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Me Too, 이제 국회가 응답할 차례!’ 토론회가 열렸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지난달 2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Me Too, 이제 국회가 응답할 차례!’ 토론회가 열렸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미투운동이 이어지며 정치권이 앞다퉈 성범죄 해결을 촉구하고 나섰다. 정작 ‘자기 반성’은 부족하다. 성범죄의 근간인 여성혐오가 뿌리내리지 않은 곳이 없고 과거부터 정치권에서도 여러 폭로가 터져 나왔지만, 자신들을 돌아보기는커녕 성범죄를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모양새다.

최교일 자유한국당 의원은 검찰국장 시절 안태근 전 법무부 국장의 성추행 사건 감찰을 무마하려 시도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에 대해 자유한국당은 아무런 공식 언급을 하지 않았다. 원내대변인인 신보라 의원은 최 의원 관련 폭로가 나온 지 사흘만인 지난달 31일 ‘미투 캠페인 확산에 주목하며, 갑질 성범죄 근절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제목의 논평을 발표했으나 최 의원에 대한 직접적 언급은 없었다. 더불어민주당도 당 내 성범죄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아 비난받았다. 지난해 민주당 부산시당 고문단 내 성추행 사건, 2013년 성희롱으로 고소당해 피해자들에게 사과했던 손한민 씨가 민주당 청년위원회 부위원장과 서울시당 청년위 부위원장직 등 주요 보직을 맡아온 일 등이 뒤늦게 알려지자, 그제야 윤리위를 소집하고 가해자를 보직 해임했다. 

‘성폭력 2차 피해 방지 원칙’에 무지하거나 아예 무시하는 듯한 태도도 보였다. 장제원 자유한국당 수석대변인은 지난 19일 더불어민주당 부산시당 성추행 의혹 사건 관련 논평에서 피해자의 동의 없이 피해 사실을 적나라한 표현으로 기술해 파문을 낳았다. 

성폭력 말하기에 낡은 ‘진영 논리’를 들이대기도 한다. 피해자들의 힘겨운 폭로가 ‘보수 진영을 음해하기 위한 운동’, ‘문재인 정부와 진보 진영을 겨냥한 공작으로 변질될 것’이라는 음모론이 최근 동시에 나와 반발을 샀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당이 국회 상임위원회 보이콧에 나선 지난 7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우리 당의 최교일·권성동 의원을 엮어보려는 시도는 어설픈 시나리오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채용 비리 수사 외압 의혹에 휩싸인 권성동 법제사법위원장과, 성추행 사건 은폐의혹을 받고 있는 최 의원에 대한 비판이 ‘여권의 정치공작’이라는 주장이다. 홍준표 대표도 24일 페이스북에 “똑같은 방법으로 내가 하지도 않았던 45년전 하숙집에서 일어났던 사건을 쓴 자서전을 두고 아직도 나를 성범죄자로 거짓 매도 하는 저들” “우리 당 국회의원을 음해하기 위해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 소위 미투 운동이....”라며 음모론인 양 적었다. 홍 대표는 지난해 대선 후보 시절, 과거 약물을 사용한 성범죄 모의에 가담했다는 고백을 자서전에 쓴 일로 사퇴 요구를 받았음에도 대선을 완주한 바 있다. 

 

“‘미투’ 운동을 공작의 사고방식으로 보면, 섹스는 주목도 높은 좋은 소재이고, 진보적 가치가 있다. (어떤 세력이) 피해자들을 좀 준비해 진보 매체에 등장시키고, 문재인 정부의 진보적 지지자를 분열시킬 기회로 생각할 것이다. 결국 문재인 정부, 청와대, 진보적인 지지층이 타겟이다. 최근 댓글 공작 흐름이 그리로 가고 있다. 올림픽 끝나면 틀림없이 그 방향으로 가는 사람과 기사들이 몰려나올 것이다.” 방송인 김어준 씨가 지난 24일 ‘김어준의 다스뵈이다 12회’ 중 한 말이다. ⓒ유튜브 영상 캡처
“‘미투’ 운동을 공작의 사고방식으로 보면, 섹스는 주목도 높은 좋은 소재이고, 진보적 가치가 있다. (어떤 세력이) 피해자들을 좀 준비해 진보 매체에 등장시키고, 문재인 정부의 진보적 지지자를 분열시킬 기회로 생각할 것이다. 결국 문재인 정부, 청와대, 진보적인 지지층이 타겟이다. 최근 댓글 공작 흐름이 그리로 가고 있다. 올림픽 끝나면 틀림없이 그 방향으로 가는 사람과 기사들이 몰려나올 것이다.” 방송인 김어준 씨가 지난 24일 ‘김어준의 다스뵈이다 12회’ 중 한 말이다. ⓒ유튜브 영상 캡처

