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임금 ‘37만원’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여성의 임금 ‘37만원’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 이세아 기자
  • 승인 2018.03.06 01:47
  • 수정 2018-03-09 09: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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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이 일해 봤자 여성들은 3시부턴 무임금!’ 매년 세계여성의날을 맞아 여성 노동자들이 외쳐온 구호는 올해도 반복된다. 한국은 올해도 OECD 내 여성과 남성의 임금 격차가 가장 큰 나라라는 오명을 벗지 못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똑같이 일해 봤자 여성들은 3시부턴 무임금!’ 매년 세계여성의날을 맞아 여성 노동자들이 외쳐온 구호는 올해도 반복된다. 한국은 올해도 OECD 내 여성과 남성의 임금 격차가 가장 큰 나라라는 오명을 벗지 못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당신이 여자라서 못 받은 37만원...세계여성의날 돌아본 ‘임금실종’

한국 여성들의 잃어버린 임금 ‘37만원’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여성이 남성과 같은 일을 하고도 돈을 적게 받는 현상은 전 세계적인 문제지만, 그 중에서도 최악의 나라로 꼽히는 게 한국이다. 한국 여성들은 말 그대로 ‘여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임금을 덜 받고 있었다. 여성의 평균 근속연수가 짧다는 이유로 발생하는 임금차별이 정말 ‘합리적’인가도 고민할 문제다. 결혼과 출산을 이유로 여성의 경력단절을 강요하는 사회, 박봉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여성들이 한국 경제의 밑바닥을 지탱하는 구조가 진짜 문제다. 

 

OECD 내 성별임금격차 ‘만년 1위’ 한국

OECD 평균보다 2배 이상 높아

6년째 ‘여성이 일하기에 최악의 나라’ 오명

유사 업무 해도 남성 1만원 벌 때 여성 5100원

최근 조사 결과 한국 여성은 남성보다 임금을 37%P 덜 받고 있다. 한국 남성이 100만원을 받을 때 여성은 63만원만 받는 셈이다. OECD 평균 성별임금격차가 16%로, 한국의 순위는 조사대상 33개국 중 최하위였다. 지난 5일 글로벌 회계컨설팅 업체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 (PwC)’ 발표 내용이다. 

지난달 17일 영국 ‘이코노미스트’지가 발표한 ‘2018 유리천장 지수’ 결과도 비슷하다. 한국 여성의 임금이 남성보다 36.7%P 적었다. OECD 평균이 14.2%였다. 성별임금격차, 여성 고위직 진출률 등을 모두 고려해보니 한국은 조사 대상 29개국 중 ‘여성이 일하기에 최악의 나라’였다. 6년째 꼴찌 신세다.

지난해 11월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2017 성별격차지수(Gender Gap Index)도 한국 여성이 일터에서 받는 차별이 심각함을 보여준다. 이 지수는 남성의 지위를 1로 놓고 그에 대한 여성의 지위를 평가해 1에 가까울수록 평등함을 뜻한다. WEF에 따르면 한국의 성별격차지수는 0.650, 조사 대상 144개국 중 118위다. 세부 지표 중 ‘경제 참여 및 기회’ 부문은 0.533(121위)로 매우 낮았다. 이 부문 세부 요소인 ‘유사 업무의 성별임금격차’는 0.510(121위)을 기록했다. 기업 최고경영자나 대표들을 설문조사한 결과로, ‘비슷한 직무여도 남성에겐 1만원을, 여성에겐 5100원을 준다’는 답변이 나온 셈이다. 

2016년 고용노동부 자료를 보면, 임금근로자 1인 이상 규모의 사업체에 종사하는 남성 월평균 임금은 291만8000원, 여성 월급은 186만9000원이었다. 여성의 월급이 남성의 64.1% 수준이다. 김난주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이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2016년 8월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시간당 임금 기준으로 여성은 평균 5534원을 남성보다 덜 받고 있었다. 이렇게 격차가 벌어지는 이유가 뭘까? 

 

“설명할 수 없는 성차별이 여성 임금 실종 주 원인”

15-29세 청년 성별임금격차 “전적으로 차별 때문”

성별임금격차의 원인은 크게 ‘차이’와 ‘차별’로 나뉜다. ‘차이’란 교육, 경력, 직종 분리, 전일제와 시간제 근로 차이, 기업 규모와 노조 결성 등 ‘합리적’ 이유로 인한 임금격차를, ‘차별’은 단지 ‘여성’이라서 임금을 덜 받는다는 것을 뜻한다. 

한국의 경우는 어떨까. 김난주 부연구위원에 따르면, ‘차별’로 인한 임금격차(63.7%)가 ‘차이’로 인한 임금격차(36.3%)를 압도했다. 같은 일을 해도 여성은 특별한 이유 없이 시간당 3524원을 덜 받았다. 

특히 15-29세 집단의 성별임금격차는 “전적으로 차별 탓”이었다. 청년 남성은 합리적 이유 없이 시간당 984.9원을 더 받았다. ‘남성 프리미엄’이라고밖엔 설명하기 어렵다. 전 연령대를 통틀어 15-29세 집단에서 이런 현상이 가장 두드러졌다. 교육 수준·근속년수·직종 등의 영향을 따져보면 청년 여성의 시간당 임금이 남성보다 454.3원 더 높았으나, ‘남성 프리미엄’을 능가하진 못했다. 결국 청년 여성은 동갑내기 남성보다 시간당 530.6원 적게 받고 있었다. 김 부연구위원은 “이는 다른 연령대에서 나타나는 성별임금격차보다 매우 작은 격차지만, 그 절대적 원인이 차별이라는 것은 유사한 일을 해도 단지 청년 여성이란 이유로 차별받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력단절도 여성 임금 낮추는 주요 요인

비정규직은 저임금 산업에 여성들 몰리는 경향도

‘간호사 첫 월급 36만원’ 등 여성 집중 직종의 저임금 문제 심각

여성비중 ↑ 영세사업장 노동조건도 개선해야

2101원의 임금 차이를 낳는 ‘합리적 임금차별 사유’도, 면면을 뜯어보면 성차별이 근본적인 원인인 경우가 많다. 이런 사유 중 ‘근속연수’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결혼·임신·출산·육아로 경력단절된 여성들이 꾸준히 경력을 쌓은 남성들보다 적게 버는 건 당연하다. 

