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형미의 다시 만난 세상] 여성이 정치에 이용되는 방식들
[최형미의 다시 만난 세상] 여성이 정치에 이용되는 방식들
  • 최형미 여성학자
  • 승인 2018.03.06 14:33
  • 수정 2018-03-10 18: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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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시대 아시아여성학과 여성운동의 쟁점』

장필화 외 지음, 한울엠플러스

 

『글로컬 시대 아시아여성학과 여성운동의 쟁점』 장필화 외 지음, 한울엠플러스
『글로컬 시대 아시아여성학과 여성운동의 쟁점』 장필화 외 지음, 한울엠플러스

백악관 인턴 모니카 르윈스키는 최근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의 관계가 “합의한 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주장하며 ‘미투’(Metoo·나도 말한다) 운동에 합류했다. 27세나 연상이고 세계에서 가장 큰 권력을 가진 남성에게 동의라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는 것이다. 1998년 클린턴의 ‘섹스 스캔들’은 온 미디어를 정치 포르노로 달궜다. 클린턴이 “나는 르윈스키와 섹스하지 않았다”고 국회에서 증언하자, 당시 ‘무엇이 섹스인가’가 미국 국회의 뜨거운 논쟁거리가 됐다. 클린턴은 망신을 톡톡히 당했을지언정 탄핵당하지 않았다.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타격을 입은 민주당은 결국 공화당에 정권을 넘겨주게 됐다. 클린턴은 협상의 귀재였다. 그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사이의 ‘오슬로 협정(1993)’을 중재했고 불쏘시개 같았던 중동지역에 평화의 공존을 가져왔다. 이것은 이슬람과 유대교의 공존을 의미했다.

그러나 공화당 정권이 권력을 잡자 세계정세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부시 정권은 이스라엘 편을 들기 시작했고, 가자지구는 또 다시 분쟁지역으로 변해버렸다. ‘911 사건’이 이어지고, 이슬람 국가들은 테러집단으로 규정됐다. 그뿐 아니라 미국은 이라크를 공격했고 아프가니스탄을 불바다로 만들었다. 이러한 공격에 맞서 폭력적 ‘이슬람국가(IS)’가 세워졌다. 르윈스키 사건은 그녀를 상처주었지만 동시에 전 세계의 평화공존의 흐름을 바꿔 버렸다.

정치와 섹스가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글로컬 시대 아시아여성학과 여성운동의 쟁점』에서 ‘아시아의 국가 건설과 성정치’ 부분을 쓴 사스키아 위어링가는 ‘국가가 남성들의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공동체’라는 베네디트 앤더슨의 말을 인용한다. 여성을 성적인 대상이며 헌신적이고 도덕적인 어머니 판타지로 보기를 원했던 남성들의 국가에서 여성들의 섹슈얼리티 통제는 중요했다. 위어링가 교수는 아시아 지역 국가분쟁에서 여성 강간은 상대국 정복을 의미했다고 언급한다. 여성들의 섹슈얼리티는 국가품위와 전통의 기준으로 여겨졌고, 여성들의 성적 일탈은 개인적인 일이 아니고 국가 기강을 흔드는 문제였다.

장기 독재로 악명 놓은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는 정권을 획득하는 과정에서 여성운동가들을 ‘성적으로 난잡하며 독립영웅을 살해한 여성들’이라고 거짓 선전했다. 섹스에 관한 이야기는 분노와 공포로 삽시간에 사람들을 흥분시켰고 200~300만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집단 살해당하는 사건으로 확산됐다. 살인자들은 처벌되지 않았다. 결국 수하르토는 모든 정적을 제거하고 32년간의 긴 독재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정치가들은 여성들을 유린하는 방식으로만 정치에 이용하는 것은 아니다. 때론 여성 인권을 들이밀며 자신들의 탐욕을 챙기기도 한다. 2003년 이라크 공습을 했던 미국은 미디어를 통해 지속해서 이라크 여성들의 인권 착취에 관한 방송을 내보냈다. 이슬람 지역에 대한 폭격을 여성 인권의 문제로 돌리려는 의도를 읽을 수 있었다. 그 후 이라크 지역에 대한 국제 원조는 기아로 고통 받는 아프리카 원조 규모를 넘었다. 여성들을 위한 학교가 세워졌지만, 이라크 사회는 혼란에 빠졌다. 미국의 침공은 여성인권의 문제였을까?

앞으로 미투 운동은 성역 없이 퍼져나갈 것이다. 남성들의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국가에서 여성들은 어디서나 성적인 대상이었으니까. 여성들의 대응에 화들짝 놀란 많은 남성들은 미투 운동을 겪으며 자신의 과거를 하나하나 되짚어보며 긴장할 것이다. 불편하고 위험하다는 이유로 가능한 여성들을 정치 영역에서 배제할지도 모른다. 여성이 정치가의 전문비서가 되는 것이 더 어려워질지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해결 방향이 틀린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존중받을만한 거리가 필요하다는 기본적인 원칙, 동의 없이 누구도 만지지 말라는 쉬운 원칙을 배우기 위해서 우리 사회는 이렇게 혼란스럽고 아픈 과정을 지나가고 있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모든 정치 활동을 중단하겠다고 했지만 여기서 끝날 일이 아니다. 평창 동계올림픽과 대북특사 파견으로 한반도의 긴장을 풀어가려 애쓰는 이 시점에 터진 이 일은 원하든 원치 않든 한반도 평화정책에 파급력이 클 것이다. 또한 페미니스트들을 공공연하게 좌파로 몰았던 보수집단의 부활신호탄이 될 수도 있다. 지금 남성들의 형제애와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정치계를 성역 없이 비판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동시에 남성 문화 속에서 가해자이고 어떤 면에서 피해자이기도 한 남성들을 경고하고 징계하면서도 평화와 민주화 운동의 동반자로 받아들이는 모순적이고 유연한 사고를 펼쳐야 하진 않을까? 그들은 우리의 적이며 동지이지 않은가? 우리도 함께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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