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혁의 북유럽 이야기] ‘미투’ 운동의 성공을 위해 필요한 것들
[최연혁의 북유럽 이야기] ‘미투’ 운동의 성공을 위해 필요한 것들
  • 최연혁 스웨덴 린네대 정치학과 교수
  • 승인 2018.03.06 14:16
  • 수정 2018-03-07 20: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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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통념 깰 수 없는

철옹성 같은 사회에선

불가능한 미투 운동

 

3월 4일 일요일. 스웨덴에서는 96년 전통의 바사스키경주대회(Vasaloppet)가 열렸다. 중부 지역 달라나(Dalarna) 셀렌(Sälen)에서 출발해 모라(Mora)까지 90km를 달리는 세계 최대 노르딕스키대회인 이번 대회에 유럽 및 스웨덴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참가자가 출전했다.

매년 3월 첫째주 일요일에 열리는 이 대회는 올해 1만5800명이 참가해 20개 세계노르딕스키대회 중 가장 큰 대회로 기록되고 있다. 영하 11도의 설원에서 펼쳐진 이 경기의 백미는 아침 8시 출발 장면이었다. 평창 동계올림픽의 열기가 그대로 스웨덴으로 옮겨 온 듯 상공에서 촬영한 TV화면은 출발 대기선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인간 띠가 형성돼 압도적 장면을 연출해 냈다. 죽기 전 평생 꼭 해 봐야 할 스포츠로 지목될 정도로 겨울스포츠 매니아들 간에 인기가 있어 매년 등록신청 접수 시작 몇 시간 만에 마감이 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1922년 시작된 이 스키대회는 처음부터 여성들에게 개방된 것은 아니었다. 1972년 올로프 팔메 총리 시절 세계 최초로 양성평등위원회를 정부기구로 설치한 스웨덴이었지만, 노르딕스키대회는 여전히 남성만을 위한 성역으로 여겨졌다. 노르딕스키가 워낙 체력을 많이 소모하는 경기라 정적인 여성에게는 적합하지 않은 스포츠라는 것도 여성 참가를 우회적으로 금지한 이유였다.

하지만 1978년의 에피소드는 스웨덴 사회에서 여성의 권리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결정적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90km를 완주하고 결승선을 통과한 한 선수가 TV인터뷰에서 남성 복장을 한 여성으로 밝혀지자 모두가 경악했다. 하지만 변장한 여성 선수의 인터뷰는 스웨덴 사회구성원들의 성평등에 관한 시각을 변화시키는데 큰 기폭제가 됐다.

신체적 조건의 차이로 스포츠 경기에 여성의 참여를 금지해왔던 기존 관행이 기본권의 침해와 차별에 기초하고 있음을 인정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한 여성의 용감한 인터뷰는 스웨덴이 1980년 세계 최초로 양성평등법의 제정과 성평등 옴부즈만 제도 도입에도 크게 기여한 셈이다. 결국 양성평등법 제정 후 처음 열린 1981년 바사경기부터 여성에게도 참가권을 부여하기 시작했다.

전 세계적으로 1980년대 이후 여성 스포츠가 폭발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이후 축구, 럭비, 권투, 태권도, 레슬링, 유도, 타이복싱 등 그동안 여성에게 금기시됐던 체육 분야에서도 여성들의 참여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남성 전유물이었던 스포츠를 이제는 남녀 구분 없이 즐길 수 있는 시대가 됐다. 남녀 혼성 경기도 속속 생겨나 이제는 스포츠 분야에서 성별 경계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1970년대 이전과 비교하면 참으로 상전벽해를 실감하게 된다.

하지만 아직도 세계의 많은 여성들이 남성이 만들어 놓은 울타리에서 갇혀 살고 있다.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여성에게 고통을 강요하고, 종교의 이름으로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는 사회도 아직 세계 구석구석 존재한다. 『여성과 전쟁』이라는 책에서 힐러리 매트페스(Hilary Matfess)는 일부다처제와 같은 결혼제도의 문제가 아프리카와 중동에서의 테러 확산의 원인으로 보았다. 돈과 권력이 있는 소수가 여성을 독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증오와 복수심으로 가득 찬 사회 소외세력을 극단적 선택으로 내몰고 있다고 연구에서 제시하고 있다.

지금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미투(Metoo) 운동은 사회적 통념을 깰 수 없는 철옹성 같은 사회에서는 거의 불가능하다. 결국 미투 운동은 잘 사는 자유국가에서의 사회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아프리카, 중동, 남아메리카 등 경제적으로 낙후되거나 전통적 신분사회, 독재국가, 종교국가에서는 아직도 요원하게 느껴진다.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미투 운동 역시 큰 획을 긋는 역사적 대 사건이다. 하지만 전 세계적 관점에서 보면 아직 제대로 시작도 못 한 격이다. 1789년 윌리엄 윌버포스의 노예 무역 금지를 위한 연설, 그리고 1852년 헤리엇 비처 스토가 쓴 『톰아저씨의 오두막집』이 없었다면 1863년 링컨의 노예해방선언은 아마도 훨씬 더 늦은 시기에 실현됐을지 모른다. 미투 운동이 패러다임의 변화를 통한 세계운동으로 확산되기 위해서는 인간해방과 자유에 대한 철학운동과 문화적 자각운동이 함께 수반돼야 가능하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미투 운동이 상대적으로 잘 살고 개방적 사회로 이행되고 있는 사회에서만의 운동으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아마르티야 센이 주장하는 여성의 교육, 경제적 자유와 능력을 위한 자원공급이 중요하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무거운 마음으로 맞이하는 이유는 아마도 미투 운동이 아직 제대로 시작도 못한 곳이 너무 많기 때문이 아닐까?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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