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삶에 대한 존중,

수평적인 의사소통이

바탕이 되는 조직문화에서

‘워라밸’은 싹틀 수 있다

 

 

 

최근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Work & Life balance)’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 노동시간은 2위, 국민행복지수는 33위다. 저성장 시대의 ‘불확실성’이 내일의 성장보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소확행)에 가치를 두게 한다. 높은 연봉보다 야근 없는 직장을 선호하고, 퇴근 이후에 저녁이 있는 삶을 즐긴다.

 

IT기업 오토매틱(Automattic)은 독특한 원격근무 문화로 유명하다. 50개국 550여명의 직원들은 사무실로 출근하지 않는다. 집, 카페, 코워킹 스페이스(co-working space) 등 다양한 장소에서 원하는 시간에 실시간 채팅과 영상회의로 업무를 본다. 심지어 직원을 채용할 때도 면접이나 전화 한 통 없이 오직 온라인을 통해서만 심사한다. 이렇게 해서 도대체 일이 진행될까 싶지만, 세계 웹사이트의 26% 이상이 이들이 만든 홈페이지 제작 툴(워드프레스)을 활용하는 걸 보면, 업무 효율성에 문제가 없어 보인다. 세계 곳곳을 연결하는 디지털기술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처럼 유연한 업무방식은 ‘워라밸’을 위한 환경적 토대를 제공한다. 재택·원격근무와 같은 스마트워크나 유연근무제는 탄력적으로 일과 생활을 조정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NHN엔터테인먼트는 오전 8시30분에서 10시30분 사이에서 출근시간을 선택할 수 있는 퍼플타임제를 시행해, 출근 이전이나 퇴근 이후 시간을 육아나 자기계발을 위해 쓸 수 있게 했다. 퇴근 시간이 되면 PC가 자동으로 꺼지는 시스템을 도입해 직원들의 워라밸을 지원하는 기관들도 늘고 있다.

워라밸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일터의 조직 문화 혁신이 선행되어야 한다. 3차 산업혁명 때는 대량생산을 위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관리통제형 조직 문화가 유용했겠지만, 지식과 사람, 분야가 경계 없이 초연결되는 지금 시대에는 자유롭고 열린 소통 문화가 어울린다. 기존의 것들을 융합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야 하는데 수평적인 의사소통을 할 수 없다면, 융합은 요원하다.

비교적 집단주의를 중요시했던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하고, 개인주의와 독립성이 강한 X세대와 행복과 의미에 대한 관심이 많은 밀레니얼 세대가 조직 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곧 Z세대(1995~2012년 출생자들)도 사회에 진입한다. 독일 지멘스그룹 세드리크 나이케 부회장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상사-부하라는 전통적인 지휘체계가 깨지는 다층적인 협업시스템이 구축될 것”이라고 했다. 앞으로, 세대 간 수평적 조직문화를 구현하지 못하면 좋은 인재를 구하기 힘들 것이다.

다소 파격적인 오토매틱의 원격 근무도 직원에 대한 무한 신뢰와 수평적 조직문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 팀 리더는 팀원이 제 시간에 제대로 일하는지 관리, 감시하지 않는다. 구성원의 자율성을 믿는다. 회사 내 비밀도 최소화해서, 과거 업무 기록은 물론 다른 부서 업무 내역까지 투명하게 공개한다. 국내 기업도 기존의 경직된 문화를 바꾸려 애쓰고 있다. 회장도 예외 없이 직급 대신 ‘님’으로 부르도록 하고, 30대도 임원이 될 수 있게 직급별 연한을 폐지하는 기업도 생겨났다.

최근 국민의 일과 삶 균형을 위한 국가의 정책 지원도 활발하다. 지난 1월 정부는 ‘근무혁신 종합대책’을 내놓았고, 주당 법정 최대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단축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도 국회를 통과했다. 7일에는 일·생활 균형 및 일하는 방식 혁신을 위한 국회 포럼이 출범했다.

이번 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 110주년이다. 거리로 나가 외쳤던 수많은 여성들의 노력으로, 오늘날 대부분 나라에서 여성은 선거권과 노동권을 제도적으로 보장받고 있다. 하지만 최근 미투(Me Too) 운동은 일터에서 여성의 몸이 안전하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워킹맘이나 남편들은 제도는 있지만 눈치가 보여 육아휴직을 제대로 쓰지 못한다. 수직적이고 권위적인 조직문화와 왜곡된 젠더 인식 때문이다. 워라밸은 타인의 삶에 대한 존중, 수평적인 의사소통이 바탕이 되는 조직문화에서 싹 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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