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생각한다] 미투 운동 두고 “수컷 씨 뿌리는 본능”? 틀렸다
[이렇게 생각한다] 미투 운동 두고 “수컷 씨 뿌리는 본능”? 틀렸다
  • 이상희 고인류학자·UC 리버사이드 인류학과 교수
  • 승인 2018.03.13 07:54
  • 수정 2018-03-20 18: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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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차명진 전 자유한국당 의원이 성폭력 고발 운동인 ‘미투(#MeToo)’ 운동에 관해 “수컷이 많은 씨를 심으려 하는 것은 본능”이라고 말했습니다. 고인류학자인 이상희 미국 캘리퍼니아 리버사이드대 인류학과 교수가 이에 대한 반박글을 보내왔습니다. 의견은 saltnpepa@womennews.co.kr로 부탁드립니다. 

본능이라는 프레임은 성폭력 행위의 중심에 있는

권력과 폭력에서 관심을 돌리게 한다

 

한 정치인이 최근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서 “인간의 유전자를 보면 남자, 수컷은 많은 곳에 씨를 심으려 하는 본능이 있다”면서 “이는 진화론에 의해 입증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비판의 목소리에 대해 그는 ‘진화론으로 입증된 본능’이 아니고 ‘본능을 제어하는 문화와 제도의 중요성’이 발언의 초점이라고 강조했다. 나는 문화와 제도가 중요하다는 그의 결론에 동의한다. 그렇지만 이 논의에 본능을 끌어오는 일은 과학적으로 틀릴 뿐 아니라 위험하므로 한마디 해야겠다. 미투 운동에서 드러나는 일련의 행위는 진화론에 의해 입증된 수컷의 본능일까? 

진화론은 특정 유전자의 비율이 세대를 거치면서 늘어나거나 줄어들면 진화라고 정의한다. 유전자의 비율이 늘어나려면 어떤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개체가 그 유전자를 가지고 있지 않은 개체보다 더 많은 후손을 남겨야 한다. 간단히 말해서 “유전자를 많이 남기는 것이 진화론의 입장에서 유익하다”는 명제는 맞다. 그러나, 딱 여기까지다. 

유전자를 많이 남기면서 진화하는 것은 수컷뿐만 아니다. 암수 모두가 해당한다. 이 세상의 생물체는 동식물을 막론하고 암수 모두 유전자를 많이 남기기 위해서 다양한 행위를 펼친다.

흔하게 볼 수 있는 수컷끼리의 경쟁은 암컷에게 가장 편한 방식이다. 수컷끼리 미리미리 서로 치열한 경쟁을 통해 순위를 매겨두기 때문에 가임기가 되면 큰 고민하지 않고 우위를 점한 수컷을 선택하면 되기 때문이다. 높은 순위의 수컷은 많은 씨를 뿌리게 되지만, 대다수 수컷은 암컷 가까이도 가지 못할 수 있다. 고릴라가 좋은 예다.

수컷끼리의 연대가 중요하다면 눈에 드러나는 경쟁을 하지 않는다. 침팬지가 좋은 예다. 이 경우, 암컷은 굳이 한 수컷을 선택하지 않고 가능한 한 많은 수컷과 섹스를 한다. 높은 순위의 수컷을 선택하는 대신 질 속에서 정자들끼리 경쟁하도록 놔두는 전략이다.

극단적인 전략을 구사하는 수컷도 있다. 교미하는 동안 암컷이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게끔 선물을 가져가기도 한다. 교미한 후에 다른 수컷의 정자가 들어오지 않게끔 먹을 것을 제공하기도 한다. 그 먹을 것이 자기 자신의 몸이기도 하다. 사람의 눈으로 봤을 때 극단적인 결정이지만, 자신은 죽되 유전자는 남기게 되는 적응 양식이다. 

섹스를 많이 한다고 새끼를 많이 낳는 것도 아니고, 많은 수의 파트너와 섹스를 한다고 많이 낳는 것도 아니다. 또한, 새끼를 많이 낳는다고 유전자가 많이 남는 것도 아니다. 세상에는 쥐처럼, 물고기처럼, 거북이처럼 많은 수의 새끼를 낳아서 그중 한두 마리만 살아남게 하는 경우도 있고, 사자처럼 한두 마리의 새끼를 낳아서 어른이 될 때까지 키우는 경우도 있다. 생물의 무궁무진한 세계는 실로 어메이징한 것이다.

‘씨를 많이 뿌리는 일’이 본능이라면 ‘가능한 한 많은 수컷과 섹스하기’도 본능이고, ‘섹스 후에 암컷에게 자진해서 잡아먹히기’도 본능이고, ‘경쟁 순위에서 밀려서 평생 섹스 구경도 못 하기’도 본능이고, ‘교미 직후 수컷을 죽여서 먹기’도 본능이다. 수천 마리의 새끼를 낳는 것도 본능이고 한 마리만 낳는 것도 본능이다. 본능은 천의 얼굴, 만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미투 운동에서 폭로하는 성폭력의 행위가 수컷의 본능이라는 주장은 과학적으로 틀렸다. 성희롱, 성추행, 강간의 행위는 씨를 뿌리는 일이 아니다. 설사 강간의 결과로 임신이 되고 아이가 태어난다고 해도, 이는 진화론에서 이야기하는 생식 행위라기보다는 사회학, 인류학에서 이야기하는 권력에 의한 폭력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성희롱부터 강간까지 일련의 행위가 본능에서 행해졌다는 주장은 단순히 과학 지식의 왜곡된 전달에 지나지 않는다. 본능이라는 프레임은 성폭력 행위의 중심에 있는 권력과 폭력에서 관심을 돌리게 한다. 우리 사회의 남성은 틈만 나면 정액을 뿌리고 싶은 본능에 움직이는 수컷으로 자리가 매겨지고, 제도는 그러한 자연적인 본능을 억제하는 수단이 되고, 여성은 수컷의 강한 본능을 억누르면서 보호해줘야 하는 암컷으로 자리가 매겨진다. 남성은 씨 뿌리는 수컷이 아니고 여성은 수컷이 뿌려대는 씨에서 보호받아야 할 순결한 처녀도 아니다. 왜곡된 본능에 인간을 자리매김하는 일은 과학 지식의 잘못된 전달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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