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폐지를 위해 결성된 연대체,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이 지난해 12월2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낙태죄 폐지를 위한 2017 검은 시위 ‘그러니까 낙태죄 폐지’를 열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낙태죄 폐지를 위해 결성된 연대체,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이 지난해 12월2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낙태죄 폐지를 위한 2017 검은 시위 ‘그러니까 낙태죄 폐지’를 열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여성들은 언제야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중절을 할 수 있을까? 7년 전, 한 산부인과 의사 단체가 임신중단 수술을 한 병원 세 곳을 검찰에 고발한 후 인공 임신중절은 여성들에게 실현하기 어려운 과제가 됐다. 거의 사문화되다시피 하던 ‘낙태’죄(형법 269조, 270조)가 갑자기 현실로 나타났다. 몸을 사리는 산부인과 앞에서 여성들은 해외에까지 나가 임신중절을 할 병원을 찾아 헤매야 했다. 시술 비용은 치솟았고, 시술을 제공하는 병원이 안전한 곳인지 정보를 나누기조차 어려워졌으며, 시술한 의사와 본인까지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공포에 임신중절은 극도로 위험한 결정이 됐다. 또한 당시 정부는 저출산 위기라는 미명하에 출산율 증가 정책의 하나로 ‘낙태’ 방지 등 태아를 포함한 모든 생명을 존중하는 사회적 여건을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사회적 배경까지 더해져 임신중절은 2009년~2010년 전후로 갑자기 윤리적, 사회적 영역에서 급속도로 문제화됐다. 

임신중절의 문제는 쉽게 ‘태아의 생명권 대 여성의 선택권’ 사이의 결정이라고 이해하는 이들이 많다. ‘낙태’죄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태아의 생명권이 무엇보다 우선이며, 여성의 임신중절 결정은 태아의 생명권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실의 여성들은 임신의 지속과 중단을 결정하는 과정을 단순히 태아의 생명권 침해와 보호라는 이분법으로 여기지 않는다. 여성들에게 임신은 태아의 건강만이 아닌, 출산 이후 아이를 건강하고 안전하게 낳아 기를 수 있는 사회경제적 여건이 되는지에 대한 고민으로 존재한다. 임신중절이 태아의 생명권을 침해하기에 존속해야 한다면 국가와 법은 그러한 생명을 임신 과정뿐 아니라 그 이후에까지 절대적으로 보호하고 책임질 의무를 져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법은 그러한 책임을 담보하고 있지 못하다.

현실적으로 우리 사회는 임신중절이 ‘태아의 생명권 대 여성의 선택권’으로 고민될 여건을 제공한 적조차 없다. 임신과 출산은 자연스럽고 신성한 것으로만 어렴풋이 그려졌을 뿐, 임신을 둘러싼 전후 과정과 양육을 실제로 사회가 어떻게 책임져야 하는지에 관한 논의는 존재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임신한 여성이 아이를 어떻게 낳고 키울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과 불안은 오롯이 그 여성의 책임이 됐다. 이로 인해 결혼 제도의 바깥에서 임신한 여성의 경우 출산은 선택할 수 있는 고민조차 되지 못했다. 이처럼 생명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뒤로 한 채 인공 임신중절만이 불법이 된 현 상황은 수많은 여성들에게 위험하고 위생적이지 못한 인공 임신중절 수술을 감내하게 했다. 

현행법이 모든 임신중절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모자보건법 14조는 인공 임신중절이 허용되는 예외 조항을 두고 있는데 이에 따르면 여성의 임신중절은 1)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2) 본인이나 배우자가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3) 강간 또는 준강간에 의하여 임신된 경우 4) 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혈족 또는 인척간에 임신한 경우 5) 임신의 지속이 보건의학적 이유로 모체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고 있거나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 합법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 그러나 이 조항들은 근본적으로 ‘낙태’죄 유지 합헌결정의 근간이 되는 태아의 생명권 인정과 배치되기에 모순적일 뿐 아니라, 임신중단의 기준을 국가가 자의적으로 선별하여 허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다. 또한 현실적으로 강간 또는 준강간 피해로 인한 임신중절은 그 피해 입증이 어려울 뿐 아니라, 여성이 성폭력이라고 받아들이는 경험의 범위가 법이 정한 강간 또는 준강간죄에서 성폭력으로 규정하는 행위의 범위에 비해 넓다는 점에서도 한계가 있다. 

무엇보다 모자보건법 예외조항은 너무나 협소하여 현실의 여성들은 여전히 임신중절을 고민할 때 처벌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한국 사회는 과거 경제성장 단계에서 국가 주도로 강력한 출산율 감소 정책을 추진한 바 있다. 당시에도 ‘낙태’죄와 임신중절을 비난하는 여론이 존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성장이 더 중요한 과제라는 인식하에 정부는 임신중절을 암암리에 허용했다. 또 인구조절 정책을 합법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낙태’죄의 예외조항을 두는 모자보건법을 제정했다.

이처럼 과거를 뒤돌아보면 국가는 ‘낙태’죄 적용 여부를 시대적 필요에 의해 판단해 왔다. 태아의 생명권은 물론이거니와 여성의 몸과 안전에 대한 가치가 시대적 조건에 의해 자의적으로 유지돼 온 것이다. 국가 스스로 인구조절이라는 사회적 목적을 근거로 임신중절을 허용했음에도 오늘날 개인의 임신중절은 불법으로 감시되고 있는 현실은 모순적이다. ‘낙태’죄의 유지는 여성의 사회적 권리를 지속적으로 침해하고 결과적으로 여성의 몸과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우리는 더 이상 이러한 현실을 보고만 있어서는 안 된다. 임신중단은 누구에게나 안전하고 합법적으로 제공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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