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김연순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무총장

여성단체·협동조합 거치며

지역과 호흡한 운동가 출신

돌보고 보듬고 살려내는

‘살림 리더십’ 기대

전통 모금·배분 방식 벗어나

성평등·사회적 경제 등

다양한 영역과 접점 늘려야

‘기부 불신’ 없애려면

정보공개로 투명성 높여야

소액 개인 기부와 일반기탁,

정기기부가 늘어나야

‘나눔 문화’ 안착할 수 있어

 

김연순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무총장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김연순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무총장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국내 최대 규모의 법정 민간 모금·배분 기관의 사무총장에 여성이 선임됐다. 김연순(54)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이하 공동모금회) 사무총장은 연간 5000억원이 넘는 규모의 성금을 소외된 이웃을 위해 배분하고, 효율적인 조직 운영까지 총괄하게 됐다. 김 총장이 ‘나눔 문화’ 확산에 온기를 불어 넣을 수 있을지 기대가 크다.

김 총장은 25년 전 동북여성민우회 활동을 시작한 여성운동가이자 협동조합운동가다. 여성단체와 사회적 경제 영역에서 활동한 그는 지역사회 현안을 찾아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일에는 ‘베테랑’이다. 사람과 지역을 돌보고 보듬는 ‘살림 리더십’을 발휘했던 그에게 국민들의 성금을 모아 소외된 이웃을 돌보고 지원하는 공동모금회의 ‘살림’이 맡겨진 것이다. 그도 사무총장을 맡기로 결심한 이유에 대해 “그동안의 활동과 모금회 역할은 방식만 달라졌을 뿐 모두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지역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랑의 열매’로 상징되는 공동모금회는 지난 98년 설립된 국내 최대 규모의 법정 민간 모금·배분 기관이다. 국민들의 성금을 모아 빈곤·질병·소외 등으로 고통받는 이웃을 위해 배분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5996억원의 성금이 모였다. ‘기부 한파’에도 2016년 모금액인 5742억원보다 254억원(4.4%) 늘었다. 이렇게 모인 성금은 2017년에 5,803억원이 기관 3만489개소와 개인 48만5371명에게 배분됐다. 개인 기부자 가운데 아직은 여성보다 남성이 더 많다. 2016년 기준 전체 기부자 57만9719명 중 여성은 33%인 19만1419명이다.

창립 20주년을 맞는 올해, 공동모금회는 변화와 재도약의 기로에 서있다. 하지만 상황이 그리 좋진 않다. 희소병 딸의 기부금 12억원을 챙긴 ‘이영학 사건’으로 기부에 대한 불신감이 커졌고, 일부 직원의 횡령 등 비리가 드러나며 모금·배분 기관에 대한 신뢰도 땅에 떨어졌다. 최근 불거진 국제 구호단체 직원들의 성매매 논란이 다른 기관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지만 위기는 곧 기회라고 했다. ‘기부 불신’이라는 현안을 배분의 투명성 제고와 개인 기부 활성화를 통해 해결하고 나눔문화 확산으로 이어나갈 수 있는 적기라는 것이 김 총장의 판단이다. 그러면서 그는 “성평등, 사회적경제 등 다양한 의제와의 접점을 늘려나가는 것이 곧 공동모금회가 살 길”이라고 했다. 여러 혁신 의제와 만나는 통로가 되는 것이 본인의 역할이라는 말도 강조했다.

하지만 김 총장은 마냥 서두르지는 않을 생각이다. “조직원들과 숙의를 거쳐 합의”하는 과정을 통해 안에서의 변화를 만들어가겠다고 했다. “중앙 중심의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한 일도 있지만 그것이 가진 한계가 있어요. 더디가더라도 다수와 함께 그들의 뜻이 반영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재확인하는 과정이죠.”

김 총장은 남들은 ‘핸디캡’이라고 말하는 자신의 특징도 오히려 공동모금회를 변화시킬 ‘키워드’로 받아들이고 도약을 준비하고 있었다.

“한 지인이 공동모금회 사무총장으로서 3가지 ‘핸디캡’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이 바닥(사회복지) 사람이 아니고, 여자이며, 나이가 어리다고요. 그 말을 또 다른 지인에게 들려줬더니 오히려 그 3가지가 장점 아니냐고 되묻더군요. 실제로 공동모금회는 처음 문을 열 때부터 성별에 상관없이, 사회복지를 비롯해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함께 만든 기관이거든요. 이제 공동모금회의 변화의 가능성에 대해 알리고 싶어요. 많은 분들이 변화를 위해 함께 도와주세요.”

