하지 않았고, 이제까지 부서에 새로 합류한 어떤 직원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즉, OJT를 받고 나서, OJT를 받으니 어떠 하더라….더 개선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다…는 제안을,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발적으로 한 사람이 없었다는 겁니다. 그걸 한다고 해서 월급을 더 주는 것도 아니고, 업무 실적에 포함되는 것도 아니니까요. 그리고 제 “고객만족실의 보고서 개선 제안’을 부서원들이 회람했고 다들 깜짝 놀랐다고들 합니다. 전 강렬한 인상을 주면서 부서에 진입했던 거지요.

주도권을 갖고 일하라 

저는, 모든 후배들에게 늘, “내가 S그룹에서 일했던 22년 동안 상사가 시켜서 한 일은 10%도 안 된다. 난, 내가 맡은 영역 나아가 회사 전반에서 더 개선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해서 고민하고, 그것을 구체적으로 제안했다. 그건 바로 적극성, 자기주도성이다”라고 잔소리를 했습니다. 특히 여성 후배들에게 더 많이 그렇게 잔소리를 했습니다.

그러면 일만 많아지는데 왜 그렇게 하냐고요? 우선 상사가 아니라 내가 주도권을 가지게 됩니다. 새로운 업무를 내가 먼저 제안하니, 내가 수립한 계획에 따라 업무를 진행할 수 있고 내가 주도권을 가지게 되지요. 당연히 상사의 잔소리로부터 많이 자유로워집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상사가 나를 신뢰하게 된다는 거지요. “저 친구는 꾀를 피우지 않는 친구야”라는 이미지를 얻게 됩니다.

물론 이런 적극성과 자기주도성은, 모든 월급쟁이에게 필요합니다. 그러나, 저는 특히 여성 후배들에게 더 많이 강조하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대체로 여성들은 리더(Leader) 보다는 팔로워(Follower) 입장에서 업무를 처리하는 자리에 있다 보니, “시키는 일을 열심히 하는” 것에 집중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상사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통상적으로 여성은 “뒤로 빼고 소극적이고 조직에 대한 로열티가 약하다”는 선입견을 무의식 속에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인식을 가진 사람들을 탓하며 말하기 보다는 내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면 됩니다.

그런데 적극성과 자기주도성이라는 말은 진부하고 너무 어렵지요? 저는 “시키지 않은 일을 해 보세요!!”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단, 그것이 당신이 속한 조직에 도움이 되는 옳은 일이라면 말이지요. 다른 월급쟁이들과 차별화되고, 여성 인력에 대한 통상적인 편견을 극복하는 데 엄청난 도움이 될 것입니다.

 

조은정

서울대학교 가정관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소비자학 박사 학위를 받은 조은정 박사는 1995년 삼성그룹 소비자문화원에 입사해 22년간 삼성전자 글로벌마케팅 연구소장, 프린팅사업부 마케팅그룹장 등 삼성전자의 마케팅 및 역량향상 업무를 진행했다. 여성신문에서 재능기부 하고 있다.

 

<이 글은 여성신문의 공식의견과는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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