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4400일의 겨울 지나 13년 기다린 봄이 온다
[만남] 4400일의 겨울 지나 13년 기다린 봄이 온다
  • 이하나 기자
  • 승인 2018.03.13 11:17
  • 수정 2018-03-21 09: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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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김승하 KTX열차승무지부 지부장

정규직 전환 약속 저버린

코레일과 13년째 싸우는

KTX 해고 여승무원 33인

1·2심 뒤집는 대법원 판결로

1억원의 빚 떠안았지만

4대 종단 중재 끝에 해결

원직복직·직접고용 논의

이제 본격 시작해야   

‘희망의 빛’ 보이지만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

 

서울역 KTX 앞에선 김승하 KTX열차승무지부 지부장. 그는 임금 반환 문제가 잘 해결됐지만, 아직 남아있는 문제가 해결되려면 멀었다고 했다. 하지만 기대감은 어느 때보다 크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서울역 KTX 앞에선 김승하 KTX열차승무지부 지부장. 그는 임금 반환 문제가 잘 해결됐지만, 아직 남아있는 문제가 해결되려면 멀었다고 했다. 하지만 기대감은 어느 때보다 크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서울 용산역 인근 철도회관 5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경쾌한 음악 소리가 들렸다. 철문을 열고 들어가니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며 춤을 추는 김승하(38) KTX열차승무지부 지부장의 얼굴이 보였다. “얼굴 찌푸리지 말아요, 모두가 힘들잖아요” 휴대전화에서 흘러나오는 노랫말처럼 그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투쟁하느라 꽃무늬 원피스 못 입은 게 아쉽다”던 그는 꽃무늬는 아니지만 귀여운 원피스에 구두 차림으로 기자들을 맞았다. 이날 그는 동료인 김진옥, 차미선, 차혜진씨와 함께 노래에 맞춰 율동을 연습하는 중이었다. 16일 ‘임금 반환’에 필요한 기금 마련을 위해 여는 연대의 밤 행사에서 손님들에게 선보일 춤이라고 했다.

누군가는 그들에게 어두운 터널의 끝이 보인다고 했고, 또 다른 이는 올해는 ‘봄날’이 올 것이라고도 했다. 햇수로 13년, 약 4400일을 복직을 위해 싸우는 김 지부장은 ‘이제 곧 복직 되는 것 아니냐’는 희망 섞인 질문에 “그래도 조바심이 난다”고 했다. “정말 (복직이) 되기 전까진 아무 것도 된 게 아니다. 잘 될 것 같다가도 안된 적이 너무 많아서”라는 그의 말에 마음이 쑥 가라앉았다.

 

연대의 밤 행사에서 선보일 춤을 연습하고는 조합원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연대의 밤 행사에서 선보일 춤을 연습하고는 조합원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2006년 3월 1일 시작된 KTX 여승무원의 투쟁은 간접고용에 맞선 싸움인 동시에 성차별에 맞선 싸움이기도 했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당시 철도청)은 2004년 KTX 개통을 앞두고 승무원을 채용할 당시부터 고객서비스업을 ‘여성’의 일로 여기고 여승무원만 채용했다. 나이와 키, 체중에 따라 등급이 매겨졌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성별을 이유로 한 고용차별이라고 판단했다. 당시 여승무원들은 직접고용 전환을 전제로 위탁업체에 비정규직으로 고용됐다. 김 지부장도 승무원 학원을 다니며 준비한 끝에 꿈을 이뤘다.

하지만 2년이 지나도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코레일 측은 이들에게 KTX관광레저로 이적 계약을 제안했다. 승무원들은 부당하다고 외쳤으나 코레일 측은 승무원 280여명을 가차없이 해고했다. 김 지부장은 “당시 3년 간 안해본 게 없을 정도로 온갖 투쟁을 다했다”고 회고했다. 삭발부터 단식, 점거와 고공농성까지. 시간이 지나며 함께 투쟁하던 이들도 하나둘 떠나 승무원 34명만이 남았다. 결국 회사는 꿈쩍도 하지 않았고, 소송을 시작했다. 1·2심 판결은 승무원들의 승리였다. 하지만 2015년 2월 26일 대법원은 1·2심 결과를 뒤집고 승무업무 위탁을 합법도급으로 판결, 이들을 벼랑 끝으로 몰았다. 1인당 4년치 임금 8640만원을 코레일에 되돌려 줘야 했다. 2015년 3월 거액의 빚을 떠안게 된 한 해고 승무원은 세 살 딸을 남겨두고 세상을 떠났다. 조합원도 33명으로 줄었다. 그 사이 빚은 지연이자까지 붙어 1억원이 넘어갔다.

다행히 지난 1월 이 ‘임금 반환’ 문제가 원금의 5%(1인당 432만원)만을 코레일에 지급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개신교, 불교, 성공회, 천주교 등 4대 종단의 중재와 법원의 조정 덕분이었다. 김 지부장은 기쁜 순간에 ‘친구’가 더 생각났다고 했다. “일이 풀리니까 (세상을 떠난) 친구가 더 생각나더라고요. 그 친구는 아무것도 보장받는 게 없으니까요. 친구의 딸을 위해서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고민하고 있어요.”

