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여성의 날 맞아 진행된

서울 ‘여성안심 재난체험’

10m 높이서 완강기 차고

내려오니 다리가 ‘후들’

화재 시 대피할 땐 

브래지어 포개면

마스크 효과 볼 수 있어

 

6일 서울 광진구 서울광나루안전체험관에서 진행된 ‘여성안심 재난체험’ 체험자들이 완강기 체험을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6일 서울 광진구 서울광나루안전체험관에서 진행된 ‘여성안심 재난체험’ 체험자들이 완강기 체험을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자, 준비되셨으면 뛰어내립니다.”

“으악, 발을 못 떼겠어요. 너무 무서워요!”

6일 오전 서울 광진구 광나루안전체험관 완강기 체험장에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약 10m에 달하는 건물 3층 높이에 교육생들은 멈칫했다. 두려움에 난간을 붙잡은 손을 놓지 못해 애를 먹는 이도 있었다.

서울시가 3.8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6~9일 4일간 서울광나루안전체험관(이하 체험관)에서 여성 시민, 여성단체 등을 대상으로 ‘여성안심 재난체험’을 진행하고 있다. 여성들이 체험장에서 직접 재난을 겪어보고 심폐소생술, 자동심장충격기 사용 등 응급처치 방법을 배울 수 있다. 이날 열린 개막행사 체험에 기자도 참여했다. 60여 명의 여성들과 완강기, 태풍, 지진, 화재대피 등을 체험할 수 있었다.

 

6일 서울 광진구 서울광나루안전체험관에서 진행된 ‘여성안심 재난체험’ 체험자들이 완강기 체험을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6일 서울 광진구 서울광나루안전체험관에서 진행된 ‘여성안심 재난체험’ 체험자들이 완강기 체험을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완강기는 고층 건물에서 불이 났을 때 몸에 밧줄을 매고 높은 층에서 땅으로 내려올 수 있게 만든 비상용 기구다. 평소 고소공포증이 없다고 생각했던 기자도 막상 10m 밑으로 뛰어내리려니 다리가 후들거렸다. “다리를 쭉 편 채 벽을 짚으며 내려가면 된다”는 교관의 설명에도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실제 재난이 발생했다고 생각한 뒤에야 두 눈 질끈 감고 두 발을 뗐다. 도르래 원리로 움직이는 완강기에 몸을 맡기니 순식간에 아래로 내려갔다.

이날 체험 팀을 인솔한 김현선 교관은 “완강기는 군대에 가지 않는 이상 쉽게 체험해볼 수 없는 교육이다. 그래서 평소 접할 기회가 없는 여성들에게 특히 필요한 체험이기도 하다”라고 강조했다. ‘만약 불이 났는데 아기가 있을 경우에는 어떡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김 교관은 “아기띠와 힙시트로 보호자와 아기가 완전히 밀착한 채 내려가야 한다”고 답했다.

 

6일 서울 광진구 서울광나루안전체험관에서 진행된 ‘여성안심 재난체험’ 체험자들이 지진체험을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6일 서울 광진구 서울광나루안전체험관에서 진행된 ‘여성안심 재난체험’ 체험자들이 지진체험을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6일 서울 광진구 서울광나루안전체험관에서 진행된 ‘여성안심 재난체험’ 체험자들이 지진체험을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6일 서울 광진구 서울광나루안전체험관에서 진행된 ‘여성안심 재난체험’ 체험자들이 지진체험을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이어진 지진 체험에서는 규모 7.0의 지진을 느낄 수 있었다. 가정집으로 꾸며진 체험장에 들어선 뒤 의자에 앉았다. 이내 내부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교육생들은 “지진이야!”라고 외쳐 지진이 발생했음을 주변에 알린 뒤, 쿠션으로 머리를 보호하고 재빠르게 탁자 밑으로 숨었다. 갈수록 세지는 지진 강도에 교육생들은 “어머, 어떡해!”라며 어쩔 줄 모르기도 했다. 가구의 다리를 붙잡지 않으면 균형을 잡기 힘들 정도의 위력이었다. 침착하게 기다리니 지진이 잦아들었다. 탁자 밑에서 나온 교육생들은 가스와 전기를 차단한 뒤 머리를 보호한 채 대피했다.

김 교관은 “만약 지진이 일어났을 경우 방석이나 쿠션, 책가방 등으로 머리를 보호한 뒤 탁자나 식탁 밑에 들어가야 한다”면서 “머리를 가릴 게 마땅히 없으면 손으로라도 보호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어 “큰 흔들림이 멈출 때까지 기다린 뒤 가스, 전기를 차단하고 출구를 확보하면 된다. 그러고 나서 주변에 큰 건물이 없는 공원이나 들판, 운동장 등으로 대피하라”고 설명했다.

