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사람들의 전쟁 기억

사람들이 과거 상처에 대해

충분히 돌아볼 여력 생긴다면

베트남과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베트남 주둔 시절 세워진 노트르담 성당, 호찌민의 대표 관광지로 꼽혀

시내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까닭에 호찌민에 방문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들르게 되는 노트르담 성당은 프랑스의 베트남 주둔 시절 프랑스인들의 종교 생활을 위해 파리에 있는 노트르담 성당을 본 따서 세워졌다. 모든 침략과 통제가 그러하듯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방법으로 베트남에 주둔한 과거의 프랑스는 강탈의 와중에도 자신들의 양심과 신앙을 지키고자 호찌민 시내 한복판에 성당을 지었다. 파리 노트르담 성당의 완벽한 재현을 위해 벽돌 하나, 유리 한 조각까지 프랑스에서 직접 공수했다고 하니 그들이 호찌민의 노트르담 성당 건축에 쏟은 정성과 노고를 짐작할 수 있다.

탄생의 과정은 아이러니지만 현재 이곳은 호찌민의 랜드 마크 역할을 하며 호찌민 사람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장소로 기능한다. 예비부부들의 웨딩 촬영지로 활용되거나 연인들의 데이트 명소로 애용되고, 역시 프랑스 식민 시대에 지어진 중앙우체국과 함께 호찌민을 대표하는 관광 코스로 자리 잡아 호찌민을 찾는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기도 한다. 이 외에도 오페라 하우스, 호찌민 미술관 등 호찌민에서 유명한 관광지는 대부분 프랑스 식민 시대에 세워졌다고 보아도 좋을 정도로 호찌민은 식민지배의 흔적을 굳이 지어내지 않은 채 아픈 역사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호찌민 노트르담 성당. 현재 보수 공사가 진행 중이다.> ⓒ송수산

프랑스의 지배가 먼 과거인 탓에 그 흔적이 옅어졌다고 한다면 아직까지 많은 이들이 기억하고 증언하고 있는 베트남 전쟁의 상대는 어떨까.

2016년 5월, 당시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오바마 전 대통령이 호찌민을 방문할 예정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호찌민 시내는 그를 맞이할 준비로 분주해졌다. 시내 어딜 가든 평소의 몇 배는 늦을 각오를 해야 했다. 택시비는 평소보다 2배까지 치솟았고 그의 동선을 고려해 대부분의 도로가 차단되었다. 전날부터 예행연습이라도 하듯 경찰들의 기습 단속과 훈련이 이어졌으며 그의 방문이 예정된 사원과 식당 주변은 미리부터 취재진과 구경꾼들, 그리고 경찰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마침내 그가 호찌민에 발을 디딘 순간 그가 지나는, 혹은 지날 거라고 알려진 길목마다 금성홍기를 든 시민들이 그의 방베를 환영하기 위해 대기했다. 빠르고 신속했고 정확했고 자발적이었다. 한 때의 적국에서 이토록 환영받는 그의 모습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니 마음속에서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베트남을 찾는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방문하는 곳이 전쟁기념관과 구찌 터널 일 정도로 베트남에는 아직도 전쟁의 상흔이 곳곳에 남아있고, 베트남전에서 미군이 마구 뿌려댄 고엽제로 인해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고통 받고 있다. 전쟁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화해와 용서, 관용과 사랑이 남는 것은 상상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도 미국의 수장을 향한 이러한 환대의 마음은 도대체 어디에서 기인한 것이란 말인가.

 

 

호찌민 노트르담 성당 ⓒ송수산
호찌민 노트르담 성당 ⓒ송수산

베트남전의 책임 소재에 대해 논의를 시작하는 베트남

언젠가 이곳의 친구에게 한 때나마 베트남을 착취하고 전유했던 프랑스와 어떻게 잘 지낼 수 있냐고 묻은 적이 있다. 그녀는 프랑스가 베트남을 지배한 것은 슬프고 아픈 과거이지만 그들이 베트남에 근대화된 병원과 학교를 만들어주었고 그 덕분에 베트남이 조금은 더 잘살 게 되었다고 답했다. 베트남 스스로는 절대 이뤄내지 못했을 지도 모를 발전과 성장이 그들에 대한 프랑스의 탄압과 전유를 조금은 이해할 만한 것으로 만들어준 것일까.

베트남전쟁의 참전국가인 미국과 한국, 전쟁 특수로 많은 돈을 벌어들였던 일본과의 관계도 이와 다르지 않다. 호찌민의 곳곳에는 한국과 일본의 자본으로 세워진 건물들이 즐비하고 지하철과 다리 등의 편의시설이 건설되는 곳마다 일장기와 태극기가 붙어있는 모습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베트남 젊은이들 사이에서 새로 건설된 일본 백화점에서 사진을 찍는 것이 유행이 되기도 하고, 한국 기업에 취업하기 위해 한국어를 공부하는 대학생들도 늘어나고 있다. 베트남전에서 벌어진 학살에 대한 반성과 사과가 시작되고 있는 한국의 사정과 반대로 패전국인 너희가 왜 사과를 하려고 하는지를 묻는 사람도 있다. 그 모습은 우리가 베트남의 경제 성장에 어느 정도 기여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들의 관용을 불러일으킨 것은 아닐까 하는 착각에 빠지도록 만든다.

앞서 말한 친구는 시간이 조금 더 흐른 후에 나에게 다른 이야기를 하나 더 들려주었다. 서구가 베트남을 침공한 건 멀지 않은 과거이기 때문에 여전히 베트남 사람들의 내면에는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간직하고 있다고 말이다. 그리고 그들이 현재의 베트남에 베풀어주는 경제적인 혜택이 다른 무엇보다 절실할 만큼 베트남은 지금 현재 경제성장이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덧붙였다.

그녀의 말대로 베트남은 세계 최하위 수준의 경제 빈국이다. 1인당 GDP는 2,306달러로 세계 134위에 머물고 있고 대학교를 졸업한 이들의 평균 초임은 월 3-40만 원 정도에 불과하다. 또한 지금까지 전쟁으로 파괴된 경제와 문화, 상처를 복구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느라 베트남전의 책임에 대해 생각해볼 여력이 없었다. 그러나 경제력이 일정 수준에 도달하고 전쟁의 화마가 문화에 남긴 상처가 아무는 날이 오면 그들 역시 전쟁이 남긴 문제와 그 책임 소재를 규명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할 것이다. 실제로 몇 달 전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한국군이 등장하는 드라마가 베트남에서 상영하지 못하도록 해달라는 청원에 10만 명 가까운 베트남 국민이 서명을 하기도 했다.

베트남이 어느 정도 경제 성장의 반열에 올라서고 사람들이 과거의 상처에 대해 충분히 돌아보게 될 여력이 생긴다면 그때 베트남과 우리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나의 질문에 친구는 대답했다.

 

‘그 때가 되면 베트남은 더 이상 참전국들과 잘 지낼 수 없을 거야. 하지만 그런 날이 오더라도 베트남은 한국과 좋은 사이로 남을 거라고 믿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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