또 여성들이 주로 종사하는 직종 가운데에는 저임금과 열악한 근로조건 문제로부터 자유로운 곳이 드물다. 비현실적인 임금을 받아온 여성들이 최근 단체로 이 사실을 고발하기도 했다. 서울대병원, 고려대병원, 한양대병원 등이 간호사들에게 발령 전 14~24일 기준 첫 월급으로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20~36만원을 지급해온 사실은 당사자들의 고발로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다뤄졌다. 성심병원에선 간부들이 재단 행사에서 간호사들에게 노출 의상을 입고 선정적인 춤을 추도록 강요하는 등 직장 내 성희롱이 수차례 일어났다는 폭로가 나왔다. 고용노동부가 근로감독에 나섰지만, 간호사들만의 일이 아니라는 목소리도 나왔다. 김난주 부연구위원은 “여성 집중 직종의 임금 현실화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12월 2일 서울정부청사 앞에서 간호사들이 저임금, 직장 내 성희롱 등 열악한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시위를 열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지난해 12월 2일 서울정부청사 앞에서 간호사들이 저임금, 직장 내 성희롱 등 열악한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시위를 열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여성 종사자 비중이 높은 소규모 사업장의 노동조건은 대체로 열악하다. 5인 미만 사업장은 현행법상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고, 정기적 직업교육훈련 기회나 노동조합도 갖추지 못한 경우가 많다. 일정 수준의 여성 노동자·관리자를 고용하도록 유도하는 적극적 고용개선조치(AA) 제도도 상용근로자 500인 이상 사업체에만 적용된다. 소규모 사업장에선 기업이 출산휴가·육아휴직 등 모성보호제도 운영비용을 피하기 위해 여성을 정규직이 아닌 단기 계약직으로만 채용하는 일도 많다. 한국여성노동자회는 “여성들이 많이 종사하는 직종의 열악한 노동조건, 승진 차별과 성희롱 등 요인이 결혼·임신·출산·육아와 상호작용해 여성의 경력단절을 부추긴다”고 지적했다. 

비정규직의 경우, 여성들이 저임금 산업에 몰리는 현상도 여성의 임금을 낮춘 주 요인이었다. 김태홍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고용노동부의 2015년 고용형태별 근로행태조사를 분석한 내용을 보면, 비정규직 성별임금격차는 경력보다 ‘산업’ 영향이 더 컸다. 

기존 법제도를 엄격하게 집행하면 여성의 임금을 줄이는 몇몇 요인을 개선할 수 있다. 김 부연구위원은 성별임금격차를 해소하려면 무엇보다도 여성의 경력유지가 중요하다며 “근로기준법, 남녀고용평등과일·가정양립지원에관한법 등 엄격한 법 집행”을 주문했다. ▲5인 미만 사업장 근로 조건 관리·개선 ▲여성근로자 친화적인 직업교육훈련 증가와 적극적 참여 유도 ▲노동조합 등 노동자 대표기구 사내 설치 유도 등도 제시했다. 

 

지난해 3월 8일 세계여성의날을 맞아 광화문 광장에 모인 여성 노동자들이 노동 조건 개선과 사회에 만연한 성차별 근절을 요구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지난해 3월 8일 세계여성의날을 맞아 광화문 광장에 모인 여성 노동자들이 노동 조건 개선과 사회에 만연한 성차별 근절을 요구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한국 성인 남성이라면 이런 얘기들에 코웃음 칠지도 모른다. 한국 여성의 교육수준은 세계적으로도 높고, 공무원, 교육계, 법조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약진하는 여성의 수도 꾸준히 늘고 있다. 2001년 여성부 창설 이래로 AA제도를 포함해 여성의 사회적 진출을 늘리기 위한 여러 법제도가 마련됐다. 일각에서 ‘여성상위시대’ ‘여성들이 노력은 않고 사회만 탓한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그러나 성별임금격차는 허상이 아니다. 여성의 노동을 헐값으로 여기는 성차별, 여성의 낮은 경제활동 참가율, 출산과 양육으로 인한 경력단절, 여성의 비정규직화와 저임금화, 돌봄에 대한 낮은 처우 등이 긴 시간 쌓인 결과다. 통계의 문제가 아니라 여성의 생계가 걸린 일이며, 지속가능한 경제 발전의 주춧돌을 흔드는 문제다. 전문가들이 “고용주, 노동자, 정부가 함께 나서지 않으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지적하는 이유다.  

올해도 여성들은 ‘잃어버린 임금’을 찾아서 광장에 모인다. 한국여성노동자회 등 여성단체와 페미니스트들은 8일 오후 3시 조기퇴근 후 서울 광화문광장 일대에 모여 시위와 행진을 할 예정이다. ‘3시 STOP 공동행동’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돈을 덜 받을 뿐 아니라 입직과 승진 차별, 성희롱, 경력단절과 저임금·비정규직을 경험하는 여성의 삶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은 분들과 함께하겠다”라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성별임금격차를 지표로 관리하고 임금격차 현황 보고를 의무화하는 ‘성평등임금공시제’를 내세웠고, 국정과제 5개년 계획에도 이를 명시한 바 있다.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 추진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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