 

김연순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무총장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김연순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무총장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2월 5일 임기를 시작했다. 조직 변화를 위해 취임 뒤 바로 시행한 것이 있나.

“집행을 위해 혼자 결정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 숙의 끝에 합의하는 것이 중요하고 집행은 빠르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조직원과의 합의가 중요하다. 오자마자 창고로 쓰이던 여직원 휴게실을 복구했다. 처음 내부에선 휴게실이 사무실 중앙에 있어 눈치가 보여, 만들어놔도 사용하는 사람들이 적을 것이라고 하더라. 저는 눈치보지 않도록 하는 문화를 만드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처음엔 이용하는 사람이 없더니 1주일만에 크게 달라졌다. 요즘엔 임산부들도 잠시 쉬고 여기서 차를 마시는 등 활발하게 이용된다. 문화를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또 하나는 성인지교육을 포함한 성희롱 예방교육이다. 조직원을 한 자리에 모아 하는 집체 교육은 효과가 낮다. 그래서 관리자와 평직원을 나눠 교육하기로 했다. 관리자 교육은 워크숍 방식으로 진행하고, 중간관리자 교육 따로, 평직원 교육은 그룹을 나눠 소규모로 진행할 예정이다. 앞으로는 공동모금회 직원으로 정체성을 환기시킬 수 있는 교육도 진행할 계획이다.”

-25년 넘게 여성운동가이자 협동조합운동가의 길을 걸었다. 그동안의 활동이 공동모금회에 어떻게 발현될 수 있을까.

“공동모금회가 그동안 많은 작업을 해왔지만 한편으론 전통적인 사회복지 영역과 많이 일하다보니 다른 수많은 의제와 만나는 것이 부족했다고 본다. 서울만 하더라도 마을공동체, 사회적경제에 관심이 늘고 있고, 도시재생과 주민자치, 성평등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이러한 다양한 의제와 공동모금회가 어떻게 하면 활발하게 만날 수 있을지를 생각하는 것이 공동모금회가 살 길이라고 생각한다. 성평등, 사회적경제 등 다양한 혁신의제와 만나는 통로가 되는 것이 제 역할이라고 본다.”

-공동모금회가 사회적경제와 접점을 늘리기 위한 방안은.

“여러 배분 사업 중에는 일회성으로 끝나는 경우도 있는데,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은 안된다. 필요한 경우, 자립이 가능한 방향으로 사업이 기획돼야 한다. 사회적경제 영역에서 그런 지점을 배울 수 있다. 예를 들면, 고령사회로 빠르게 진입하면서 늘어나는 1인 가구, 빈곤한 노인가구는 정서적 외로움으로 인한 자살률이 높다. 경제적 압박감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이러한 문제는 그룹홈이나 주택단지를 짓는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다. 개인적 삶을 보장하면서 식당, 거실을 공유하는 방식은 질병이나 소외를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이다. 큰 돈이 필요한 사업이기 때문에 기업의 기부로 고령자를 위한 집을 짓는 방식도 고려할 수 있다. 현안을 찾아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찾아, 사회 변화를 끌어갈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 일회성 지원보다는 자립할 수 있도록 지속가능한 사업 방식을 찾고, 공동체를 지향하는 것이 공동모금회가 사회적경제와 접점을 늘리는 방법 중 하나다.”

-여성운동에 뛰어든 계기는.

“대학 때 처음 여성학을 접하고, 이효재 선생님 책을 읽으며 여성운동에 눈을 떴다. 대학 졸업 직후인 87년 결혼해 바로 아이들을 낳았다. 임신과 출산은 사람을 크게 변하게 하더라. 스물다섯 살 또래들이 일을 하고 운동에 뛰어들 때 나는 아이를 키워야 한다는 사실이 받아들이기 힘들었고, 도태되는 것 같고 우울했다. 자신감도 잃었다. ‘쓰임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으로 아기가 쪽잠을 잘 때 신문과 「또 하나의 문화」를 읽고 또 읽었다. 그 시간이 내가 숨쉬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그러던 90년 어느 날, 신문에 실린 민우여성학교 모집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아기를 돌봐준다는 글귀에, 바로 아기는 업고 우윳병, 기저귀를 넣은 가방을 둘러메고 상계동에서 충정로 민우회 사무실까지 갔다. 처음이라 조심히 계단을 올라가는데, 발자국 소리에 활동가들이 아랫층까지 내려와 고생했다면서 반겨주고, 우는 아기도 달려줘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줬다. 그때 ‘내가 기댈 곳은 여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의 경험은 나중에 아기 엄마들과 활동을 하면서 엄마들이 처음엔 얼마나 주눅이 드는지, 왜 갑자기 약속을 미루는지 이해하게 됐다. 당시 민우회 활동가들에게 받은 만큼 엄마들에게 돌려주게 되더라.”