방송인 김어준씨도 지난 24일 자신의 팟캐스트 방송 ‘다스뵈이다’에서 “미투 운동을 공작의 사고방식으로 보면… (어떤 세력들이) 피해자들을 좀 준비시켜서 진보 매체에 등장시키고, 문재인 정부의 진보적 지지자들을 분열시킬 기회”라고 주장했다.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이를 비판하며 페이스북에 “피해자들의 인권 문제에 무슨 여야나 진보 보수가 관련이 있냐”고 썼다. ‘상식적인 견해’라는 지지 의견이 많았으나 비난과 조롱도 쏟아졌다. 일부 민주당 관련 인사들도 가세했다. “시사에 대한 약간의 상식과 고2 국어 수준의 독해력이 필요한 문장이었지만 이렇게 해석이 분분할 줄 몰랐다”(손혜원 의원) “난독증도 이런 난독증이 없네. 뜨고 싶었나. 그러니까 가끔 뉴스공장에 불러주지 그랬어”(정청래 전 의원) 

이런 와중에 ‘자기 반성문’을 꺼내든 정의당이 눈길을 끈다. 정의당은 지난해 당 내 성범죄 사건 가해자로 밝혀진 당직자의 직무를 정지하는 등, 당 차원의 징계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당내 성폭력 사건 발생 시 지도부와 당직자 등의 신속하고 올바른 대응을 돕기 위해 정당 최초로 공식 성폭력 대응 매뉴얼도 만들고 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지난 8일 기자회견에서 “성평등 실현을 목표로 하는 진보정당인 정의당 안에서 많은 성폭력 사건이 일어났다”며 “오늘로 정의당의 반성문을 마치지 않을 것이며 당내 성폭력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자기반성과 성찰을 멈추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우리 사회 권력의 정점에 있는 여의도야말로 성폭력이 가장 빈번한 곳”이라며 “성폭력 문제는 더 이상 상대정당을 비난하기 위한 정쟁의 소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철저한 자기반성의 대상이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미투 운동을 “적극 지지한다”며 “범정부 차원의 수단을 총동원해 사회 곳곳에 뿌리박힌 젠더 폭력을 발본색원해야 한다”고 했다. ⓒ뉴시스·여성신문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미투 운동을 “적극 지지한다”며 “범정부 차원의 수단을 총동원해 사회 곳곳에 뿌리박힌 젠더 폭력을 발본색원해야 한다”고 했다. ⓒ뉴시스·여성신문

 

제19대 대선 때 불법 선거운동을 한 혐의를 받고 있는 탁현민 청와대 선임행정관이 지난 1월 9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2차 공판 후 밖으로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에 입을 굳게 닫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제19대 대선 때 불법 선거운동을 한 혐의를 받고 있는 탁현민 청와대 선임행정관이 지난 1월 9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2차 공판 후 밖으로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에 입을 굳게 닫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탁현민 해임 요구 묵살한 청와대도 자성해야

청와대는 잇따르는 성추문에 대한 사법 당국의 엄정한 처리와 범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26일 미투 운동을 “적극 지지한다”며 “범정부 차원의 수단을 총동원해 사회 곳곳에 뿌리박힌 젠더 폭력을 발본색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청와대도 미투 운동의 화살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성범죄 전력이 있는 손한민 씨가 대통령 직속 국가일자리위원회 청년분과위원장에 오를 수 있었던 것,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이 과거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내용의 책을 써 해임 요구를 받고도 여전히 청와대에 근무하는 것부터 해명하고 제대로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지난 2월 21일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은 탁현민 행정관과 관련, “미투운동으로 벌어지고 있는 직접적 성폭력과 출판물 표현이 부적절한 것은 구분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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