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성의전화, 세계여성의 날 맞아

‘여성인권상담소 상담통계 분석’ 결과

가해자 45.9%는 애인 등 ‘친밀한 관계’ 

 

4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3.8 세계여성의 날 기념 제34회 한국여성대회에서 참가자가 피켓을 들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4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3.8 세계여성의 날 기념 제34회 한국여성대회에서 참가자가 피켓을 들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한국 사회를 뒤흔든 ‘미투(#MeToo·나도 말한다)’ 운동 이후 성폭력 상담 건수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여성의전화(대표 고미경·이하 여전)는 8일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2017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 상담통계 분석-성폭력을 중심으로’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해 진행한 상담 3040건 중 초기 상담 2055건을 심층 분석했으며, 지난 1월 30일부터 3월 6일까지의 상담 사례에 ‘미투’ 운동이 미친 영향을 살폈다.

분석결과에 따르면, 1월 30일부터 3월 6일까지 접수된 성폭력 피해 상담은 전년도 같은 기간보다 23.5% 증가했다. 여전 측은 “이는 미투 캠페인이 가해자가 유명인인 사례나 언론 보도를 통해 고발되는 것에만 국한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상담 100건 중 28건에서는 미투 운동이 직접 언급됐다. 피해생존자들은 ‘미투 캠페인을 통해 용기를 얻었다’ ‘이대로 두면 더 많은 피해자가 생길 것 같아서’ ‘이제는 그 일이 성폭력이었다는 것을 알게 돼서’ ‘미투 운동에 피해 경험이 상기돼서’ 등의 이유로 상담을 받게 됐다고 말했다. 여전은 “이들 대다수는 가해자의 사과와 법적 대응 과정에서의 조력 등을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피·가해자 관계를 보면, 피해자가 여성이면서 가해자가 남성인 사례는 94.9%를 차지했다. 전·현 배우자, 전·현 애인, 데이트 상대자가 가해자인 경우는 45.9%였다. 여성 폭력 피해는 상당수 남성에 의해 발생하며, 특히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한다고 여전은 분석했다. 

상담 사례를 유형별로 살펴보면 성폭력 피해가 29.5%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이어 가정폭력(28.1%), 데이트폭력(13.8%), 스토킹(8.8%) 순이었다. 성폭력 피해 중 33.9%가 강간, 성추행이었고, 성적모욕·비난·의심이 14.9%로 나타났다.

성폭력 가해자의 경우 직장 관계자가 24.4%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으며, 전·현 애인, 데이트 상대자 등이 23.7%, 친족 및 전·현 배우자가 14.8%로 드러났다. 여전은 “전체 성폭력 피해의 85%가 피해자와 아는 사람에 의해 발생했다”며 “이는 성폭력이 낯선 사람이나 일부 병리적 개인에 의해 발생한다는 통념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성폭력 피해자 중 2차 피해를 경험한 경우는 19.3%였다. 그중 44.5%가 피·가해자의 주변인과 가족에 의해 발생했다. “네가 참아라” “없던 일로 하라”며 사건을 은폐·외면하는 사례가 많았다고 여전은 밝혔다.

이어 직장(18%), 경찰·검찰·법원(17.5%)에 의해 2차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 수사·사법기관의 경우, 신고 접수단계에서 경찰이 “모텔 가는 것 자체가 동의 아니냐. 왜 처음부터 신고하지 않았느냐” “신고한다고 다 되는 게 아니다. 무고죄로 오히려 고소당할 수도 있다”는 말을 하며 피해자를 위축시키거나 “왜 바보처럼 이혼하지 않느냐”며 도리어 피해자에게 책임을 묻는 식이었다.  

 

4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3.8 세계여성의 날 기념 제34회 한국여성대회 참가자들 사이로 피켓이 보이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4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3.8 세계여성의 날 기념 제34회 한국여성대회 참가자들 사이로 피켓이 보이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성폭력 피해자가 겪는 ‘역고소’의 심각성도 문제로 제기됐다. 여전이 지난해 지원한 ‘역고소’ 피해 사례는 18건이었는데, 이중 16건이 가해자가 고소한 사례였다. 무고 및 명예훼손 역고소가 대다수였으며, 이밖에 모욕, 허위사실 유포, 업무방해, 사기, 가택침입, 재산 분할 등이 있었다. 2건은 검사에 의한 무고 인지였다. 

여전은 “성폭력 피해자는 수많은 장벽과 2차 피해를 겪으며 피해 사실을 고발하지만 성폭력에 대한 통념이 수사에 영향을 미쳐 피해자가 오히려 피의자가 되기도 한다. 또 가해자에게 ‘매뉴얼’처럼 자리잡은 역고소로 인해 피해자는 정서적·경제적 피해뿐 아니라 성폭력 피해 자체가 부정되는 극심한 고통에 놓이게 된다”며 “이런 현실은 결국 피해자가 피해를 제대로 말할 수 없게 하고, 폭로나 익명 고발 등 다른 방법을 이용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피해자는 역고소 피의자가 되기를 감수하며 피해를 고발해야 하는 어려움에 처하기도 한다”고 비판했다.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 상담통계 분석’은 한국여성의전화 홈페이지(http://www.hotline.or.kr)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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