김 지부장은 올해 다시 ‘복직’의 꿈을 꾸고 있다. 이번엔 꿈이 꼭 현실이 될 것만 같다. 2005년 승무원 업무에 필요해 따뒀던 철도운송산업기사 자격증도 12일 재발급 받았다. 하지만 김 지부장은 근본적인 문제가 남아있는 상황에서 마냥 장밋빛인 건 아니다. 조급한 해고 승무원들과는 달리 코레일은 느긋하기만 하다. 인사이동 기간이라 논의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래도 그 어느때보다 기대감은 높다. 문재인 정부가 지난해 7월 “국민의 생명·안전과 밀접한 상시·지속 업무는 직접고용 정규직화가 원칙”이라고 발표했고,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도 직접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으로선 ‘원직복직’만 바로보고 있지만, ‘복직 그 이후’도 떠올릴 수 있는 이유기도 하다. 대법원 판결이 난 직후 “다시 원점”이라고 말했던 김 지부장은 이제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했다. 비슷한 말이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말 끝에 희망이 스며 있었다.

 

김승하 지부장은 임금 반환 문제가 풀리던 기쁜 순간에 ‘친구’가 더 생각났다고 했다. 1억원이 넘는 빚을 떠안게 되자 세상을 등졌던 그 친구였다. 그는 “친구의 딸을 위해서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김승하 지부장은 임금 반환 문제가 풀리던 기쁜 순간에 ‘친구’가 더 생각났다고 했다. 1억원이 넘는 빚을 떠안게 되자 세상을 등졌던 그 친구였다. 그는 “친구의 딸을 위해서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중재 결정이 나고 조합원들 분위기는 어떤가요.

“그나마 임금 반환 문제가 해결되서 다행이라고 말해요. 복직 문제도 해결될 거라고 기대는 하고 있는데 정말 되기 전까진 아무것도 된 게 아니잖아요. 조바심이 나요. 오영식 코레일 사장님이 취임하고 해고 노동자 복직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도 잘 해결되지 않을까 기대를 하고 있어요. 이 문제가 완벽하게 해결되기 위해선 원직복직과 직접고용이 동시에 이뤄져야 하기 쉽지 않은 문제라는 점은 잘 알고 있어요. 단순히 저희를 복직시키는 것 뿐만 아니라 코레일 자회사인 코레일관광개발에 소속된 KTX 승무원에 대한 직접고용 건이니까요.”

*코레일 노사는 2월 8일 철도 민영화와 공기업 구조조정 등에 저항하다 해고된 노동자 98명을 전원 복직시키는 데 합의했다.

-해결이 쉽지 않았던 임금 반환 문제는 어떻게 풀린 건가요.

“지난해 5월부터 KTX 해고 승무원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위원회를 꾸려서 활동 중이었어요. 여기에 개신교, 불교, 성공회, 천주교 등 4대 종단이 참여하셨는데, 지난해 하승창 청와대 사회혁신수석께서 추기경님을 예방한다는 소식을 듣고 전날 성공회에서 저희가 추기경님을 만날 수 있도록 주선해주셔서 중재안을 전달드렸어요. 추기경께서 이 이야기를 전달했고, 종교계 대표들이 철도공사와 만나 조율을 해보자고 논의되면서 중재까지 이어질 수 있었어요. 반환 소송을 맡은 재판부가 소송 전에 원만하게 합의하라며 조정 시간을 벌어주신 덕도 컸어요. 결국 지난 1월 원금의 5%를 3월 말까지 내는 것으로 조정이 됐죠. 비영리단체 주빌리은행이 오래된 부실채권을 원금의 5% 수준에 사서 채무자를 구제하고 있는 것에 착안해 제시된 상징적 금액이었어요. 물론 이 과정도 정말 쉽지 않았어요. 코레일 측은 처음엔 50%는 받아야 한다고 했고, 5% 안을 받을 테니 투쟁을 그만두라고 요구하기도 했거든요. 하지만 많은 분들의 도움 덕에 결정이 날 수 있었어요.”

 

1000명 타는 KTX에 안전 직원은 1명 

-13년이 지나면서 KTX 해고 여승무원 문제가 비정규직과 여성을 외주화한 대표 사례로 꼽힙니다.

“경제는 발전하고 있다고 하는데 내게 돌아오는 것은 없고, 점점 다같이 어려워진다고 여기기 시작한 것 같아요. KTX 여승무원 해고 사건이 남의 일인 줄만 알았는데 조금씩 자신의 문제로 다가왔다는 이야기인 것 같아요.”

-안전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면서 안전·생명 관련 업무는 외주화하면 안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어요. 반면, 2015년 대법원이 안전 업무는 열차팀장이, 서비스 업무는 여승무원이 업무가 담당한다고 봤었죠.