태풍 체험에 앞서 김 교관은 뉴스를 보여줬다. 태풍 경보가 발령됐을 때 진입이 금지된 곳에 들어간 한 남성이 구조되는 내용이었다. 이에 김 교관은 “재난 발생 시 ‘하지 말라’고 당부하는 것들은 하지 말아주시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6일 서울 광진구 서울광나루안전체험관에서 진행된 ‘여성안심 재난체험’ 체험자들이 태풍체험을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6일 서울 광진구 서울광나루안전체험관에서 진행된 ‘여성안심 재난체험’ 체험자들이 태풍체험을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태풍 체험관에 들어서자 강한 바람에 온몸이 휘청거렸다. 초속 30m의 바람에 앞으로 나아가기 힘겨웠다. 난간에 의지한 채 한 걸음 한 걸음 뗄 수 있었다. 체험관에서 나눠준 고글을 쓰지 않았다면 눈도 제대로 뜨지 못했을 것이다. 2003년 9월 발생해 특히 부산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던 태풍 매미의 풍속도는 초속 60m였다고 하니, 그 위력에 새삼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화재가 일어났을 경우에는 최대한 자세를 낮추고 이동해야 한다. 연기층 아래에 상대적으로 깨끗한 공기가 있기 때문이다. 손수건이나 옷 등을 이용해 코와 입을 막은 뒤 벽을 짚은 채 벽면 아래쪽에 설치돼있는 통로유도등을 보고 비상구를 찾아 나가면 된다. “복도와 계단을 통해 밖으로 탈출하면 됩니다. 승강기 탑승은 절대로 안 돼요. 불이 났을 땐 승강기가 굴뚝 역할을 해 그 안에 연기가 가득 들어차 있기 때문에 굉장히 위험합니다.” 김 교관의 말이다.

불이 났을 때 여성의 경우, 브래지어를 포개 끈을 이용해 얼굴에 쓰면 마스크 효과를 볼 수 있다. 교육생들은 “처음 알았다” “신기하다!”며 연신 탄성을 내질렀다.

 

6일 서울 광진구 서울광나루안전체험관에서 진행된 ‘여성안심 재난체험’ 체험자들이 화재 탈출 체험을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6일 서울 광진구 서울광나루안전체험관에서 진행된 ‘여성안심 재난체험’ 체험자들이 화재 탈출 체험을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이후 화재대피체험에 나섰다. 불빛 하나 없는 깜깜한 곳을 통과하려니 공포감이 엄습했다. 교육생들은 “앞에 장애물 있어요” “계단 조심합시다!”라고 외치면서 상황을 알려가며 앞으로 나아갔다. 이어 매캐한 연기가 나기 시작했다. 앞서 배운 대로 입과 코를 소매로 막은 채 통로유도등을 따라 이동했다. 체험이었을 뿐인데도 숨을 쉬는 데 힘이 들었다. ‘실제 화재 현장이었으면 어땠을까’ 생각하니 아찔했다.

재난 사고에서 여성 피해자 비율은 남성보다 높다. 체험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발생한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사고에서 여성 사망자 비율은 79.3%, 1995년 6월 일어난 삼풍백화점 붕괴 당시에는 78.9%, 2003년 2월 발생한 대구지하철 화재사건에서는 58.2%였다.

 

재난체험에 앞서 이희순 광나루안전체험관 관장이 ‘재난재해 관련 여성안전 실태 및 재난체험의 필요성’을 발표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재난체험에 앞서 이희순 광나루안전체험관 관장이 ‘재난재해 관련 여성안전 실태 및 재난체험의 필요성’을 발표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여성의 재난 교육이나 훈련 참여율도 남성보다 낮은 것으로 드러났다. 여성가족부의 재난 안전역량 실태조사에 따르면 ‘평생 1번 이상 재난교육이나 훈련을 받은 경험이 있다’는 여성은 53.5%뿐(남성은 81.4%)이다. ‘교육 내용 등 관련 정보를 몰라서(80.6%)’, ‘관련 교육기관이 어디인지 몰라서(78.5%)’, ‘받을 만한 교육과정을 몰라서(63.2%)’가 주된 이유였다.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서’ 재난 교육·훈련에 참가하질 못했다는 여성(6.7%)도 남성(2.7%)보다 많았다. 특히 임산부, 65세 이상 고령자, 장애인 등 여성 사회약자의 재난 교육·훈련 경험률은 압도적으로 낮다. 김동식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이 『젠더리뷰』 2016년 겨울호에 기고한 내용이다.(관련기사: 불 났는데 빠져나올 수 없다면?… 여성 위한 재난·재해 대응법)

윤준병 서울시 행정1부시장은 “여성이 재난 교육 훈련을 접할 기회가 적어 피해가 많이 발생한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재난 체험 과정을 준비했다”며 “자연재해는 위력이 강하고 한 번 발생하면 피해가 크다. 이번 기회에 재난 대처능력을 키우고 응급조치 요령을 숙지해 피해를 줄였으면 한다”고 말했다.

재난체험은 1년 내내 상시 운영한다. 서울시민안전체험관 홈페이지에서 온라인으로 신청 가능하며, 개인 혹은 가족 단위로 체험할 수 있다. 현재 서울 광진구 광나루안전체험관과 동작구 보라매공원에서 안전체험관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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