-공동모금회 ‘사랑의 온도탑’이 지난 2월 101.4도(약 4045억원)로 마무리됐다. ‘기부 한파’ 중에도 목표액을 달성했고 총액은 전년도 보다 늘었지만, 과거보다 달성률은 저조하다.

“경제 상황이 어렵다는 점과 함께 내가 낸 기부금이 잘 쓰일지에 대한 불신이 있다. 한 번 그러한 사건이 터지면 일파만파로 커지기 때문에 미리 철저하게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모금 방법론도 개발해야 하지만 기부금이 투명하게 쓰이는지 시민들과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다. 조직 내 문화나 분위기는 따뜻해야 하지만 일은 프로답게 철저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하는 일이라 사고가 날 수는 있다. 다만 그것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어떻게 하면 그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배분의 투명성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방법은.

“공동모금회의 내부 시스템은 마련돼 있다.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준법감사실이 조직 내부를 감사하는 기능을 한다. 시민감시위원회는 조직이 잘 운영될 수 있도록 감시하는 기능을 한다. 민간기관이지만 모든 자료는 보건복지부 감사를 받게 돼 있고, 필요에 따라서 국정감사도 받는다. 기본적인 시스템은 갖춰져 있는 셈이다. 이 외에도 개인이 자신의 기부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바로 알 수 있는 시스템 마련을 고민하고 있다. 또 정부와도 대등한 관계로 협업하며 잘 논의해나가야 한다. 특수한 민간법인으로서 정부와 사회문제를 공동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협업할 수 있는 기관으로 안착해야 한다.”

-공동모금회가 올해 창립 20주년을 맞는다. 나눔 문화 확산을 위해 구상하고 있는 방안은.

“비전위원회를 구성해 모금회의 평가를 통해 과제를 도출하고 비전을 세울 예정이다. 그동안 모금 총액을 늘리는 것이 공동모금회의 중요한 기조였다. 모금 총액을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양적 성장은 유지하되 질적 성장을 담보하는 방안도 함께 논의할 생각이다. 현재 각 부서장이 머리를 맞대고 개인 기부 활성화 방안에 대해 논의 중이다. 사람들은 ‘기업들이 알아서 줄서는데 무슨 걱정이냐’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 기업에 잘 요구하고 기업들이 만족할 수 있는 피드백을 주는 것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나눔 문화가 안착하기 위해선 소액 개인 기부가 활성화돼야 한다. 누구나 공동모금회에 기부할 수 있다는 사실부터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시민들한테 이런 부분부터 알리는 것이 필요하다. 흔히 모금회를 모금·배분 기관의 ‘빅 브라더’라고 표현하더라. 최대 모금·배분기관으로서 작은 모금배분기관과 어떻게 협업하고 지원할 것인지도 논의해야 한다. 모금회가 모금·배분기관들의 우산이 아니라 그릇이 됐으면 좋겠다. 모금회가 갖고 있는 규모나 힘을 이용해 다른 기관들과 함께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한다.”

 

김연순 사무총장

상명여대(현 상명대) 사학과를 나와 경희대 NGO대학원에서 시민사회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서울사이버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공부했다. 1990년 한국여성민우회에 가입해 92년 한국여성민우회의 첫번째 지부인 서울동북여성민우회를 함께 만들었다. 그는 만 11년을 동북지부에서 상근 활동하며 간사를 거쳐 대표를 맡아 이끌었다. 이후 그는 한국여성민우회생협 이사장, 행복중심생협연합회 회장, 행복중심협동조합지원센터 이사장을 등을 지내며 여성운동가이자 협동조합운동가의 길을 걸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