“KTX 한 대가 18량(380m)인데, 좌석이 929개에요. 입석을 계속 발행하기 때문에 최대 1000명이 넘게 탑승할 수 있어요. 그런데 객실 안전을 담당하는 정규직 승무원은 열차팀장 1명 뿐이에요. 대법원 판결에 따르면 승무원은 고객 서비스 업무 담당으로 위급한 상황일 때 안내방송 정도만 할 수 있어요. 승무원이 이례적 상황에는 열차팀장의 협조 요청에 따라 안전 업무를 하지만, 안전이 승무원의 업무는 아니기 때문이에요. 최근 KTX 뿐 아니라 철도노동자들이 작업 중 사고를 당하는 일이 많아요. 문제는 안전불감증이에요. 사고를 줄이고 예방하기 위해 안전장치가 필요한 것인데, 코레일 측은 이 안전장치를 하나둘씩 빼고 있어요. 사고가 나기 전까지는 이런 것들이 눈에 보이지 않잖아요. 신임 사장도 오셨으니 바뀌지 않을까 기대를 하지만, 근본적으로 저희 문제 뿐만 아니라 안전 체계가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승무원으로 2년3개월 일하고 해고 승무원으로 12년 넘게 살았어요. KTX 승무원이 된 것을 후회한 적 없으세요.

“KTX 승무원이 된 것을 후회한 적은 없어요. 승무원이 될 무렵 항공사 승무원시험에서 실무면접에까지 올랐어요. 그런데 제게는 선택지가 아니었어요. KTX 승무원은 어릴 때부터 꿈이었던 승무원을 하면서도 평생 안정된 직장을 보장받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민간 항공사 승무원이 아쉽진 않았죠. 12년 넘게 포기하지 않고 투쟁을 했느냐고 물어보시는데, 물 흐르듯이 여기까지 온 거에요. 파업 시작했을 때 회사에서 일찍 복귀하는 순서대로 승진을 시켜준다고 회유한 적이 있어요. 그때 동료들을 버리고 갈 생각을 할 수도 없었고, 동료들과 함께 하는 선택을 하다보니 여기까지 온 거죠. 다른 선택을 할 수가 없었어요.”

 

지난해 KTX 여승무원 해고 투쟁 4000일을 맞아 열린 행사에서 함께 모인 조합원들. ⓒ이정실 사진기자
지난해 KTX 여승무원 해고 투쟁 4000일을 맞아 열린 행사에서 함께 모인 조합원들. ⓒ이정실 사진기자

피 섞이지 않은 33명의 자매

-서른 세명은 남들이 알지 못하는 끈끈함이 있겠어요.

“맞아요. 저희 서른 세명은 외부에선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도 힘든 일들도 많이 겪었어요. 그러다 보니 만나면 예전 얘기를 나누고, 공감하면서 서로 위로하죠. 그래서 나이 들어서도 서로 떨어져 살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13년이라는 시간동안 가장 힘들었던 적은 언제인가요.

“국회 의원회관 점거농성을 했을 때 저는 밖에 있었는데, 전경들의 통제로 안에 있는 친구들이 물 한모금도 못 먹는 상황을 지켜봐야만 했던 일, 대법원 판결 났을 때, 한 친구가 세상을 떠났을 때. 힘든 일이 많았지만 요즘에 많이 힘이 들어요. 철도노조 안에서도 소수인 저희가 목소리를 내는 게 쉽지 않아 여러 가지 일로 힘이 들죠. 지금 원직복직이 제일 중요하지만 복직 이후에 대한 생각도 많아요. 복직되고 자리잡기까지는 힘든 과정이 필요하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정부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요구 보다는 저희는 늘 ‘을’이었기 때문에 정부가 적극 나서주기만을 바랄 뿐이죠. 지금 정부에 대한 기대가 커요.”

-조합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저는 ‘우리애들’이 여러 가지 사건과 상황에 일희일비하는 모습이 싫었어요. 마음에 상처가 되거나 정치적인 부분은 제 선에서 거르려고 노력하고, 동료들은 복직 투쟁만 해달라고 했어요. 그런데 이제 복직이 되면 상황이 달라질 거에요. 그동안 우리애들이 잘 알지 못했던 부분을 직접 접하게 되면서 상처도 받고 지칠 수도 있을 텐데, 지금까지 버텨온 것처럼 의지를 가지고 버텨줬으면 하는 게 제 마음이에요. 지금은 무엇보다 복직이 최우선이지만, 이제 저희도 조금씩 준비해야죠. 기대도 하지만 쉽지 않을 거라는 건 알고 있어요.”

-2008년부터 10년간 지부장을 맡았어요. 복직 이후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본적 있나요.

“정확하게 생각해보진 않았어요. 그런데 바라는 것은 있어요. 승무원 업무가 매력적인 게 기차에서 내리면 업무도 끝이 난다는 거에요. 지금처럼 일이 끝나고도 계속 그 일을 생각하고 고민하지 않아도 되거든요. 복직된다면 내 삶에 집중하면서 살고 싶어요. 아직 멀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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